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진(이) 빠진다"는 표현은 식물에 나타나는 현상에서 비롯되었다. 식물 줄기나 나무껍질에서는 끈적한 물질이 분비된다. 분비되는 물질을 "진"이라고 부른다. 화학물질이다. 진이 부족해지면 식물은 시들해지거나 말라죽는다. 이 상태를 "진(이) 빠진다"고 일컫는다.
그러면 식물의 진이 빠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주요 원인으로는 수분 부족, 영양소 결핍 그리고 병해충 및 환경 스트레스를 꼽을 수 있다. 물이 부족하면 식물의 생리 기능이 저하된다. 이는 진이 빠지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물이 과다해도 문제다. 과다한 물은 뿌리에 부패를 일으켜 식물의 활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그리고 질소나 인, 칼륨 등 주요 영양소가 부족하면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시들게 된다. 수분과 영양소가 충분히 공급되어도 병해충에 감염되면 진이 빠질 수 있다. 온도·습도 등 주변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뿌리를 내린 토양에 문제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시들면 물과 토양, 비료의 상태를 점검해서 적절히 영양을 공급하고, 배수 개선을 해서 환경을 올바르게 바꿔줘야 한다. 그래야 진이 빠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까지 식물의 진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진의 역할 때문이다. 진은 식물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정확히 말하면, 진 분비가 중요하다. 진은 외부 위협(해충이나 병원균 등)에 대한 자기 방어와 동료 식물에게 위험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해충이나 병원균이 공격하면 식물은 피톤치드 등 방어 물질을 분비해 자신을 맛없게 만들어 먹이를 쫓아낸다. 그리고 자기 방어를 하면서 동시에 살리실산메틸(식물의 방어 및 생리적 기능에 관여하는 식물 호르몬) 등 또 다른 화학물질을 분비해 주변 식물에게 경고를 보내, 이웃 식물도 방어 체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일부 진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세포 손상과 염증을 억제해주기도 한다. 식물의 진 분비는 자기 생존은 물론 생태계 내 협력적 방어 전략의 핵심이다.
우리도 일상생활하면서 "진(이) 빠진다" 고 표현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혹자는 일이나 운동 등 어떤 활동을 매우 열심히 또는 격하게 해서 육체적으로 지쳤을 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혹은 개인적인 고민이 너무 많아서 정신적으로 소진했을 때 진(이) 빠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육체적보다는 정신적으로 크게 피로할 때 진(이) 빠졌다고 느낀다. 개인적인 고민으로 그러지는 않는다. '신학교를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지 아니면 신부님이 되어서 평생 독신의 길을 가야할지' 처럼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을 할 때도 진(이) 빠진다고 느끼지 않았다. 개인적인 고민은 결국 나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나를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건,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다. 아니, 표현을 바로잡으면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이다. 갈등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갈등은 의견·가치·욕구·목표의 충돌로 생기는 심리적 상태다. 이 충돌을 통해 더 나은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갈등이 필요하다(일부러 갈등을 만들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갈등 자체보다는 갈등 속에서 발생하는 다툼이다.
국어사전에서 다툼을 찾으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첫째는 의견이나 이해의 대립으로 서로 따지며 싸우는 일, 둘째는 서로 승부나 우열을 겨루는 일이라는 뜻이다. 나를 진(이) 빠지게 하는 다툼은 첫 번째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 다툼의 대상이 내가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내라면, 극에 달한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만나기 전의 성향을 보면, 자석의 양 끝에 있었다. N극과 S극은 서로 붙는 성질이지만, 한 자석에 존재하는 N극과 S극은 마주할 수 없다. 우리의 스타일은 그만큼 달랐다. 한 예로, 아내는 사람들과 노는 걸 선호하고 나는 혼자서 여가를 보내는 걸 애호했다. 아내는 여행을 좋아하고 나는 집에서 책보는 걸 즐겼다. 우연히라도 스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의 생활권이 달랐다. 그랬던 우리가 운명처럼 만나서는 한 자석에 있는 N극과 S극이 아니라, 두 자석이 만나 원래 성질대로 서로 딱 맞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N극과 S극처럼 하나가 되었다.
삶의 방식이 달랐지만, 함께한 순간부터는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나의 취향이 아니어도 아내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지게 되었다. 아내의 취향이 어느새 나의 취향이 되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부 사이는 정말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로 합이 잘 맞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신기하게도, 부부는 정말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일로 다툰다는 것도 곧이어 깨닫게 되었다.
돌아보면 진짜 사소하고 미미한 것이고 이걸로 이렇게 진(이) 빠지게 다퉜나 싶지만, 다투는 상황에서는 그보다 큰 문제는 없는 것처럼 여긴다. 게다가 하루 중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과 다투게 되니 그 문제가 계속 불거진다. 나도 아내도 한 고집하기에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방을 이겨먹으려고 고집을 내세우는 게 아니다. 아내를 이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내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이 더 큰 탓이다. 분명히 알텐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속상함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내가 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만 계속 늘어놓는다. 그럴수록 과연 언제 화해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다툼이 이어진다. 붙었던 자석이 떨어질 만큼 진(이) 빠진다고 느낄 때쯤 억지로 서로의 말을 멈추고 잠시 시간을 갖는다. 나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아내는 바깥에 걸으러 나간다. 그렇게 한두 시간 지나고 서로를 마주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과한다. 사과는 각자의 방식대로 한다. 그러면 언제 진(이) 빠지게 다퉜냐는 듯 서운함과 속상함이 녹아내린다. 빠졌던 진이 다시 채워지듯 아내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커진다. 미안함 때문인지 아내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나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고 내가 상처준 것 이상으로 더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우리의 다툼은 언제나 길어야 반나절이다. 그 반나절 동안 진(이) 빠지게 다투고, 화해한다. 화해하고 나면 서로에 대한 사랑은 배로 커진다. 그렇다고 다툴 생각은 결코 없다. 아내와 다투는 것 만큼 나를 진(이) 빠지게 하는 것도,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다툼 이후 더 커진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겠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칼로 물 베기가 맞다. 우리 앞에서 부부 싸움은 힘을 쓰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