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늙은이1, 늙은이2

불효 노트

by 루페이스

늙은이1, 늙은이2. 내 핸드폰의 엄마 아빠의 전화번호 저장 이름이었다. 언제 그리고 왜 그렇게 저장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20대 초반까지 우리 엄마 아빠는 나한테 늙은이 1,2 이었다. 친한 친구가 엄마한테 전화온 것을 보고 엄마가 늙은이 냐며 어정쩡한 표정을 지은 순간 나는 쪽팔렸어야한다. 그게 쪽팔리는 일인지 몰랐던 나는 친구에게 대답을 생략함과 동시에 전화도 끊어버렸다. 그리고선 곧장 친구에게 아빠 험담을 했다. 우리 아빠는 치약을 끝부터 짜라고 잔소리를 한다고. 어차피 쓰다보면 다 쓸거고 다쓰면 잘라서 안쪽까지 긁어 쓸거, 중간부터 짜나 끝부터 짜나 뭐가 다르냐며 험담을 했다. 친구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24살, 나는 갑자기 엄마 아빠 곁을 떠났다. 해외 인턴이 되었고 그들에게 그냥 통보했다.

엄마 나 3개월만 갔다 올게.

그리고 나는 12년차 해외살이 중이다. 내가 인턴으로 지내던 중 엄마가 영상통화로(당시 스카이프)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로 책을 냈다고했다. 아 그래? 그렇구나. 다음에 보여줘. 하고 짧게 통화를 끝냈다. 몇 주 뒤였다. 엄마가 메일로 자기가 쓴 글의 원고를 보내왔다. 심장이 쿵. 나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살림 밑천 장만하기 어렵네요, 엄마♥ 지음>

2) 예로부터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 했다. 육아에 미숙한 엄마 때문인지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주 아프다고 했다. 머리와 배는 수시로 아프고, 눈 밑이 파르스름한 채, 힘없는 아이를 보면 안타까웠다. 며칠간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갔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난 의사는 아이에게 동생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하니 ‘동생이 네 말 안 듣고 대들고 까불지’라고 말했다. 딸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의사의 처방은 동생 봐주지 말고 세게 혼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두 딸을 차별 없이 키운다고 생각했었는데, 작은 아이는 아기처럼 대하고, 십 오 개월 밖에 차이 안 나는 큰아이에게는 언니 노릇을 요구했었다. 그 여린 것이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그것도 모르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할 때마다 도대체 너는 머리카락 빼고 안 아픈 데가 어디 있느냐고 화를 내곤 했었다.

4) 대학생이 되었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생활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나보다. 굽이 높은 신발에 화장은 짙어져 갔다. 옷차림이 화려해 지고, 귀가시간은 늦어졌다. 자정이 넘어도 들어오지 않을 때면 휴대폰을 들고 딸 방으로 갔다. 혹여 남편이 듣기라도 할까 싶어 문을 닫고 전화했다. 통화가 안되어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잘 놀고 있겠지, 사고가 난건 아닐까? 지금쯤 어디선가 나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편히 방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파출소에 전화하려고 수화기를 들다가 내려놓기를 여러 번 했다. 지쳐 소파에서 살포시 잠이 들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참고, 눈을 흘겼다. 천연덕스럽게 “엄마 미안”이라는 짧은 말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깨어날까 봐 한숨만 쉬고 안방으로 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의 심문에 대한 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빨리 들어오라는 독촉전화이겠기에 안 받았다고 했다.


이게 나였다. 저렇게 잔인한 년이 나였다. 한참 울었다. 핸드폰을 꺼내 엄마 아빠 이름을 엄마, 아빠로 바꿨다. 그들은 모를 나만의 조용한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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