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에 있었던 일이다. (아, 벌써 10여일이 지난 일이구나, 일상 속 틈틈히 이 경험에 대해 뒤돌아봤기에 이렇게 시간이 흐른지 몰랐다.) 나는 아는 분께서 대표로 계신 영어 회사에서 ‘펀딩’을 시작하신다길래, 힘도 되어드리고 싶기도 했고, 관심도 있는 프로그램이라 ‘펀딩에 대한 문의’를 드리려 카카오톡 채널을 검색해서 문의를 남겼다. 그랬더니 자동응답 톡이 왔다.
‘OOO에 의해 차단된 사용자로 1:1 채팅을 할 수 없습니다.’
‘?’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나는 호감을 느끼고 있던 어떤 대상으로부터 소리소문 없이 미움을 받고 있었구나란 당황스러움, 이유도 모른체 거절당한 불쾌함, 나는 잘 지내고 싶었는데, 상대는 그럴 마음이 없구나를 확인한 구슬픔 등 다양한 감정들이 찰나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당황스러운 감정들이 흘러간 후 나는 문득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드리고 소명하고 싶었고,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분께 내가 받은 응답톡을 캡처하여 함께 개인 톡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보내자마자 상대방이 확인했다는 듯 ‘1’이 사라졌다. ‘읽음’이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가만히 1만 사라진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차단’은 할 수도 있지만, 개인톡을 읽고도 무응답으로 대응하시는 태도에 더 당황했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다가 응답이 여전히 없길래 나는 체념했다. 그리고 평소 잘 느끼지 않는 불편한 감정들을 잊고자 나는 다시 업무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설마, 정말 그 분이 읽씹하신 걸까? 정말 무응답하신 걸까? 내가 답을 놓친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다시 그 톡창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끝까지 답은 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난 깨달았다.
‘아, 무응답으로 응답하고 계신 것이구나.’
‘나는 당신(나)과 관계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그렇게 나는 그 분과의 관계를 체념하며,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이미 한 쪽이 놓은 관계에 내 마음을 내어놓는다 한들 그것은 일종의 불편한 ‘집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은 그 배움들에 대해 글로 나누려 한다. (나누고 나면 나에게서도 통합되어 훌훌 털어 날아갈 것 같다.)
하나는 ‘내 마음의 흐름’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하루 정도는 마음이 불편했다. 일상 속 다른 장면들마다, 왼쪽 가슴 아래가 ‘찡’하고 아파왔다. 누군가에게 미움, 거절 받는 것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었다. 그렇게 신체적 반응을 겪는 동안 나는 내게 자꾸 질문했다. ‘왜지?’, ‘그 사람하고 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더라?’, ‘(특정 장면을 떠올리며) 설마 그 때 그 장면 때문인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말 없이 차단하시고, 무응답하시다니 서운하다.’,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오해를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 마음들이 흘렀다. 정말 대화할 기회만 주어질 수 있다면, 왜 그러셨는지 이야길 들어보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더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찌르던 신체적 반응도 무뎌지고, 가슴에 응어리진 부정적인 감정들도 흘러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내 가슴에 이런 말이 올라왔다. ‘미안합니다.’ 아,,, 이 말은 또 무엇이지? 스스로도 낯선 말이 올라와서 멈추어 마주보았다.
‘아, 미안하다. 가슴 깊이 상대에게 미안하다.
나로 인해 힘들었거나, 나로 인해 불편했을 지점이 있었을 상대에게 미안하다.’
그 때부터 나는 허공을 보며 입으로 ‘미안해요’라고 말을 뱉거나, 눈 감고 기도할 때마다 ‘미안합니다.’라고 되내었다. 만나지 않아도,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연결되지 않아도 내 마음이 바람결에라도 흘러가길, 상대가 그 마음을 몰라줘도 괜찮으니, 그냥 내 마음을 전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4글자, 5글자를 입 밖으로 가슴으로 내뱉을 때마다 차단된 나와 차단한 상대 모두를 품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고요히 읊조린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코치로 일하며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1년에 1분 정도는 있었다. 어떤 고객은 마지막 세션을 대면으로 한 후, 귀가길 보낸 메시지에 읽고도 답이 없으셨고 그 이후로도 연락을 끊으셨다. 어떤 고객은 코칭 세션 일정 사이, 주말 오후에 갑자기 전화 오셔서 내가 진행하는 이 코칭이 너무 불만족스럽다며 큰 소리로 불만을 담아 화내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면대면 세션에서 다시 평화롭게 만나기도 했다.) 또 어떤 고객은 인증 챌린지였는데, 0시 넘어가면 실패인데 0시 땡 하고 올렸는데 내가 x 체크했다고 장문의 카톡을 새벽에 불만 가득 담아 보내시기도 했다. 그래, 처음은 아니었다. 가끔 받아서 그 때 그 감정들을 잊어서 그렇지, 때때로 있는 일이었다. 끄덕끄덕.
그리고 두 번째 배움은 ‘나도 누군가에겐 싫은 사람일 수도 있다’를 가슴에 새긴 것이었다. 워낙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아주 좁고, 일로 만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나에 대한 호감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일이 많아서 잊고 있었다. 그래, 누군가에게 나는 별로일 수 있는 사람이지. 그들이 말로 행동으로 굳이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군가에게 나는 싫은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10명의 사람이 있으면, 이 중 1-2명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어딜 가도 나와 맞지 않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였다. 가벼웁게. 반대로 생각하면 나도 그렇다. 어느 모임에 가도 아 저 사람은 정말 나랑 잘 안 맞구나, 가급적 저 사람하고는 멀리 지내고 싶다 느끼는 사람이 생기는데, 아마도 동시적으로 그 사람도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날 비호감으로 느끼는 것도, 내가 그 사람을 비호감으로 느끼는 것도 그저 자연스러운 반응들일 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1) 누구나 날 호감적으로 느끼겠지라 착각하지 않는 것과 2) 모든 사람에게 호감적으로 되고 싶어서 불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난 이번 일로 새삼스럽게 이 두 가지를 가슴에 깊이 새겼다. 불필요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으며 살고 있었지만, 은연 중 누군가에게 내가 비호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놓고 있었다. 그래, 10명 중 1-2명은 날 미워할 수 있지, 마음에 안 들어할 수도 있지. 당연한 것이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배움은, ‘나에게 소중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집중하며 살자’였였다. 마침, 인스타그램 쇼츠로 ‘양희은’씨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sKPiSWgU8Z/?igshid=MTIyMzRjYmRlZg==) 결국 한 두 사람만 붙들고 살아간다는 말이 와 닿았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밤 메시지 보낼 수 있는 사람, 내 진짜 컴플렉스를 그저 나눌 수 있는 사람, 내가 무얼 도전한다고 해도 ‘아묻따’ 응원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주는 마음과 관계에 더 감사하고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코치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람과 만나 감동하고, 울고 웃고, 만나고 헤어지고, 삶을 나누는 일.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일 순 없다는 사실을 용기있게 받아들이려 한다. 누군가에게 나는 최악의 코치일 수도 있음을,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불편함을 줬을 사람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듬어 가급적 나로 인해 상처 받는 이가 조금은 더 적을 수 있도록, 나를 만나는 이들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개인적 마음수련은 이어가려 한다. 나는 이 일이 좋으니까, 이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코치로 훌륭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개인으로도 잘 성숙해지고 싶다.
*추신:
내 아이디를 ‘차단하기’를 누르신 분께 (나로 인해 힘들었을 모든 분들께)
: 제가 불편하게 해 드린 일이 있다면, 미안합니다. ‘펀딩’하시는 것도 홍보글 여러 채널에서 볼 때마다 진실로 잘 되길, 대박나시길 기도하고 있어요. 하시는 일들마다 큰 매출 내실 수 있길, 많은 사람에게 인정 받는 서비스 되길 기도 함께 할게요.
마음으로 진실로 미안하고, 제게 귀한 삶의 배움을 기억하고 배울 수 있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디에서든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 지난 금요일에 올라온 제 인터뷰도 공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