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불고기덮밥, 고구마치즈돈까스, 까르보나라파스타

by 배은빈

불고기덮밥, 고구마치즈돈까스, 까르보나라파스타, 에그마요샌드위치. 요즘 내가 점심시간에 즐겨 먹는 메뉴들이다. 돈을 벌지 않았을 때는 남아 있는 통장의 잔고와는 상관없이 점심 한 끼 밖에서 먹는 것도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졸업하고 남들 다 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일하기 싫다고 회사를 뛰쳐나왔기 때문에 회사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자격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사람들은 돈을 버니까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돈 한 푼 못 버는 주제에 어디 일하는 사람들처럼 번듯한 식사를 욕심내는가. 수입이 없으니 불안하고 절약하기 위해 편의점 김밥을 찾은 것도 있지만 누가 혼을 낸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책감이 들어 식당 문턱을 못 넘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주 5일 40시간 노동을 수행하므로 편의점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식당 문턱쯤은 당당히 넘어선다. 물론 우리 서점에도 많이 오는 대기업 직원들이 가는 빌딩 내 식당은 잘 가지 않고 나의 한 시간 노동으로 바꿀 수 있는 9620원 이하의 메뉴들이 있는 곳을 주로 찾는다. 다행히 서점 근처에 가성비 좋은 식당들이 있어 행복한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엄마는 절대 해 주지 않는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먹을 때면 이 맛에 일을 하는 기분까지 든다(사실 상당 부분 사실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장 안에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고등학생 때는 어른들이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고 속였기 때문에 속아 넘어갔지만 직장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안 속였는데 그냥 내가 그렇게 믿었다. 아마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인 것 같다.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도 당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취업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레 도출되는 명제 아닌가. 그런데 실제 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의 생각과 상사의 생각은 충돌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상사의 생각은 그 생각의 출처가 상사였으니 그 이유만으로 항상 맞았고 나는 상사가 아니니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충분한 정보와 근거, 기똥찬 논리들로 증명되어야만 했다. 물론 내가 해박한 지식과 명석한 두뇌를 가졌더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박한 지식, 명석한 두뇌 같은 것은 없었고 그런 것이 있었다 한들 상사에게 대들 싸가지까지 있지는 않았으므로 조직에서 튕겨져 나오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첫 번째 직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오게 되면서(나는 지금도 이 사건을 내가 자발적으로 행한 것인지, 타의에 의해 행해진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맞는데 말 안 듣다가 짤린 것도 맞기 때문이다. 그러니 50 대 50이라고 해 두자.) 나는 오래지 않아 다른 곳에 취업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첫 직장이 나와 맞지 않아 그런 것이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식해서 용감했던 첫 번째 경험과는 다르게 직장생활을 경험한 후 들여다본 채용공고는 하나같이 나에게 지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게재된 채용정보에는 건조하게 사실관계들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정보들은 드라마처럼 각색되어 이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될 경우 펼쳐지게 될 나의 생활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채용공고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재생되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취업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전공과 다른 분야에 무성의하게 보내진 이력서들은 긍정의 답변을 가져오지 않았다.

조직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전제 자체가 틀렸던 것일까. 이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조차 몰라도 나는 상당 부분 이 명제가 확률이 매우 낮은, 거짓에 가까운 명제라고 ‘믿게’ 되었다. 그렇다면 조직 안에서는 불가능하니 조직 바깥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아니, 조직 바깥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내가 학생 때 생각했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당연히 조직 안에서 동료들과 여러 자원을 동원해서 협업하는 형태로 생각했으므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자체를 다시 찾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하고 싶은 일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추상적인 형태로만 생각했을 뿐 괜찮은 곳에 취업하면 자연스레 하고 싶은 일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오랜 백수생활을 하였다. 중간중간 알바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 같은 곳에 가서 열심히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며 백수라기엔 꽤 바쁘게 이것저것을 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백수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직장생활을 할 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벽 앞에 다다르게 된 순간이 있었는데(그리고 퇴사로 이어졌다.) 백수생활에도 그런 순간이 왔다. 이때는 벽 앞에 다다른 느낌이라기보다 반대로 이제는 사회로 나가도(혹은 돌아가도) 되겠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이 일을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확실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는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고 나는 주 5일 40시간 노동과 이 일을 병행하기로 하였다.

조직 안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 새롭게 드는 느낌은 서점에서의 나의 생활과 이 일이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일 점심은 에그마요 샌드위치를 먹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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