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3일 화요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느꼈던 공기와 지리산 IC를 통과해서 숙소에 가기 전에 항상 장을 봤던 하나로마트에서 맡았던 공기는 전혀 달랐다. 휴게소가 있는 평지와 지리산 자락에서 영상과 영하의 차이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최소 10도 이상은 온도차가 나는 것 같았다. 휴대폰으로 날씨를 검색해서 알아보니 실제 기온은 4도 정도 차이가 날 뿐이었다. 아직 오후 2시 30분에 날씨도 맑아서 햇빛이 내리쬐는데도 이 정도로 추위가 느껴지다니! 부산도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실제 기온보다 체감 온도가 낮았는데, 부산에서 느낀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하나로마트에서 고기와 마실거리 등 먹을거리를 넉넉히 사고 숙소로 향했다. 20분만 더 가면 도착이었다. 거리 상으로는 10분 정도면 도착이지만, 여기서부터는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가야 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을 내렸다.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를 계속 맡고 싶으면서 동시에 계곡물이 얼었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밖을 내다봤다. 그리곤 곧바로 탄성을 질렀다. 운전하고 있는 나에게 얼른 옆을 보라고 아우성쳤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운전 중이라 옆을 볼 수 없어'라고 답했다.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답했지만, 나는 이미 확인했다. 여름에 왔을 때는 가득 차 있던 계곡물이 수위는 많이 줄었지만, 하얗게 얼어있었다. 멀리서봐도 단단하게 언 것 같았다. 아이들은 찬바람이 들어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계곡을 보며 즐거워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아내와 아이들과 계곡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숙소에서 나서기 전, 우리들은 준비한 장비(?)들을 착용했다. 오로지 겨울 지리산에서 눈이 내릴 것을 대비해 준비했다. 그건 바로 방한장화와 스키 장갑이었다. 부산에서는 결코 쓰이지 않을, 장착할 일이 없는 장비였다. 눈이 많이 오면 일반 신발은 쉽게 젖는다. 털장갑도 소용없다. 눈이 올 확률이 70%라는 일기예보와 이곳은 한 번 눈이 오면 많이 온다는 사장님의 말을 믿고 큰맘 먹고 준비했다.
아내 말로는 4명의 방한 장화와 스키 장갑의 값이 이곳에서 하루 숙박하는 비용과 맞먹는다고 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 아내는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나는 확고했다. 설령 이번에 눈이 안 와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2026년 겨울에 쓰면 된다고 아내를 달랬다. 그렇게 준비한 장비들을 (날씨는 정말 화창한) 얼어붙은 계곡에서 첫 개시했다.
아이들은 얼어붙은 계곡을 보는 것도, 그 위를 걷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신세계를 경험하듯 엄청 신이 났다. 꽝꽝 얼었는지 내가 먼저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걸어보라고 권유했다. 아이들은 무섭다고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여름에는 여기서 수영하고 물놀이를 했는데 지금은 그 위를 걸어 다니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외쳤다. 얇게 언 부분은 돌멩이로 조심스럽게 깨서 그 조각으로 놀았다. 찬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아이들의 코는 새빨개졌지만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얼음 위를 걷고 얼음을 가지고 조각도 하며 1시간가량 놀다가 숙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이제 눈만 오면 된다며 눈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일기예보에는 내일 오후쯤 온다고 되어 있으니 오늘은 겨울 계곡을 즐긴 것에 우선 만족하자고 답했다. 그 말에 살짝 아쉬워하는 듯 보였지만 곧이어 알겠다며 기분 좋게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 아이들에게 "눈"이라는 건 미지의 존재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걸 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설레고 사람을 한없이 들뜨게 만든다. 내 자식들이 지금 그런 마음이라면, 부모로서 역시 같은 마음을 품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거라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바베큐를 하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는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저 내일 예보대로 눈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우리가 원하던 일정에 딱 눈이 온다는 예보가 나와서 다시 지리산으로 왔다. 이런 기회도 감사하지만, 한 번만 더 이루어지길 소망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음날 내가 말했던 시간에 그것이 이루어졌다.
(3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