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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2025년 12월 7일 일요일

by 지우진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부채는 한국 연희사에서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추는 데 귀중하고 주요한 도구다. 부채를 양손에 들어 접고 펴고 감고 어르는 등의 부채사위를 중심으로 춤추는 부채춤은 여러 변모 과정을 거쳐 예술적으로 새롭게 창출되어 발전했다. 1954년 '김백봉무용발표회'를 초연으로 이후 문화영화로 제작되어 무려 20만 회를 웃도는 상영 기록을 세웠다. 국내는 물론 정부기관이나 공공단체에서 계획하는 해외무대에서 주종으로 올려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춤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부채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하는 학예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대로 등장한다. 우리 아들은 졸업했고 딸은 현재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서는(딸은 7세반으로 내년 2월에 졸업한다.) 매년 12월에 연례행사로 음악회를 연다. 5세부터 7세까지의 아이들이 몇 달간 연습한 무대를 부모님들에게 선보인다. 각 연령별로 반이 구성되는데, 반마다 5개 정도의 무대를 준비해서 2시간가량의 음악회를 채운다. 5세 아이들은 의상을 입고 등장만 해도 귀여움을 선사해서 부모님들이 절로 미소를 짓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 울지 않고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두리번거리며 엄마 아빠를 찾으면서도 무대 밑에서 율동을 도와주는 선생님의 동작을 놓치지 않는다.


6세부터는 공연의 난도가 높아진다. 음악에 맞춰 드럼과 심벌즈로 다양한 박자를 만들기도 하고, 인기있는 대중가요의 댄스를 연습해서 선보인다. 그리고 7세 아이들은 졸업을 앞둔 언니 오빠들답게 체격부터 차이가 난다. 우르르 나오는 모습이 5세와 6세 동생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이다. 우리 딸은 우리집에서는 마냥 귀엽고 애교 많은 막내지만, 무대를 꾸미기 위해 등장하는 모습은 이보다 의젓할 수가 없다. 5세 때는 무대에 올라가기 무섭다고 내 품에 안겨 울었던 아이가, 지금은 씩씩하고 멋있게 모든 동작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해낸다. 선생님에게 가장 박자를 잘 맞춘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칭찬을 들을 만큼 열심히 잘했다.


음악회의 첫 장을 7세 아이들이 연 것을 시작으로 2시간 40분가량 진행되었다. 중간에 앵콜(앙코르) 무대도 있어서 원래 계획된 시간을 훌쩍 넘었다. 마지막 무대는 7세 아이들의 부채춤이었다. 역시 아이들 학예회의 종막은 부채춤이다. 이전에는 남자 아이들도 같이 부채춤을 했지만, 올해는 7세 반 아이들이 작년보다 많아서 여자 아이들만 부채춤을 준비했다. 부채가 일반 부채와 달리 무겁고 딱딱해서 연습할 때마다 손목과 팔이 아프다고 딸이 말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는데, 무대를 보니 나의 우려는 기우였다. 동선에 따라 자리도 잘 찾고, 무겁다던 부채도 부드럽고 아름답게 흔들었다. 앵콜 무대까지 깔끔하게 하고, 모든 아이들이 나와서 부모님을 위한 합창을 끝으로 2025년 음악회는 마무리되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내년 2월이면 졸업이다. 아들이 다녔을 때까지 포함하면 이 유치원에서 총 5번의 음악회를 봤다. 음악회는 매년 12월에 열렸다. 연말에 해서 그런지 더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다녔던 유치원에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무대를 볼 때면 그때 생각도 나서 더 즐거웠다. 5년 동안 겨울마다 아이들의 무대를 볼 수 있어서 연말이 더 풍성했다. TV나 유튜브에서 아이들이 음악회 때 췄던 노래가 나오면, 아이들은 밥먹다가도 일어나서 춤을 췄다. 그리고 그때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공연을 되새겼다.


그렇게 보고 즐겼던 음악회도 이제 이번이 마지막이다. 아이들이 꾸몄던 모든 음악회가 다 즐거웠고 재미있었지만, 이번 음악회는 감회가 남다르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항상 아쉬움을 준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은 진리이지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망각한다. 나 같은 경우 보통 어떤 일이든 마지막이 오기 전 미리 준비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지 않을 때는, 마지막까지 그 상황에 흠뻑 빠져서 즐기고 누리고 싶을 때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니는 시절이 그러하다. 학교에 들어가도 여전히 귀엽겠지만, 유치원의 노란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은 아기 오리 같기도 하고, 병아리 같기도 해서 더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런 모습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다. 벌써 이렇게 또 컸나 싶은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한다. 내가 이제 39살이라는 사실보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내년이면 첫째는 3학년으로 올라가고 둘째도 학교에 입학한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다. 아이들이 조금은 천천히 컸으면 하는 마음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내가 그 시간을 붙잡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붙잡을 수 있다면 조금 더 붙잡고 싶다. 아쉬운 마음이 클수록 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되새긴다. 끝이 있어야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이들의 유치원 시절은 둘째를 끝으로 이제 볼 수 없지만, 초등학생으로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둘째의 무대를 찍어놓은 영상을 아이들과 같이 한 번 더 봐야겠다.


20251205_144144.jpg 이번에 관람했던 둘째의 음악회. 너무 잘했고 멋있었다 우리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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