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15년차. 나는 꽤나 건조한 인간이 되었다

by NY

감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아왔던 나는 회사생활 15년차만에 꽤나 건조한 인간이 되었다.

해가 가도 무덤덤하고, 내 인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그런 인간 말이다.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달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그냥 As is 가 최선임을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며 깨달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내가 해야할 것들을 하며, 적당히 사회생활을 하고, 큰 사고가 날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월급쟁이의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어느덧 15년이 흘렀고, 버텨온 삶은 딱히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보잘 것 없지도 않았다.

나는 굴곡진 회사라이프를 견뎌낸 건조한 인간이었다.

웃고 싶으면 코미디 영화나 짤을 찾아보고, 울고 싶으면 눈물이 펑펑 나왔던 드라마를 보고, 무기력해진다 싶으면 그냥 잠을 자는 일상이 365일 반복됐다.


매일, 이 생활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아주 깊은 곳에서 살며시 다시 고개를 들 때면,


나는 차갑게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하고 싶은데? 뭘 할 수 있는데?

답은, 여전히 버티는 일상이었다.


건조하게 사는 것도 익숙해지니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회사생활도 더욱 더 건조해져서 오히려 편안해졌다.

내 편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적이 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맞춰진대로, 나에게 기대한 바를 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들어주고, 우리가 적인가? 하고 경계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믿을만하다는 인상을 주고, 행여 불만이 있거나 딴청 피우지 않나 불안해하는 상사에게는 아첨의 말을 한두마디 건네는 '비겁한 정답'같은 일상 말이다.


헤쳐모여가 수없이 반복되는 '무리짓기'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겉돌지 않는다는 인상만을 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차피 친목으로 모인 무리도 깊이 들어가면 '이기적인 욕구나 야망'이 드러나는 것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그래서 회사친목모임은 대부분 '일시적인 관계'에 불과했고, 내가 이 조직에서 얼만큼 중요한 존재고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렇게 건조함이 중심이 되어버린 내 삶의 가장 윤기나는 시간은 어찌됐든 가끔씩이나마 찾아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순간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 시간들은 줄어들고, 나는 그만큼 더 무뎌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감정이 북받쳐오를 때면 당황스럽고 어색하다.


지인들과 술을 많이 마시게 될 기회가 있으면, 숨겨놨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필요없는 말들을 하게 되는데, 다음 날 숙취에 눈을 뜸과 동시에, 나는 '내가 아니었던 나' 또는 '드러내봐야 불편한 나'를 떠올리며 매우 후회를 한다.


주변이 기대하는 바대로 살아가는 삶을 조금 더 빨리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애초부터 김뿅뿅의 삶이 아니라, 나의 주변과 내 직업이 요구하는 삶으로 세팅되었다면.

나는 그만큼은 더 행복했을까.


그리고 내 인생을 이리저리 리드해주는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나를 발전시켜주고 성숙시켜준 노고에 진정으로 애정을 표시하며 살아갔을까. 원망이나 증오심, 경멸, 비난하는 마음 같은 것에 괴로워하지 않고 말이다.


조금 더 빨리 그들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비중을 알고 시작했다면, 나는 바보스러워도 마음에 맺힌 것이 없이 그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를 찾으려는 시간이 유독 피곤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들뜨는 감정이 불편하고, 건조한 일상이 이미 익숙해져버린 나에게는 갑자기 너는 꿈이 뭐냐고 물어오는 질문만큼이나 피곤하고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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