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안 Jun 13. 2022

너무 열심히 하지만, 쉽게 지치는 당신에게

잘 쉬는 것도 능력

워커홀릭 (Workaholic)

다른 것보다 일이 우선이어서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여 사는 현상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몰랐다. 그저 닥치는 대로 열심히만 하면 남들보다 빠르게 인정받고, 빠르게 성공할 줄 알았다. 매일매일을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직장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밤낮없이 일에만 몰두했다. 결국 나는 이것의 존재도 모른 체 자연스럽게 워커홀릭이 되어버렸다.


물론 워커홀릭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맡은 업무에 대한 지나친 책임감과 작은 것 하나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집착은 다행히 매번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가끔, 네거티브 피드백이라도 받은 날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고, 머릿속에는 온통 그 피드백 생각뿐이고, 심지어 입맛도 없어지고, 밤에는 편히 잠도 잘 수도 없었다.


목표에 집착하고, 계획을 철저히 따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주말도, 휴가도, 심지어 공휴일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젊은 패기와 열정이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다.



대학생 때는 미국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점과 영어 시험 점수에 목숨을 걸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시절부터 관심사는 오로지 전공과목과 교양 과목에서 모두 A+ 학점을 받는 것이었다. 물론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전공과목이 더 어려워졌지만, 동시에 밤을 새우는 나날과 청바지를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잠에 드는 나날도 더 많아졌다. 또한,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다음 날에 영어 학원을 등록하여 TOEFL과 GRE 시험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엄청난 실행력을 발휘하였다. 결국, 대학교는 공대 수석 (4.4점/4.5)으로 졸업하고, TOEFL (118점/120) 시험과 GRE (V164/Q168/W5.0) 시험 점수도 잘 받아 3군데 미국 대학원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대학교 4년 + 군대 2년 동안의 노력으로 당당히 미국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집안의 경제사정으로 학비를 낼 수가 없어 포기하려는 찰나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돈과 영어에 목숨을 걸었다. 나름 영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생전 처음 와 본 서호주 퍼스에서의 영어는 내가 알던 영어와 너무 달랐다. 하지만, 벌써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타일, 단열재, 청소, 레스토랑 웨이터, 키친 핸드, 요리사, 카페 바리스타, 파티시에, 호텔 하우스키핑 등의 고된 일부터 닥치는 대로 시작했다. 조금씩 영어 실력도 늘면서 이후에는 모바일 수리, 세일즈, 디지털 마케터, 홈페이지 디자이너, 코딩 과외, 영어 과외, 영어 통번역, 크로스핏 코치, 스포츠 영양 코치 일도 할 수 있었다. 결국, 1년 동안 약 1억 원 정도의 대학원 학비를 벌고, 호주 엑센트도 얻었다.


너무 덥고 너무 습한 플로리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미국 대학원에 도착했다. 호주에서 대학원 1년 정도의 학비를 준비했지만, 이후에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실에 조인하여 장학금을 받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지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지도 교수님의 연구와 논문에 대해서 모두 꼼꼼하게 공부하고, 예상 질문과 답변도 철저하게 외우고, 또 외웠다. 또한, 학과 성적도 중요했기 때문에 언제나 강의실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녹음한 수업 내용을 또 듣고, 매번 TA(Teaching Assistant 조교) 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부었다. 결국, 미국 대학원 첫 학기 때부터 석사생으로 연구실에 조인할 수 있었고, 첫 학기 성적 (4.0점/4.0) 또한 만점을 받았다.


이렇게 쉴 틈 없이 달려오면서 마침내 유명한 글로벌 반도체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하였다. 높은 연봉과 다양한 혜택으로 앞으로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번아웃이 찾아왔다. 더 이상의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가 재미없고, 무의미했다. 동료들은 작은 농담에도 하하호호 웃고 떠들면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업무를 시작하지만, 나는 어두웠다. 그저 매 순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었던 지난 과거들만 그리워할 뿐,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시 그 열정과 동기부여를 찾기란 어려웠다. 결국, 사표를 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후에는 잠도 많이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많이 하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도 많이 먹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다.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삶의 생기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웃으면서, 결국 좋은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휴식에 대한 중요성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잘 쉬는 것 또한 일을 잘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언제나 너무 급하게 결과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즐겁게,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라도 이것을 깨닫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언제나 "쉬면 뭐해, 그냥 더 일하고 말지.."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다. 좋은 휴식을 통해서 새로운 인사이트도 얻고, 기발한 창의성도 기르고, 또한,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이전의 과정들을 돌아보면서 제대로 배우는 것이 결국에는 일을 더 즐겁고, 더 오래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번만  생각해보자.

내가 너무 열심히만 달려왔는가?

그동안 나를 위한 휴식을 가져보긴 했는가?


좋은 식을 한번 가져보고, 그래도 포기하고 싶다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 가끔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훌륭한 동기부여 연설보다, 조용하고 편안한 좋은 휴식이  효과적이다.




You must learn to rest well to go further and higher.

더 멀리, 더 높이 가기 위해서는 잘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