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과 공시는 '미친 놈들'을 위한 게임이다

안전한 길 = 루저 양산기

by 코치 알버트

우리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만족시켜야 할 요건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절대적 능력, 성과이다.

두번째는 상대적 우위이다.


절대적 능력은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역량이고,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역량이다.

상대적 우위는 내가 가진 역량이, 자원이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해서 어느정도 우위에 있냐는 것이다.

즉 특정한 기준으로 우열관계를 나타낼 때 내가 몇등이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체중대비 2배 정도 되는 역기를 짊어지고 앉았다 일어나는 것(스쾃)은 절대적 능력이다.

하지만 역기들기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는 것은 상대적 우위이다.

자신의 체중 2배 스쾃을 할 수 있으면 절대적으로 어떤 스포츠를 하더라도 도움되는 능력이다.

하지만 스쾃 대회라는 상대적 우위가 필요한 경쟁에선 내 스쾃능력이 스포츠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상관없다. 무조건 다른 사람보다 많이 들어야 되는 것이다.


-


미국의 기업가/투자가 (페이팔 창업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이자 베스트셀러 (제로 투 원) 작가인 피터 틸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강연을 주로 한다.

'경쟁은 루저를 위한 것이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당신이 비슷한 상품을 다루는 비즈니스가 여럿있는 시장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자. 그 시장에서 고객이 사는 상품의 갯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고객은 그 중 더 싼 걸 사려고 할 것이고, 가격이 낮은 것이 곧 상대적 우위가 된다. 그러면 그 시장에 있는 당신을 포함한 기업들은 이 상대적 우위를 얻어야만 상품을 팔고, 생존할 수 있으므로 어떻게든 상품의 가격을 낮추려는 경쟁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신의 절대적 노력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낮은 보상으로 일을 하는 것, 또는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즉, 경쟁은 루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경쟁을 하면 멀쩡한 사람도 루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이것과 비슷한 루저를 찍어내는 경쟁의 대표적인 것이 한국청년들이 생애 초기를 거의 대부분 바치는 경우가 많은 수능과 공무원 시험이다.


대학이란 고객이 입학시키려는 학생의 수는 한정되어있고, 경쟁자는 많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대학은 학생의 '절대적 학습능력' 보다는 '상대적 우위'를 기준으로 입학자를 결정한다. 그러면 대학의 선택을 받기위해서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상 절대적 학습능력이 아니라. 수능점수의 상대적 우위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능은 무엇을 측정하는 시험인가?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설명대로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을 하는 시험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수능의 본질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절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시험(수능)을 잘보는 것을 기준으로 수험생을 줄 세우는 것, 즉 절대적 능력평가가 아니라 상대적 우열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 두 가지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커리큘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측정하는 것과 수능성적을 토대로 상대적 우열관계를 측정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그러면 이러한 '상대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게임은 어떤 특징을 가질까?

그것은 절대적인 능력과 무관하게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잠재적으로 필요한 노력의 양이 무한에 가깝다는 것이다.


내가 장담하건데 현재 문과기준 수능평균 2등급 정도만 되도, 국내에 존재하는 대학교의 문과 학부 커리큘럼을 이수하는데 필요한 '절대적 수학능력'이 부족할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위대학을 가기위해 필요한 건 그러한 절대적 능력이 아니라, 수능시험점수를 토대로한 상대적 우위이다.


공무원 시험도 불합격 한 사람 중 태반은 절대적 공무수행능력으로 치면 전혀 모자람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는 사람은 정확히 공무수행능력에 문제 없는 사람이라기 보단, 시험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 사람이다.


-

이렇게 비슷한 수준의 경쟁자가 2명 이상인 게임에서 상대적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어느 한 쪽이 죽거나, 포기할 때 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기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대게의 경우 '니가 죽건, 내가 죽건 결코 내가 먼저 브레이크를 밟진 않을 것이다.' 라는 치킨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일종의 '광기'이다. 그리고 이런 치킨게임을 버텨낼 자본력이나, 기타 지지적 자원이 더욱 도움이 된다.


나는 공시와 수능이 기본적으로 더 이상 절대적 능력과 상관없는 '상대적 우위'를 통해서 이기는 게임이고, 그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위와 같은 치킨게임을 위한 자본과 광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들이 하는 게임의 본질이 무엇이고, 여기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결정을 내릴수 있다. 치킨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다른 게임을 할 것인가.


남들이 다하는 이러한 게임은 굉장히 안전해보이지만, 그 이면은 냉혹한 루저 양산기이다. 다른 사람 보다 어떻게든 한 발 더 나갈 정신나간 집념이 없으면 대게 당신은 패배자가 된다. 집념없이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천재?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알지 않는가. 너와 나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나의 글을 읽고, 자신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종류의 게임에 적합한 인간인지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해온 바로는 대부분은 아니다.



-


마지막으로 이 치킨게임을 하는 것 외에 한국사회에 대안이 없다는 반응이 분명 있을 것 같아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신이 세상에 대해서 가진 '절대적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당신이 절대적으로 세상에 대해 무식해서 그렇다.


그것은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매우 불편한 일일 것이다. 당신의 존재를 제한하는 일이다.

당신이 수능이나, 공시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투자하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에 투자한다면 당신은 결코 대안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치킨게임을 하기로 했건, 안하기로 했건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글을 마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SNS로 인생을 확실하게 말아먹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