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 아름다운 직육면체. 책이라는 ‘사물’에 대해 설명하라면 나는 이렇게 정의하겠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서점 일은 책 표지를 많이 보는 일이야.” 서점에서 일을 하면 책 한 권 한 권을 읽을 시간은 많지 않고 책 표지를 보며 책 유통에 관한 일을 한다는 뜻이었다. 서점 일은 결코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고 물리적인 일인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하시는 눈치였다.
그렇다. 서점에서 일한다는 것은 일단 책이라는 물리적인 사물을 다루는 일이다. 종이 한 장이야 깃털처럼 가볍지만 그 종이가 모이고 종이가 모인 책이 또 모이면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학창시절 책가방 메고 등교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알 것이다(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어떤 초등학생이 캐리어 책가방을 끌고 가는 것을 보며 우와 탄성을 질렀다.). 매장에서 많이 걸으니 발목과 무릎이 아프고 책이 무거우니 손목과 팔꿈치가 아픈 것은 주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것에는 다른 상품과 다른 무엇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직육면체 상자에 들어있는 다른 상품들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책을 직접 손에 들고 요리조리 훑어보면 정말로 직육면체라는 생각이 든다(양장본의 경우 그 느낌이 조금 덜하기는 하나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직육면체 형태이다.). 하지만 겉만 보고 책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책등을 왼손으로 쥐고 오른손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기는 순간 책은 변신한다. 무뚝뚝하게 서 있던 책이 한순간 나비로 변신하는 것이다. 양쪽 날개를 펄럭이며 내면에 숨겨 놓은 보석들을 발산하는 것만 같다.
나는 책의 물리적인 속성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손길이 닿으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하는, 이런 물건이 책 말고 또 있을까.
물론 책의 가치가 물리적인 속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도 아름다운데 그 안에 더 깊은 내용을 품고 있으니 이제는 신비롭기까지 한 것이다(‘신비한 동물사전’이 ‘신비한 동물’에 관한 책이어서 그런 제목이 붙은 것만은 아니다. 책은 원래 신비롭다.).
이런 책들에 둘러싸여서 일을 한다는 것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이 분명하다. 물론 ‘일’을 하게 되면 항상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 손님의 자격으로 서점을 방문하십시오. 책들이 넘실대는 공간을 거닐다 보면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탄 것 마냥 굳어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고 운이 좋으면 책들이 소곤거리는 비밀이야기까지 엿듣게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