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열어 놓되 팔랑귀는 지양한다.

2026년 1월 28일 수요일

by 지우진

유행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 중 하나다. 요즘 뭐가 유행한다는 건 알아도 따라가지 않는다. 아내도 나와 비슷하다. 우리가 서로 잘 맞고 닮은 부분 중 하나다. 한 예로 어떤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이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는 보지 않는다. 인기가 있을수록 재방송도 많이 하고 인터넷 기사로도 많이 뜬다. 인스타나 유튜브에도 소위 클립영상이 자주 걸린다.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보지 않는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다. 흥미가 생기지 않을 뿐이다. 눈에 자주 띄니까 제목 정도는 당연히 알지만, 흥미가 없으니 한 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종영하고 시간이 지나서 다른 드라마가 흥행할 때쯤 지난번에 재미있다고 했던 그 드라마가 뭐였더라 하면서 떠오른다. 그렇게 궁금해지면 OTT로 들어가서 찾아본다. 그리고 첫 화를 봐본다. 제목만 들었을 때 생각했던 장르와 다르게 전개되면 더 구미가 당긴다. 전개 방향이 나와 맞으면 계속 본다. 그러다가 어느새 빠져서 끝까지 보게 된 드라마가 여럿 있다.


"갯마을 차차차"(2021년), "나의 해방일지"(2022년)가 그러했다. 두 드라마 모두 방영할 때는 관심이 없었다. 2024년 어느 여름, 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뭐 볼 거 없나 하며 OTT를 살피던 중 우연히 "갯마을 차차차"를 발견했다. 밥 먹는 동안 무슨 드라마인지 한번 보자고 1화를 시청하는 걸 시작으로, 우리는 며칠에 걸쳐 정주행 했다. "나의 해방일지"도 비슷한 형식으로 보게 되었고, 마지막화까지 울고 웃으며 달렸다. 그 뒤로 아내는 김선호와 손석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김선호, 고윤정 주연의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아껴가며 보고 있다. 이 또한 요즘 인기를 모른 채, OTT를 탐색하다가 김선호의 사진을 발견하고 보게 되었단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고윤정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아내는, 지금은 고윤정이 요 몇 년간 본 여자 연예인 중에 인형처럼 이쁘고 가장 매력적인 배우라고 말한다.




유행할 때는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뒤늦게 좋아하는, 그리고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유행이 끝나더라도 웬만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 이유를 어느 날 생각해 봤다. 이유는 금방 찾았다. 좋게 말하면 우리의 가치관이 뚜렷해서, 다르게 말하면 고집이 있어서 그렇다. 취합할 수 있는 정보를 다각도로 얻은 다음 우리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따져본다. 귀를 닫지 않지만, 팔랑귀는 지양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주변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생활하는지 관심을 가지되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한지가 최우선이다. 아직 방학 중인 첫째 주변을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누구는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전에 벌써 영어를 얼마만큼 한다더라, 하루에 책을 몇 권 읽는다더라, 해외여행을 몇 번이나 갔고 2월에는 해외에서 2주 동안 머물고 온다더라, 이제 10살인데 선수반에 트라이아웃 되었다더라 등 혹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고, 지인들의 SNS를 통해 종종 보인다.


부모로서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경제적 여건은 차치하더라도 좋은 거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나는 못 먹을지언정 우리 아이들이라도 배부르게 맛있게 먹는다면 그걸로 충분한다고 위안을 삼는 게 부모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아이들이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은 없다. 허나 일정 시간이 지나도 계속 힘들어하거나 지쳐한다면, 이게 과연 맞는 방향인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해놓는다. 이번 첫째의 겨울 방학은 학교 사정상 봄방학 없이 2월 말까지 쭉 이어진다. 52일간이다. 기간이 길어서 여러 가지를 시킬 계획이었다. 기존에 하던 태권도는 승품 심사가 있어 그대로 하면서, 손글씨 쓰기, 책 읽기, 피아노, 미술 중에 골라서 추가하려고 했다.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을 때 배우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학 첫 주에 첫째를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재미있어하던 태권도를 승품 심사 준비로 학기 중일 때보다 강도 높게 수련하면서, 도장에 다녀오면 매우 피곤해했다. 거기에 둘째가 독감에 걸리면서 아내에게까지 옮겨졌다. 하필 날씨도 체감온도 영하 10도로 확 추워졌다. 첫째마저 감기에 걸리면 수련을 못하고, 최악의 경우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심사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이번에 심사를 보지 못하면 4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첫째가 쏟은 시간과 노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번 방학의 우선순위는 태권도 승품 심사에 뒀다. 첫째의 컨디션을 챙기며 아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학원을 추가하지 않고, 집에서 기존에 하던 학습지와 더불어 독해력 향상을 위해 사놓았던 문제집을 풀게 했다.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고, 그 다음은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학습지와 문제집은 내가 도맡아서 챙겼다. 어렵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다. 독해력 문제집은 매일 하면 질려할 것 같아서 이틀에 한 번, 두 장씩 풀도록 했다. 여러 주제의 글을 읽는 걸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꾸준히 3주 가량 하다보니 지금은 스스로 한다. 피곤한 날은 짜증을 내긴 하지만, 잘 달래서 하도록 돕는다.




학습뿐만 아니라 같이 노는 것에도 시간을 쏟는다. 첫째가 나와 체스를 두는 걸 보며, 올해 학교에 입학하는 둘째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요 며칠은 둘째에게도 체스를 알려주고 있다. 관심이 있을 때 바짝 알려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둘째가 어서 체스를 하자고 아우성이다. 내일도 새벽 일찍 출근해야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을 결코 놓칠 수 없다. 나의 우선순위는 아내와 아이들, 그 다음이 일이다. 내일 조금 피곤하더라도 글을 쓰느라 같이 놀아주지 못한 시간까지 더해서 아이들과 놀다가 자야겠다.


20260128_191107.jpg 공부도 열심히 하느라 고생많다 아들.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최고다.
20260128_155356.jpg 흰색을 꼭 하고 싶다는 체스 새내기 둘째. 오늘도 재미있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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