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처럼
요즘 내 삶은 격동의 시절을 스쳐, 조금씩 안정기를 찾아가고 있다. 엄청난 지각변동이 있었다. - 지난 <나의 변형 이야기: 나는 단지 살을 빼려던 것 뿐이었다> 외 시리즈 3편 참조 - 그리고 나는 ‘새로운’ 판으로 올라타고 있다.
새로운 삶이다. 진통은 있었지만, 여러모로 새 삶이 시작되었다. 몸에 대해서도, 돈에 대해서도, 내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진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모든 것이 옮겨져 가고 있다. 삶의 여러 장면들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관찰자 시선으로 보며 체크하고 있다. 그 모든 변화들은 내가 최근 직면하고 치열하게 다룸으로써 이뤄낸 것들이다.
그런데 체크하다보니, 다른 것들은 다 내가 스스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해봄직하겠다 싶었는데, 어떤 특정 한 부분은 ‘혼자서는 다룰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관계는 우리 자아(ego)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특히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반응, 저항들은 좋은 시그널이다. 내가 성숙해가는 여정에 무엇에 대한 마주함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최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A에 대해 돌아볼 일이 있었다. A의 말 하나가 내게 오랜 시간 머물고,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한 번이 아니라 제법 긴 시간 동안 관련된 유사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쌓여온 덩어리란 걸 알았다. 다른 많은 것들이 정리되며, 평화를 찾은 것 같았지만, 그 많은 것들이 그 동안 메인으로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눌러둔 엉킨 마음이었다.
나는 이 엉킨 마음을 풀어야 했다. 나는 A를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싶었고, A가 주는 에너지에 휘둘리기보다 평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왜냐하면 A를 통해 표면적으로 다가온 이 엉킨 마음이, A와 유사한 B에게도, C에게서도 받는 마음이란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A, B, C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내가 힘들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이걸 다뤄야 내가 코치로서도 자기 관리가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나의 ‘멘토’에게 ‘멘토링’을 신청했다.
2023년 4월 26일 수요일 오후 2시
[멘토님과의 첫 멘토링 시간]
나: (최근 A의 말, 메시지, 반응을 통해 내가 괴로웠던 마음을 전했다.)
*멘토: 희소님, 우리는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불가피하게 판단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 판단을 할 때마다 우린 에너지를 씁니다. 결국 내가 그 사람과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만나느냐겠지요. 그런데, 제가 희소님 이메일을 받고 드리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어요. ‘아, 나는 저 사람을 도와줄 수 없겠구나. 이 사람하고 관계를 끊어야 겠다라고 속으로 다짐해요. 다가온다면, 거부하진 않겠지만 내가 다가가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생략)...
*나: 음, 끊어내진 않지만,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멘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나의 에너지, 사랑을 주는 거에요. 관계에서도 시작과 끝이 있어요. 희소님, 결국 ‘자기 자신의 근본적인 스텐스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라는 존재의 대상 역시, 가슴, 의식(머리), 몸을 케어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가 관계를 맺는다, 사랑을 준다 하면 그 첫 대상이 ‘우리 자신, 나 자신’이 먼저 되어야 해요. 그런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향해야 해요. 내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나의 툴, 대상인 가슴, 의식, 몸입니다.
‘사자’를 떠올려보세요. 항상 쉬고, 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상황을 인식하고 있어요. 모든 상황을 인지는 하지만, 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지금은 사냥할 때가 아니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필요할 때, 내가 움직여야 할 때, 그 때만 번개처럼 움직여서 그것을 해냅니다. 그러니까, 진짜 내가 움직여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내 기운을, 축적하는, 모으는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우리도 그래야 해요. 평소에는 몸, 가슴, 의식을 돌보며 항상 준비해야 하는 거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온전히 집중해서 해낼 수 있도록, 그 외의 것들에는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tool(몸, 가슴 의식)을 항상 연마(sharpen)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생략)...
*멘토: 사실 A와의 관계는, 희소님께 보면 결국 ‘계속 반복된 패턴’일 거에요. 이제 A가 스스로 길을 찾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지요. 오직 스스로 선택했을 때 변화는 가능한 거에요. 정말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은 관계에 돌아가지 않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A 입장에서는 희소님 같은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일지 몰라도, 희소님에겐 아닐 수 있어요.
…(생략)...
*멘토: 희소님과 대화 나누면서 제가 발견한 희소님의 관계의 패턴이 있습니다.
*나: 네? 그게 어떤 건가요?
*멘토: 바로 ‘애쓴다’는 거에요. 그 애씀을 놓아줘야 합니다.
*나: (속으로 애씀이란 표현을 듣고 일부 끄덕이며..) 어떻게 놓아줄 수 있나요?
*멘토: 먼저 스스로 애썼음을 인정해주고, 감사해줘야 합니다. 그래, 그래도 A와 쉽지 않은 상황 속에 ‘ 그 상황 속에서도 나름 선택 잘 한거야’하며, 자신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 되면, A도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되면, 그 사람에게 희소님 안에 있는 이 엉킨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엉킨 마음을 희석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애씀을 이별하고, 사랑의 관계로 넘어가야 해요. 정화(purify)되는 과정을 거쳐야 그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희소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을 정화하는 거에요. 그 방법은 내가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생략)...
*멘토: 희소님의 패턴은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에 있어요.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희소님, ‘미안하다'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해요. 미안한 일이 없는데 상대방을 위해 미안해 하는 관계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해요. 나의 가슴에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관계는 의사, 의도가 유사해 공동체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혼돈이 오고 깨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내 기대를 깨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emptiness입니다. 기대를 내려 놓는 것,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을 하면서 오히려 제대로 들리고 진정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희소님이 그 동안 어린 자아(ego)를 가진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였을 거에요. 물론 그 가치는 내가 의도한 것이어서 상처는 아닙니다. 인내의 과정은 필요한 법일테니까요.
…(생략)...
역시 강력한 대화였다. 내 속에 있는 마음의 흐름, 말로 언급하지도 않은 나의 관계 패턴들까지 속 시원하게 주고 받았다. 수긍할 수 밖에 없었고, 제안 주신 솔루션도 너무나 공감됐다. 내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치유 과정을 돕고 싶어서, 그 사람의 억울해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편에 서 주고 싶어서 이해하고 넘어간 내 지난 나날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물 흐르듯 자유로이 흘러 지나간 게 아니라, 사실 아주 잔잔히 내 마음 한 켠에 티 안나게 엉켜가고 있었고, 어느 새 큰 엉킴으로 굳어버렸단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정말 풀 때였다. 그 사람을 위하느라 내 마음과 존재를 희생, 애씀하지 않는 것. 나를 돌보는 것. 그리고 날 힘들게 하는 A, B, C와 이제는 멀어지는 것. ‘사자’처럼.
멘토님의 말들에 모두 끄덕이며, 막 대화를 마무리 지을 무렵이었다. 멘토님이 ‘이건 오늘의 주제는 아니긴 한데, 오늘 당신과 얘기하며 이런 게 느껴져서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어’하는 눈빛으로 마지막 말을 거셨다.
*멘토: 희소님은 ‘too serious’한 거 같아요. 삼성 같은 대기업에 사는 사람들은 회사를 아주 최우선(primary)으로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니까 회사 그 외의 다른 것들(가족, 건강 등)은 희생하며 뒤로 두고 살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많이 아프고 쓰러지는 사람 많이 봤어요. 굉장히 그렇다는 것은 ‘너무나 압력하에 살아가고 있다는’걸 뜻하거든요. 사람에게 때때로 그런 압력의 시간은 필요하긴 해요. 동굴 같은 시간들이죠. 그런데 삶을 동굴 속 같은 기간으로만 나를 몰고 가면 안 되요. 그저 나를 푹 쉬게 할 수 있는, 나를 즐겁게 채울 수 있는 그런 게 아주 중요해요. 조금 더 리듬감 있게 할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 멘트는 정말 300% 공감했다. 아마 삶의 다른 시기에 이런 말씀을 주셨으면 내가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나는 작년 5개월이란 시간 동안 ‘스코틀랜드 프로젝트’를 거치며 내 안의 중요한 문장 ‘나는 열심히 일하고 -> 돈은 어느 정도 벌지만 -> 그 돈을 관리하지 않아서 (얼마 벌고, 얼마 쓰는지) -> 그러면서 막연하게 돈에 대한 걱정은 있어서 -> 일은 오는 대로 많이 하고, 내 일에 대한 가치를 명확히 하지 않아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기도 해서 -> 늘 바빴고 -> 늘 바빠서 여가를 갖거나, 몸 순환이 되지 않아서 -> 결론적으로 “늘 바쁘고, 몸은 건강하지 못하고, 돈은 회피하는” 그런 이상한 패턴을 만났다. 그리고 올해 들어 이 패턴을 매일 뺨 맞고 순살됐다는 느낌으로 직면해왔다. 그러게 지금은 어느 정도 큰 덩어리들이 다루어졌기에 이번 멘토님의 저 멘트에 잘 수긍할 수 있었다.
코치로서 나는 정기적으로 멘토코칭, 코칭수퍼비전도 받지만, 이렇게 신뢰하는 멘토분께 멘토링도 받는다.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이 멘토링도 월 1회 받으려 한다. 나보다 먼저 내 길을 나아간 인생 선배에게 받는 멘토링 포인트는 내게 번쩍이는 지혜로 다가온다. 동시성 같이 다가온 말 ‘사자’라는 비유, 멘토님이 내게 사자가 되라 했다. 정말 필요한 순간 몇 십배의 몰입으로 제대로 에너지를 쓰고, 나머지 기간은 고요히 자신을 연마하는 삶. 이제는 사자가 되라 하셨다.
그렇게 나는 멘토링이 끝나고 매일 틈틈히 스스로에게 묻고 되내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사자’처럼 보낼 수 있을까?’
‘나는 사자다. 나는 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