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글쓰기

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by 지우진

유튜브를 즐겨 본다. 즐겨 본다는 게 하루 종일 붙들고 본다는 뜻은 아니다. 유튜브를 주로 보는 때가 있다. 출퇴근할 때, 운동할 때 그리고 빨래를 접을 때다. 자가용을 타고 새벽에 출퇴근을 하는데, 틀어 놓고 라디오처럼 듣는다. 고요한 새벽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운전하며 잔잔한 팝송이나 전날 끝까지 보지 못한 채널의 유튜브를 듣는 건 출근길에만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즐거움이다.


헬스장에 가면 가장 먼저 천국의 계단을 탄다(자리가 있으면 타고, 꽉 차있을 때는 러닝머신을 먼저 탄다). 이름에 '천국'이 들어있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계단을 타는 과정은 지옥에 가깝다. 이 지루한 과정을 이기기 위해 재생 시간이 1시간 이상인 영상을 동반자로 세운다. 그래서 헬스장을 갈 때 이어폰은 필수다. 혹 장갑은 깜빡하더라도 그냥 하지만, 이어폰을 못 챙기면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가서 가지고 온다.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며 목표로 잡았던 계단 수나 시간을 채워야 '천국'을 맛볼 수 있다. '천국'을 맛보기 위해 끊임없이 내 다리를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게 유튜브다.


빨래를 접을 때도 마찬가지다. 매일 세탁기를 돌리는데 식구가 4명이어서 하루에 나오는 빨랫감이 상당하다. 세탁이 끝난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동안 시사 채널을 들으며 그날 있었던 주요 내용들을 정리한다. 몇 꼭지를 듣다 보면 어느새 빨래 정리가 끝난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대를 딱 잘라서 정해놓은 건 아니다. 하지만 주로 보는 때 이외에는 가급적 켜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제하기 위함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한번 유튜브를 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알고리즘이 그다음에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상을 기막히게 골라줘서 멈추기 어렵다.


그래서 노력한다. 위에서 언급한 상황 이외에도 시청하는 경우가 물론 있지만, 그럴 때는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 지체 없이 끈다. 그리고 책을 편다. 책을 몇 페이지 읽고 있으면 유튜브는 금세 잊는다. 유튜브 이상으로 책을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쓰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떠오른 아이디어는 나의 글감 노트에 곧바로 기록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결국 잊어버린다는 걸 수차례 쓰라리게 경험하고서야 자리 잡게 된 습관이다. 기록한 글감은 브런치에 올릴 글로 엮는다. 한 문장도 채 되지 않았던 아이디어를 어떤 주제로 쓸지 기획하고 전개해서 한 편의 글로 완성시키는 과정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희열을 선사한다. 그래서 글쓰기가 재미있다. 글쓰기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글쓰기 말고도 흥미를 끄는 분야가 생겼다. 유튜브다. 아니, '유튜브'는 영상을 올리는 플랫폼이니까 '영상 제작'이 적확하겠다. 영상 제작에 흥미를 느낀 계기는 최근 읽고 있는 책인 10년 째 합숙 중 덕분이다. 이 책은 "웃소"라는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들이 엮은 에세이다. 크리에이터'들'이라고 말한 이유는, "웃소"는 7명의 크리에이터가 하나의 팀을 이룬 채널이기 때문이다.


웃소를 처음 접한 건 우리 아이들 덕이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볼 때면 언제나 옆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한다. 혹시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되는 내용이 나오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폭력적이거나 거친 말이 난무하는 게임 영상이 그 예다. 아이들이 접하기 쉬운 게임이지만 게임을 진행하는 유튜버에 따라 영상 내용이 거칠어지기도 하기에 이리저리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며 다른 영상을 보도록 이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보게 된 영상이 웃소의 "컵라면을 먹는 14가지 유형"이었다.


웃소 채널에는 다양한 영상들이 있다. 시리즈로 구성된 영상들도 있는데 그중 웃소를 유명하게 만든 영상이 "유형 시리즈"다. 치킨 먹을 때나 웃을 때 또는 계단 내려갈 때와 같이 일상적이고 정말 평범한 행동 안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만들었다. 사람들이 소소하게 공감하는 부분들을 재치 있게 재해석한 영상들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삼겹살 먹는 유형, 선생님 유형, 스팸 먹는 유형 등 생각할 수 있는 유형들은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중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들이 특히 좋아하는 라면을 먹는 유형이었다.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이게 재미있나' 였다. 나에겐 사실 좀 시덥잖아 보였다. 영상을 보며 공감을 하기는 했지만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주변에 있을 법한 일들을 보여줘서 그려러니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봤다. 나에게 진짜로 저런 경우도 있냐며 묻기도 했다. 나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저런 경우도, 예를 들어 짜파게티 컵라면처럼 물부터 먼저 붓고 스프는 물을 버린 후 나중에 넣어야 하는 라면을 순간 헷갈려서 스프를 먼저 넣고 물을 붓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해줬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그 영상을 재미있게 봤다.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며 옆에서 같이 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사소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잘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아이들은 아직 다양한 경험이 적으니까 유형 영상에 나오는 모습들이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왔겠구나, 그래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는구나 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해하고 나서는 웃소의 영상이 달리 보였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웃고 있었다. 그저 웃긴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팀원들을 위해 새벽부터 요리도 하고, 아프면 서로 챙겨주는 영상들도 보면서 진솔하고 따뜻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진심으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싶어 하고 동시에 팀원들을 배려하고 서로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음 영상이 기대되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같이 웃소의 구독자가 되었다.




이렇게 관심있게 보는 채널의 크리에이터들이 첫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소식에 곧바로 서점에 가서 구매했다. 영상으로만 느꼈던 웃소의 매력이 그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배가 되었다. 웃소의 시작부터 중간에 부침을 겪었던 시절,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극복한 서사, 각양각색의 팀원들이 서로 하나가 되는 과정 등 278페이지의 분량을 단숨에 읽었다. 무엇보다 내가 평소에 재미있게 본 15분에서 20분 사이의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서술된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가벼운 잡담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에 이야기를 입히고, 캐릭터를 배정하고, 변수를 설정하며 구체화 한 다음 마지막으로 웃음의 포인트를 정교하게 설계해서 덧입히는 과정은 마치 장인정신처럼 느껴진다. 무척 고단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을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겠다는 일념 하에 견뎌낸다는 점, 그렇게 만든 영상이 호평을 받을지 혹평을 받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세상에 공개하는 자신감이 마음을 울린다. 영상 제작도 글쓰기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다.


유튜브와 글쓰기는 단편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완성되는 과정은 유사함을 깨달았다. 한 땀 한 땀 프레임을 자르고 붙이는 것과 같이,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단락을 채워가는 여정은 고통스럽지만 즐겁다. 웃소의 팀원들이 그렇게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처럼 나도 매일 시간을 쪼개 문장을 이어 쓰면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한다.


책을 읽고 웃소의 영상들을 보니, 기획자의 관점에서 시청하게 되었다. 책으로 나마 웃소의 노하우를 엿본 걸 토대로 '이 아이디어는 이렇게 구현했구나', '이야, 저렇게 편집해서 이런 자막을 넣은 건 진짜 센스 있네!' 등 관찰하고 감탄하면서 본다. 어느 영상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된다.




"웃음이란 건 많은 요소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탄생된다고 믿는다"(193페이지)고 말한 한 멤버의 말처럼, 글쓰기도 이와 같다고 확신한다. 웃소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웃음이 누군가의 하루에 닿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글이 그러하기를 염원한다.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시 바로잡아 준 웃소의 에세이. 고마워요 웃소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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