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 속 자유의 크기를 결정하기
나는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삶에 주도권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잘 다루도록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주도권을 가지게 한다고 하면 대부분, 영향력을 떠올린다. 내가 주도적으로 세상과 타인과 자신을 원하는 대로 바뀌도록 하는 힘, 그것이 영향력일 것이다.
헌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심리기술이고, 뭐고 별 짓을 다해봐야 우리는 고작 인간이고 세상은 우리의 능력과 지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내민다는 것이다.
-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면 영향력과 그것을 키우려는 시도의 근본적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최면을 내 코칭 프랙티스의 메인도구로 오래 사용해왔고, 최면은 그야말로 컨트롤과 영향력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나는 영향력의 팬이다. 영향력은 달콤하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다. 문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정말이지 세상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모자란 곳에서 발생한다.
얼마 전에 고인이 된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 중 한 명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를 보라, 빠르고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자신의 신체를 평생에 걸쳐 훈련했고, 그의 신체능력을 웃도는 인간이 인류역사 상 몇 없을 정도로 영향력을 단련했지만 헬기가 망가지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재산은 수천억원에 해당한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척 많은 것이 있다. 그 정도 돈이 있으면 다른 사람 몇 살리는 거,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돈으로 자신을 살릴 순 없었다.
즉 이러한 일들 앞에서 맞서게 되면 우리가 가진 영향력은 있으나 없으나 의미가 없을정도로 상대적 열세를 보이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영향력을 갈고 닦는다고 한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우리 앞에는 떡하니 나타난다.
방금 이러한 일들을 문제라고 표현했다. 잘못된 표현이다.
본질적으로 이것들은 문제가 아니다. 풀 수 있어야 문제고 이것들은 그냥 그러한 부자유함, 제한, 고통일 것이다. 그저 주어진 명제이다. 어찌되었건 이런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제한이 우리 앞에 다가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이런 상대와 맞서 대체 어떻게 주도권을 가진단 말인가?
심리기술이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우리의 영향력이 세상에 비해 이리 보잘 것 없는데 그것들을 훈련하는게 의미가 있긴한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내가 제시하고 싶은 심리기술적 방법은 영향력과는 반대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른바 '수용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터무니없게 강대하고, 복잡하고, 동시에 부조리하고 인자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우리가 아무리 애쓴들 우리의 영향력은 세상 전체로 보면 아주 한정된 영역에서만,
그것도 세상이 그것을 하게 가만히 내버려둘때만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 것이란 것을 받아들이는 힘이다.
동시에 이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부자유를 최대한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다.
주어진 제한과 고통을 줄이려고 하지도 말고, 크게 보려고 하지도 말고, 바꾸려고 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그저 주어진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힘이다.
-
이 수용력을 가지는 것은 왜 중요할까?
여러가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가진 '부자유 속의 자유를 최대화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한적 영향력이 의미와 힘을 되찾는 맥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설적 자유의 발생이다. 제한에서 도망치고, 싸우고 제압하려고 꽉 쥐고 묶여있던 손이 제한을 있는그대로 내버려두고자 내려놓으면 손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제한적 존재임을 받아들이자, 역설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만약 우리가 받아들인 제한이 우리를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손 안의 한 줌 자유를 누릴 수 있게된다. 압도적 무력함의 수용이 오히려 부자유 속 자유를 늘려주는 것이다.
과거의 나쁜 사건을 대하는 방법이 좋은 예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이 마음에 안든다고 계속 붙잡고 있느라,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는 인간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어찌보면 교만하다. 마치 자기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당신에게 가해지는 절대적 부자유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부자유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부자유의 절대성을 수용하지 못하면 당신은 그나마 있는 자유를 버리게 될 것이다.
-
자신의 자유를 버리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누구는 절대적 부자유를 겪으면 마치 그것이 해결가능한 문제인양 군다. 받아들여할 명제를 해결해야할 문제로 보고 그것을 손으로 꽉 잡고, 집착한다. 마치 낙원을 침범한 거목을 자신의 손으로 잡고 흔들다보면 뿌리가 뽑힐 것 같이, 위의 과거의 사건을 바꾸려고 하는 것과 같다.
누구는 그러한 부조리함이 있기에 우리네 삶과 영향력은 의미가 결국 없는 것이라는 허무주의를 택한다. 이것은 부조리함을 받아들였다기보단 그것을 핑계삼아 자신의 삶을 방치하는 것에 가깝다. 캔버스에 얼룩이 묻고,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다른 색을 묻히기도 하는데, 내가 여기에 그림을 그려 뭐하냐는 것이다.
누구는 원래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빼았겼다고 징징거리기도 한다. 마치 완전무결한 주도권과 고통과 부조리함 없는 세상이 원래 자기의 것인데 그것을 빼았긴 나는 억울하다며 분개하며 성토하는데 인생을 바친다.
위와 같은 상태에서 영향력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뭔 영향력이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 우리는 본디 제한적 존재이고, 그렇기에 부자유한 존재란 것을 받아들이면, 또는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자유를 확인하게 된다. 그 자유 속에서 영향력은 다시 생명력을 되찾는다.
-
내가 좋아하는 노자의 글귀를 하나 남기며 글을 마친다.
天地不仁以萬物爲蒭狗 - 천지불인이만물위추구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 만물을 지푸라기처럼 대한다'
한낱 지푸라기랑 똑같이 대해지는 것은 한낱 인간인 우리의 부자유이고,
그래서 어쩔거냐는 오직 인간인 우리의 자유인 것이다.
-심리기술 코칭/교육기업 온리휴먼 대표 코치 알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