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노트
그리고 2주뒤 둘째를 낳았다. 한번 해본 아픔이라 그런지 아픔보다는 시원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왕절개라 하루는 꼼짝하지 못하고 두번째날부터 슬슬 걸어다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팠다. 평소에는 못 느껴본 아픔이었다. 남편은 첫째와 놀아주러가고 혼자 병원에서 너무 심심했다. 일도 간간히 하고 유튜브를 봐도 병실에만 갖혀있는 것은 감옥같았다. 저녁 7시가 되어서 오겠다던 남편은 8시 반까지 연락도 잘 안되고 오질 않았다. 내가 분명 7시까지 간식을 사오라고 했는데..!
그러다 9시가 되기 몇 분 전에 남편과 연락이 닿았다. 남편의 혀는 꼬부라져 있었다. 아빠랑 마셨단다. 남편이 병원에서 잠도 잘 못자고 밥도 잘 못 먹을테니 아빠가 빨리 국밥이나 한그릇 하고 가자고 꼬셨고(?) 둘이 소주를 세병이나 마셨다했다. 남편은 술김에 신이 나 있었고 편의점에서 간식을 왕창 사오겠다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엄마한테 전화를했다. 아빠 미친거냐고 울부짖었다. 자기 자식이 피 흘리면서 애를 낳았는데 남의 자식(남편) 밥 못먹는게 대수냐고, 아빠 술 먹고 싶어서 그런거 안다고. 난리를 쳤다. 전화를 끊고 한참뒤에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빠는 거의 인사불성이고 잠들어서 말을 시켜도 못알아 듣는다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애 낳은지 삼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 세상을 다 잃은 것마냥 눈이 안떠질만큼 울었고 다음날 마취 부작용으로 척수액이 흘러나온다는 얘길 듣고 시술을 받았다. 혼자였다.
엄마와 할머니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서 풀었던 증오는 다시 쌓였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60이 넘으면 뭐하나. 자기 자식이 새끼 낳는다고 배를 열었는데 간병해야할 사위를 꼬셔서 인사불성이 되게 하다니. 역시는 역시다.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했다. 그 후 조리원 3주, 거의 한달만에 본 아빠는 다시 내게 머쓱하게 대화를 걸었다. 난 다시 땅만 쳐다봤다. 1달이 지났고 우린 다시 삶의 터전(해외)으로 나가야했다. 남편이 아기들을 데리러 왔고 다시 한번? 술판을 벌였다. 물론 이때는 나도 같이 마셨고 여느때와 같이 취기로 분위기는 하하호호였다. 갑자기 누군가 우리 둘째 이야기를 꺼냈고 아빠는 갑자기 그날 나한테 너무 미안했다며 사위에게 털어놓았다. (나한텐 무서워서 말 못하겠다 했다.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빠한테 딸이란 존재는 무엇일까? 그의 인생에서 나는 언제쯤 멈춰 있는 걸까. 어린 딸일까, 어색한 성인일까, 그저 잔소리 많은 여자2(잔소리 많은 여자1은 엄마)일까. 내 남편이 딸을 안을때면 눈빛이 녹는다. 그 모습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너희도 영원하지 않을거란 생각과 함께.
언제부터, 왜, 부녀 지간은 변하는걸까?
아시는분 저 좀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