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보이는 반응이 “책 좋아하세요?”이지만 사실 서점에서 일을 하려면 책 이전에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서점 매장에 수많은 손님들이 방문하므로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거나 함께 있는 일에 어려움이 있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면 매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사실 나는 전공도 문학 쪽이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이고 사람들을 대하는 일에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아서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내가 손님으로 방문한 매장에서 직원이 불친절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일을 시작하면서 손님들을 정성껏 대해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 먼저 일을 시작하신 선배님께서 “여기서 일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 생길 때가 있어.”라고 하신 말씀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제는 나도 그런 선배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물론 어떤 손님은 직원인 나보다 더 친절한 경우가 있다. 단순히 인사나 고맙다는 표현을 넘어서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뒤돌아서면 좋은 하루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 손님으로 인해 좋은 순간이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손님은 소수이고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손님들이 훨씬 많다. 아무런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책 제목을 나에게 내뱉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서점이라는 공간적 맥락에서 손님이 직원에게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 책을 찾아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전달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나는 AI나 검색엔진이 아니다.) 머리가 짧아서 남자인 줄 알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손님도 있었다(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심보는 도대체 무엇인가.). 택배신청양식이 왜 이러냐(택배발송에 꼭 필요한 정보만 기재하게 되어있다.), 볼펜은 왜 이런 것을 쓰느냐(볼펜이 왜?) 등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스님이 있었는가 하면 책을 보고 아무렇게나 아무 곳에 두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정말이지 책을 훼손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그간 겪었던 일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사실 소위 말하는 진상손님도 비율로 따지자면 (한 케이스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아주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천사손님과 악마손님이라는 양극단이 있고 그 중간 어디쯤에 평균치가 있을 것이다. 온도로 표현을 하자면 천사손님의 온기는 화창한 5월 오후의 20℃, 악마손님의 칼바람은 영하 10℃ 정도로 잡는다면, 내가 매장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며 느끼는 평균체감온도는 7℃ 정도 된다.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의 꽤 쌀쌀한 느낌이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매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대체적으로 느끼는 사회적 온도는 대략 이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마 우리 매장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사회적 온도 또한 대략 이 정도에 위치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의 바람은 일을 하며 맞기엔 조금 차갑기는 하다. 가을보다는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봄이라면 훨씬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개구리가 잠을 깨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라면 나비가 날아다니기에도 훨씬 알맞지 않을까. 매장 이곳저곳에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먼저 씨앗을 심어야 할 것이다. 씨앗을 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