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불편한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보려 애쓰고 상대의 태도를 바꿔보려 공을 들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그럴 땐 하루의 피로보다 사람에게서 오는 감정 소모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수선하려다 보면 옷감만 상한다. 애초에 사이즈가 다른 옷을 내 몸에 맞추려 드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가치관이 다르고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 애쓰는 과정은 소중한 내 시간을 길바닥에 내버리는 것과 같다.
타인을 바꾸려는 시도는 오만이자 착각이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는 상대를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변하지 않는 상대를 보며 좌절하기보다, 그 노력을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써야 한다.
인생은 짧고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오늘 써야 할 귀한 에너지를 안 맞는 옷을 수선하는 데 낭비할 여유가 없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설득하느라 진을 빼기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다. 내 삶의 주권을 되찾아오는 선행이다. 나를 지치게 하는 인연에 수선비를 지불하는 일을 멈춰야만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오늘 하루는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애쓰지 말자. 대신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를 찾는 데 집중해보면 어떨까.
Q.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중, '수선'을 멈추고 '리'를 조절해야 할 존재는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