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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녕 Jan 25. 2024

미용실의 철학

노자의 정신과 미용실 경험

 고대 중국의 현명한 인간 노자는 말했다. “맛없음을 맛보는” 삶을 살라고. 노자는 행복한 삶을 위해선 가능한 한 고자극의 감각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아무리 강인한 정신을 가져도 외부의 자극에 크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건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거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마음을 뒤흔드는 자극을 피해야만 효과적으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을 맛보는 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극적인 음식은 장기적으로 정신을 사납게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미약하고 순한 감각이 주는 즐거움을 잘 경험하기 힘들다. 고자극 콘텐츠를 접하는 게 너무 쉬워졌다. 핸드폰만 켜면 세상의 온갖 자극을 다 맛볼 수 있다. 이런 환경은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맛없음을 맛보려,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끼려 집중하는 순간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현대인은 심지어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순간에조차 그 맛만으로는 만족을 찾지 못한다. 핸드폰이나 TV를 보는 경험이 동반돼야만 하는 것이다. 혀의 자극은 시청각 자극이 함께 주어져야만 최고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맛있는 것도 온전히 맛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오묘한 경험을 한다. 미용실은 머리를 꾸미기 위한 곳이다. 하지만 미묘한 ‘터치’를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머리카락은 손톱, 발톱과 함께 인간의 몸에서 가장 미약한 감각만을 전달하는 부위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이 잘리며, 나는 느껴질 듯 느껴지지 않을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미용사분이 머리칼을 확 움켜쥐거나 쓸어내릴 때는 두피에 약간 강한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상대적으로 느슨한 감각이다. 평소 이 세상을 가득 채운 매운맛 콘텐츠, 매운맛 음식과 비교하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노자의 관점에서 미용 경험의 클라이막스는 머리카락 한 가닥만을 미세하게 자를 때이다. 그때는 먼지보다 가벼운 진동만이 극히 미세하게 전달될 뿐이다.


 물론 이 고자극의 세상 속에서, 미용실도 나름대로 손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한 강한 자극도 제공한다. 머리를 감겨줄 때가 보통 그렇다. ‘샴푸’라고 부르는 순간이다. 손으로 강하게 머리를 지압해주는 곳도 있고, 요즘에는 아예 기계로 마사지를 해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샴푸는 어디까지나 미용실 경험의 일탈, 예외적이고 짧은 카타르시스의 순간일 뿐이다. 그보다 중심을 이루는 건 미약한 감각의 순간들이다. 미용실은 노자의 정신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사회의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모든 미용실이 다 이런 건 아니긴 하다. 한번은 ‘오천냥클럽’이라는 미용실(더 옛날에는 ‘사천냥클럽’이었다.)에서 머리를 잘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력하고 명확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내 머리칼은 거의 일 초의 쉴 틈도 갖지 않고 거침없이 잘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가위가 머리카락만을 건드리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킬 때는 거의 없었다. 확신에 찬 진동을 일으키는 바리깡이 두피와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스쳐 지나갔다.


 대신 이곳에서는 가격이 저자극이었다. 나는 저렴한 가격을 통해 절제에서 오는 미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노자는 물 흐르듯 살기를 추구했다. 너무 내 뜻을 강하게 관철하려 들지 말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유연함을 발휘하면서 살라는 거다. 머리칼이 내 의지와 큰 상관없이 순식간에 잘려 나가는 이곳에서는 환경의 힘에 나를 내맡기는, 자아의 욕심을 포기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미묘한 가위질을 체험할 수 있는 세련된 미용실보다도 저가형 미용실이 더 노자의 철학에 부합하는 점이 있는 셈이다. 세련된 미용실에서는 육체적 감각의 미묘함을 경험할 수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머리를 꾸미겠다는 자아의 욕심이 전혀 포기되지 않는다. 반면 저가형 미용실은 집착을 내려놓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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