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일 화요일
겨울을 좋아한다. 아무리 얇게 입어도 더운 여름과 달리, 따뜻하게 껴입으면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겨울이 좋다. 볼이 얼 것 같은 찬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따뜻한 실내에 들어갔을 때 맞이하는 온기와 포근함이 좋다. 이열치열도 좋지만, 뜨거운 국물은 역시 추울 때 몸에 들어와야 제 맛이다. 육개장 사발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한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먹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과 아내가 모두 잠든 겨울밤에 혼자 몰래 나와서 라면을 끓인다. 라면이 완성되면 주방의 작은 창문을 열고 그 앞에 의자를 두고 앉는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쐬며 후루룩 먹는 맛은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별미다.
실내의 훈기로 노곤한 기분이 들면 시원함이 그리워 찬 공기를 쐰다. 상쾌함과 더불어 찬 공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겨울 냄새가 좋다. 나뭇가지는 앙상해지지만, 우리가 입는 옷은 두꺼워진다. 앙상해진 나뭇가지에는 나뭇잎 대신 알록달록한 전등이 수놓아진다. 곳곳에 보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은 12월 25일 하루만이 아니라 12월 한 달 전체를 크리스마스로 느껴지게 한다. 이젠 선물을 받는 나이가 아닌 선물을 주는 우리 아이들만의 산타클로스가 되었지만,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추운 겨울일수록 오가는 정은 더 따뜻하다.
겨울이 좋지만,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 위한 계절로는 조심스럽다. 여행 갔다와서 혹여 감기라도 걸리면 낭패다. 그리고 겨울에는 실외에서 놀거리가 여름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아이들이 좀 크면 밖에서 걸으며 여행지 주변을 구경이라도 할텐데, 유아 때는 그마저도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이 실내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펜션을 찾는다. 요즘은 키즈 펜션이 잘 되어 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물놀이를 매우 좋아해서 실내에 온수가 채워진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골랐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 여행의 패턴은 이러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즐거워했고, 나와 아내도 아이들이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몇 번 이렇게 가면서 이제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새로운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이 좀 더 커야 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작년 12월에 이제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다.
나와 아내는 연말 기념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다행히 우리가 원했던 12월 마지막 주말에 예약이 가능했다. 예약을 완료하고 아이들에게 여행을 간다고 얘기했다. 아이들은 곧바로 수영장이 있는 곳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수영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더니 금세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대신 잠자는 장소가 펜션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눈이 땡글해졌다. 펜션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잔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나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에서는 큰 자동차에서 잔다고 말했다. 카라반이라는 캠핑용 트레일러가 있는데 거기서 먹고 자며 놀 거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실망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얼른 가고 싶다며 들떠했다. 아이들의 들뜬 모습에 안심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다. 나와 아내도 카라반은 사진으로만 접했을 뿐 실제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사진임을 감안해도 실내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할 수 없어서 혹시나 아이들이 공간이 좁고 불편하다고 할까봐 우려스러웠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2시간여를 달려 마주한 카라반은 사진만큼 이뻤다. 카라반 바로 옆에 바다가 있어서 주변 경관도 아름다웠다. 실내 공간은 아늑했다. 우드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포근함을 주었다. 2인 침대 하나는 창문 바로 밑에 있었고, 반대편 끝에는 1인용 침대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2층 침대를 보자마자 너무 좋아하며 각자 하나씩 쓸 거라고 자리를 맡았다. 겉모습은 바퀴가 달린 자동차 모습인데 내부에 화장실과 침대와 주방이 있는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매우 좋아했다. 카라반 바로 앞에는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진 개인 바베큐장이 있었다. 천막 안에 있어서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줬다. 그리고 카라반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아이들도 탈 수 있는 고카트 체험장이 있었다. 아들은 나에게 여기는 자동차 천국 같다고 말했다. 10대가 넘는 카라반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옆에는 레이싱을 할 수 있는 트랙이 있으며, 그곳에 고카트 여러 대가 정렬해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나보다. 고카트는 첫째는 혼자서 탈 수 있었고 둘째는 아내와 함께 탑승해서 조종했다. 해가 살짝 저물고 있는 하늘 아래서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이들과 함께 주행한 고카트는 카라반 여행의 재미를 더했다.
고카트를 신나게 타고 와서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카라반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침대에 누워보니 창문 밖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2층 침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우면 눈높이에 창문이 있어서 마치 밤하늘을 이불 삼아 누운 듯 했다. 우리가 이전에 갔던 펜션들에서는 볼 수 없는 경관이었다. 내 몸이 있는 공간은 어느 곳보다 작았지만, 내 눈이 바라보는 광경은 어느 때보다 크고 넓었다.
집을 벗어나 떠나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움을 준다. 거기에 더해 머무는 공간에도 변화를 주면 색다름이 배가 된다. 카라반이 나에게 선사한 매력이다.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와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밖에는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창문이 살짝 흔들거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과 대비되게 실내는 따뜻하고 고요했다. 노곤해질 때면 문을 열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 냄새가 코로 가득 들어왔다. 겨울하면 떠오를 또 하나의 추억이 카라반에서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