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갈 뻔 한 이야기
나는 하루를 쪼개서 몇시부터 몇시에는 무슨 일하고, 그 다음 몇시부터 몇시에는 저런 일하고, 다음에는 또 다른 일 하고 하는 식의 규칙적이고, 정형적인 시간사용을 정말 못하는 편이다. 하루를 일정 숫자 이상의 조각으로 쪼개기가 힘들다고 할까.
운동에 꽂히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거 생각하고, 글쓰기에 꽂히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테마A에서 테마B로 전환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뇌를 가졌다.
그래서인지 테마 A에 집중한 상태 -> 테마 B에 집중한 상태 ->테마C에 집중한 상태로 잘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내 경우는 집중안된 분산상태 -> 테마 A에 슬슬 시동을 거는 상태 -> 테마 A에 몰입한 상태로 진행되고 B로 몰입을 해야한다치면 집중안되고 분산된 상태를 거쳐서 시동을 걸고 비로소 테마B에 몰입할 수 있다.
일단 몰입을 하게 되면 퍼포먼스가 상당히 괜찮게 나오는데, 그 전후로 몰입안되는 시간이 늘어져있다. 집중 못할 때는 산만하기까지 하다. 내 천성이 이렇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살면서 타이트한 시간표를 짜고 실행하는 걸 몇번이고 해봤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ㅋ
재미난 예로 어릴 때 무슨 학원을 다녔는데, 한 학원선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넌 시험점수만 잘 나오면 되는 줄 아니? 다른 애들 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태도가 중요한거야!" 저런 소리를 들었던 이유는 수업시간이고, 자습시간이고 나는 계속 딴 짓을 하고, 떠들다가 시험이 얼마 안남으면 귀신들린듯 집중해서 점수로는 1등하고, 2등하고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현대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상당히 자주 경험했다. 한 때 이거 "성인ADHD 같은데 병원가야하나?"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도 했으니까.
다행인건 내가 내 뇌를 사용하는 법을 조금씩 익혀왔고, 내 특성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섹터를 발견해서 거기서 내가 가진 것을 잘 활용했다는 것일 것이다.
내가 찾은 전략은 비유하자면 이렇다.
일단 내가 못하는 것은 여러가지 다른 밭을 경작하는 농부와 같은 전략이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벼농사하고, 8시부터 10시까지는 포도농사하고 10시부터 12시까지는 감자농사를 1년 내내 꾸준히 한다? 나는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형짐승을 하나 찍어서 집요하게 쫒아서 사냥하는 사냥꾼 전략이다. 며칠이 걸리든 목표한 사슴을 연구하고, 흔적을 찾고, 천천히 움직이다가 기회가 오면 잡는다. 일단 사슴을 잡으면 3주는 먹고 놀아도 된다.
위의 농부 대 사냥꾼 아날로지를 현대적으로 바꾸면 자신에게 할당 되어진 여러 업무를 매일 꾸준히 수행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과, 일정기한까지 어떻게든 하나의 전문적 프로젝트를 완수하면 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하겠다고 하면 당장 1억원 현찰로 주면서 7급 공무원 시켜준다고 해도 못한다. 하지만 세상에 제법 많은 사람은 얼씨구나 하면서 할 것이다.사실 농부형 뇌를 가진 사람은 뇌사용법을 파악하는 고생을 좀 덜 해도 된다. 최근 200년간 농부형 뇌를 가진 사람은 어른들 말 잘 들으면 그게 자기 뇌를 잘 사용하는 방법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면, 집중하는 방식, 또는 성격적 특성이 그 시대의 대세 전략과 맞물리지 않는다고 하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자는 그 결론에 빨리 도달하고, 그렇지 못한자는 고생고생하고 도달한다. 누군가는 평생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의 타고난 특성을 바꿀 순 없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그 결론에 말이다.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로인해 빛을 보지 못한 잠재력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워지는 겨울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