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엔 넌 변했지~"
2013년 9월에 발매된 권지용(GD, 지드레곤)의 솔로 앨범 "쿠데타(COUP D'ETAT)"에 수록된 곡인 "삐딱하게(Crooked)"의 도입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외로움과 상실을 겪으며 이로 인해 싱처받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센 척을 하고 삐딱하게 반항하는 감정을 담은 곡이다. 이별이라면 발라드가 떠오를 법하지만 이 노래는 가사의 내용과 달리 록 사운드를 가미해 분위기는 오히려 신이 난다. 멜로디만 들으면 이별해서 오히려 홀가분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12년 째 듣고 있지만 언제 들어도 좋다. 고속도로를 타고 여행을 가는 길에 꼭 한 번은 듣는 노래여서 9살인 아들과 7살인 딸도 어느새 후렴구는 제법 따라한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사와 멜로디의 대비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잔잔한 노래보다는 신나는 노래를 좋아해서 더 끌리기도 했다. 그리고 들을 때마다 첫줄에 언급한 도입부의 가사를 곱씹게된다. 개인적으로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내가 부모의 입장이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처럼 "영원한" 영역은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라고 단언하지 않을 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노력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느 수준까지 노력해야 "영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수준"의 기준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없다거나 절대 있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영원한 건 "없다"는 말에 동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원이라면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그때마다 내가 의식하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일정하게 새벽 2시 50분에서 3시 10분 사이에 일어난다. 준비를 마치고 3시 30분에서 3시 40분 사이에 집을 나와서 내 차를 타고 출근한다. 출근하는 길은 항상 같다. 새벽 시간대라 도로에 다니는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리는 시간도 2~3분 차이만 있을 뿐 거의 일정하다. 시간대의 오차와 갑작스런 도로 공사로 평소 가는 길을 우회해서 가야 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차치하면, 내가 출근하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는 조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그 상황을 보고 의식하는 나의 느낌이 매번 다르다. 출근길에 심어진 은행나무룰 보고 어제는 '이쁘게 물들어서 기분이 좋다'고 느꼈지만, 오늘 봤을 때는 '이제 곧 겨울이 될테고 그러면 올해도 지나가서 한 살 더 먹겠네' 싶은 마음이 들어서 새삼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에 울적해질 수도 있다. 거기에 심어진 은행나무 자체는 그대로지만, 어제와 오늘 내가 받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어제의 은행나무와 오늘의 은행나무는 나에겐 다른 의미가 된다. 느낌이 다르면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도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지면 그 존재에 대한 나의 인식도 달라진다. 그렇기에 영원한 건 "없다". 그래서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여행가도 늘 설레는 이유다.
지리산이 나에게 그러한 곳이다. 작년 6월, 아내의 선택으로 지리산을 갔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에 걸쳐 있는 대한민국의 명산이다. 남한 국토로만 따져봤을 때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걸쳐 있는 도가 세 개나 되는데, 부산에 살고 있는 나와 아내는 주로 경상남도 산청과 하동 부근에 걸쳐진 지리산으로 갔다. 산청과 하동으로 여행을 갔을 때마다 늘 재미있고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지리산의 정취를 좀 더 깊이 느껴보자고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남원시 산내면 부근이었다. 지도를 보니 이전에는 우리가 지리산 외곽에만 갔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지리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코스였다.
설렘을 안고 여행을 준비하는데 여행 당일 남원시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즐기자는 마음으로 갔다. 초행길이어서 3시간 조금 더 걸렸다. 가는 길에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겨우 도착했다. 평소보다 좀 더 피곤했지만, 숙소의 풍경을 보니 피로가 싹 가셨다. 숙소가 지리산에 둘러싸여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 풍경이 장관이었다. 공기도 상쾌했고, 비가 와서 그런지 산내음도 더 진했다. 비가 보슬비처럼 잔잔하게 와서 아이들과 도심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비맞으며 밖에서 놀기"를 실천했다. 처음 비를 맞으며 논 아이들은 정말 신나고 재미있어했다.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온 우리는 올해 6월에 같은 곳으로 한 번 더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2박 3일 내내 비가 왔다. 작년에 계곡에 들어가지 못해서 이번에는 발이라도 담그려고 했지만, 비가 와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7월 말 여름휴가 때 다시 한 번 이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나와 아내의 휴가가 겹쳐서 주말 포함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중 5박 6일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날씨도 맑다고 되어 있었다. 물놀이 도구를 잔뜩 챙겨서 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달아 두 번이나 가니 사장님네 부부와 어느새 친해졌다. 올해 지리산에서 보낸 여름휴가는 우리가족이 간 여행 중 가장 길었고, 가장 많은 추억을 쌓은 시간이었다. 비오지 않고 맑은 날씨의 지리산은 또 달랐다. 계곡 근처여서 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부산처럼 습하면서 푹푹 찌듯 더운 게 아니라, 해가 쨍쨍해도 그늘에 있으면 상쾌하면서 시원했다. 비 올 때의 운치와 다르게 나무들의 푸릇함이 생생해서 속이 시원했다. 지리산은 비가 와도 좋고 날씨가 맑아도 좋았다.
같은 여름에 와도 그때마다 색다르게 지리산을 즐겼다. 같은 계절이어도 느낌이 다른데, 다른 계절에 가면 어떨지 궁금했다. 가을의 지리산도 경험하고 싶었다. 아내와 나의 시간을 맞춰서 고르고 고른 끝에 우리는 내일(11월 14일)부터 일요일(11월16일)까지 지리산으로 여행을 간다. 단풍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른다. 일부러 검색해보지 않았다. 호기심과 설렘을 품은 채로 가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다. 이번에 가서 지리산의 가을을 경험하면, 혹 가을이 아닌 초겨울을 경험하더라도 우리는 다음달인 12월에 또다시 갈 계획을 벌써 준비중이다. 가을의 지리산도 기대되고 겨울의 지리산도 기대된다. 지리산 자체는 그대로지만, 갈 때마다 다른 지리산을 경험하고 온다. 내일 가서 만날 지리산은 나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