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노트
둘째를 임신하고 막달이었다. 추석 직전 이라 나의 할머니, 엄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빠는 첫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서 없었다. 그때 할머니가 나한테 아빠한테 좀 잘하라고 했다. 나는 사실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둘만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난 집을 나가든 굶는다 했다. 눈도 마주치는 것이 어색했다. 가끔 술 한잔 할때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지만 술깨면 다시 남이었다.
초등학생땐 아빠는 서울에서 엄마와 동생과 나는 대구에 살았다. 매주말마다 오는 아빠가 반가웠다. (처음 떨어져 살땐 비행기/기차를 타고 정말 자주 다녔다.) 중학생 쯤이 될때 아빠도 대구로 왔다. 서울에서 하던 일이 잘 안되어 사실상 빈손으로 내려왔다. (당시엔 몰랐으나 최근에 알게되었다.) 우린 그냥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빠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정말 평범했다. 평범하지 않은건 14살 사춘기 소녀였다. 잘사는 친구집과 우리집이 비교되었다. 정장을 입은 아빠가 '에쿠스'로 친구를 데려다 줬다. 부러웠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교되는 것이 정말 많았는데 기억이 안나는걸로봐서 지금 보기엔 시시한것 이었겠지. 그러다 우리 집은 왜 친구네처럼 돈이 없을까 고민중에, 이유의 끝에 아빠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엄마의 몫을 벌어왔다. 아빠는 아니었다. 대구에 내려온 뒤로 1-2년에 한번씩 회사를 그만뒀다. 그 때마다 아빠는 엄마와 싸웠다. 대부분 아빠는 왜 그만두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대책은 없었다. 엄마는 애들이 중,고등학생인데 생각이 있냐 없냐며 늦은밤 소곤소곤? 싸웠지만 내 귀엔 그 어느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고3때였다. 수능이 1달 정도 남아 모의고사를 치고 일찍 하교를 했는데 아빠가 과자를 먹으며 누워서 책을 보고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그 장면이 기억나서 그림까지 그릴 수 있을정도다. 난 인사도 한체만체 방에 들어왔다. 대학등록금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뉴스에서 등록금 인상이니 뭐니 뉴스를 보니 만만치 않은 것 같았는데 아빠는 또 퇴사를 해서 누워있다. 미칠거 같았다. 난 공부를 아주 (SKY) 잘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 하위 인서울 대학은 갈 수준이었다. 난 인서울 대학과 지거점 대학중에 원서를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보나마나 우리집은 못보낸다고 생각했다. 원서를 지방거점대학 한곳만 썼다. 당연히 붙었고 우리반에서 중간 수준이던 친구도 같은 학교 같은과에 추가합격으로 붙었다. 아빠에 대한 증오가 시작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과외를 하다보니 한달에 150-200은 벌었다. 그러다보니 씀씀이도 커지고 아빠가 더 증오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나도 200을 버는데? 아빤 도대체 얼마를 벌어오길래 우리집이 가난한거야? 그게 다 우리를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키는데 들어가서 정작 쓸 돈이 안보인다는걸 몰랐다.
아흔이 되어가는 할머니에게 당신 자식을 내가 이만큼 증오한다고, 이 모든걸 임신 38주차 만삭 임산부가 울면서 쏟아냈다. 옆에서 엄만 울었고 할머니도 볼 면목이 없다했다. 할머니는 그 날 식사를 하지 않으셨고 나도 집을 나왔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못간건 아빠 때문이 아니다. 내가 공부를 못 해서이다.
울분을 토하던날 신기하게도 나의 체증같은 증오가 좀 사라졌다. 아빠는 임산부가 어딜 그렇게 갔다오냐며 밥을 먹으라했다. 아무렇지 않은척 주는건 다 받아먹었다. 마음이 풀려서 그런지 오랜만에 아빠 눈도 마주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