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수요일
"아빠 나 사랑하지?"
요즘 아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당연하지! 아빠가 더 많이 사랑해."
나의 대답을 들은 아들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유튜브를 보러 책상으로 간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으면 8시 10분에서 8시 15분 사이에 꼭 전화가 온다. 등교 중인 아들이다. 아내가 학교 앞까지 같이 가는데, 아내의 전화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를 받은 내가 여보세요 라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아들은 나에게 본인이 지금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언제나 "아빠 사랑해" 다. 그러면 나도 "아빠가 더 많이 사랑해" 라고 답한다.
아빠인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 아들을 사랑한다는 걸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아내가 임신한 걸 알았을 때부터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 생명과 이미 사랑에 빠졌다.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봤을 때는 뭉클함과 동시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왔다. 아들이 다섯 살까지 통잠을 자지 못해서 하루에 세 시간도 못자고 출근한 날이 대다수였다. 지금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정도로 잠을 못잤다. 피곤함이 극에 달했어도, 아들이 웃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 23시간 30분이 힘들어도 나머지 30분의 행복이 너무나 크다. 그 행복함으로 육아를 해낸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행복함이다. 우리 아들과 딸이 나와 아내가 본인들을 사랑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지금이 좋다. 그 모습이 귀엽다. 나와 아내가 누구보다 최고라고 해주는 모습이, 엄마 아빠랑 평생 살 거라고 말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이 나의 사랑을 당연하게 느끼는 건 좋으면서도, 자식으로서 우리 부모님과 장모님, 장인어른을 바라보는 나는 부모님들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한 게 아님을 안다. 자식으로서의 나는 그 사랑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를 위해, 아내를 위해 애써주신 부모님들의 희생과 노력에 늘 감사드린다. 어렸을 때는 당연하다고 느꼈던 부모님의 사랑도 시간이 지나보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아가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자유도 당연하게 얻어진 게 아니다. 나보다 앞선 삶을 살았던 어른들의 무수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구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나의 현재는 과거의 이름 모를 많은 분들에게 빚졌다. 2024년 오늘 있었던 평범한 시민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2025년 오늘 다시 한번 들은 나는 그분들에게 또 한 번 감사드린다. 2024년의 이름 모를 많은 분들 덕분에 내 아이들도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를 같이 계속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다. 매순간이 소중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아이들은 내가 주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면 좋겠다. 아이들의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다. 이 시간만은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 내일도 아들이 전화하면 사랑을 듬뿍 담아 말하겠다. "아빠가 더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