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야기 EP4
토익 만점을 위해 오늘도 새벽 1시까지 토익 기출문제집을 푼다. 승진을 위해 수없이 쓰고 고치면서 연습했던 영어 프레젠테이션 스크립트를 또 고친다. 해외여행 가서 자신 있게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퇴근 후에 영어 회화 공부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영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나도 그랬다. 이 순간에는 옆도 뒤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앞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는 것을 30년 넘게 영어 공부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영어 시험을 준비하거나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영어 시험 종류와 개인의 영어 실력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영어 시험을 준비한다. 하루라도 빨리 원하는 점수를 받기 위해서 매일 영어 시험공부에만 집중한다. 계획대로 원하는 기간 내에 원하는 점수를 받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반면에, 순수한 영어 실력 또는 업무를 위한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특정 기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지금 몇 년 안에 영어를 마스터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감한 발상이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함께 공부했던 많은 분들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교환학생,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해외 대학/대학원, 해외 취업, 외국계 회사 승진/이직의 목표를 가지고 이번에는 기필코 영어를 마스터하겠다는 열정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에 대한 그 뜨거운 열정이 활활 타올랐지만, 몇 개월이 지난 후에 결국 차갑게 식어버렸다.
영어를 통해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목표가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만든 가장 큰 동기 부여이자, 앞으로 긴 여정 동안 지치거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전에 중요한 한 가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영어 공부는 100m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42.195km 이상을 달리는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은 좋지만,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원하지 말자. 그저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하자. 이것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이것을 몰랐다. 영어 시험을 공부할 때도 3개월에서 6개월 안에 끝장을 보려고 매일 밤새도록 영어 시험을 공부했다. 다행히 기간 내에 원하는 점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이걸 왜 이렇게 까지 공부해야 하는 걸까? 영어라는 언어를 공부하는 것인데, 왜 즐기지 못하고 무슨 고시 공부하는 것처럼 매일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또한,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양의 내용을 외우고 시험에 쏟아내니, 정작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모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연구원으로 일할 당시에는 매주 연구에 대한 결과를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수차례 연습도 했지만, 첫 프레젠테이션을 망쳤다. 직접 연구도 했고, 결과도 도출했지만,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는 순간에는 그저 앵무새처럼 스크립트를 따라 읽었다. 영어로 말은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핵심을 전달하지는 못 했다. 즉, 수박 겉핥기식 영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내 영어 실력에 크게 실망하고 자신감도 떨어지면서, 결국 자존감까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벼락 치기와 수박 겉핥기식 영어 공부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영어 실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미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하지만, 반드시 바꿔야만 했다. 수박 겉이 아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수많은 단계들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시간이 몇 배로 더 오래 걸렸다. 더 이상 벼락 치기가 아닌, 자세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공부하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뇌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과정들을 거칠 수 있었다.
영어 공부에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 방대한 양의 내용을 공부하기보다는 매일 꾸준하게 조금씩 조금씩 공부하는 것이 영어를 배우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단순히 뇌에 더 많은 양의 내용을 넣기보다는, 틈틈이 쉬는 시간을 활용해서 뇌가 공부한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영어를 더 오래 기억하고,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영어 실력을 높일 수 있다.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매번 물어본다. "이번 시험 망하면 바로 다음 시험 준비해야겠죠?" 단순히 암기하지 않고,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공부했다면 영어 지식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동안 배웠던 내용을 잊어버릴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음 시험 전까지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천천히 다시 한번 공부해 보자. 다음 시험이 이상하게 더 쉽게 느껴질 것이다.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영어와 완전히 단절하라는 것은 아니다.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올바른 쉬는 시간 사용 방법은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영어와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 시험을 공부하고 있다면, 쉬는 시간 동안에는 공부했던 내용을 복습할 수도 있지만, 영어 책이나 팝송을 들을 수 있다. 영어와 연결된 체 영어 시험으로부터만 잠깐 떨어져 있는 것이다. 다시 영어 시험공부로 돌아올 때면 훨씬 더 상쾌한 기분으로 공부할 수 있다.
업무에 대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면, 쉬는 시간 동안에는 다른 분야의 영어를 접해보자.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에 대한 영어 강의를 듣고 있다면, 쉬는 시간 동안에는 비즈니스, 디자인, 마케팅,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등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또는 현재 공부하는 분야와 완전히 다른 분야의 영어를 접해보자.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지식의 다양성도 넓힐 수 있다.
영어를 공부하는 과정은 길고, 어둡고, 힘들다. 처음에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조금씩 매일 꾸준하게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에 압도당해서 서두르지 말자. 목표는 그저 영어 공부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일 뿐,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중간에 가지는 쉬는 시간을 활용해서 반드시 영어를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영어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즐거움의 대상으로 내가 직접 바꿔보자!
Haste makes waste.
급할수록 돌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