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실력이 되서, 임원코칭을 하게 된 건 줄 알았다"
지난 주 나의 첫 임원코칭 세션이 있었다. 그것도 대기업, 그것도 경남 지역의 업무를 총괄하는 신임 임원분이셨다. 인사팀이 보내주신 그 분의 직장에서의 지난 이력들은 실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분의 이 직장에서의 첫 근무 기간은 무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였으니 말이다. 그 분을 만나기도 전부터 ‘임원’이란 두 글자 속에 그 분의 삶의 역동과 무게감, 풍성한 경험들을 짐작하며,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인지 나는 그 앞에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내가 무슨 그 분을 코칭할 수 있을까, 내 나이에 그 분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나보다 훨씬 훌륭한 코치들이 얼마나 많은데..’ 걱정으로 시작된 쪼그라듦은 ‘만약 내 실력이 그 분들이 생각한 것보다 실은 형편 없음을 들키게 되면 어떻하지?’등의 자기 불신으로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나를 어서 ‘바로 세워야’ 했다. 이미 ‘예, 하겠습니다’ 내 뱉은 일이었다. 약속한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다루고, 코치로서 자신감을 준비해야했다. 먼저 오랜만에 옷(재킷 한 벌)을 샀다. 최근 3-4년 Zoom으로 비대면으로만 코칭하고, 강의하다보니 일복(노동복=정장)이 없었다. 그리고, 말끔히 손케어도 받았다. 일할 때 신는 구두는 구두방에 맡겨, 검은 구두약으로 윤을 냈다. 차를 세차 했다. 저녁마다 나를 신뢰하는 힘이 생기도록 기도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코칭필독서들을 다시 펼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소소하게 매일 준비해갔다. 이 소소한 준비들이 채워져, 그 날의 내가 척추를 조금 더 세우고, 담담한 마음을 단전 아래에 듬직히 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난 안다. 내가 나를 잘 닦고 준비한 느낌, 내면으로부터 채워져야 하는 자신감이 흔들릴 땐, 외부라도 먼저 닦고 채우다 보면, 어느 날 안과 밖이 같이 채워질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당일이 되었다. 처음 가 보는 길이라 조금 일찍 나섰다. 네비게이션에 본사 주소를 찍고 출발했다. 운전해 가는 길, 자기 신뢰와 관련한 유튜브 영상을 귀로 들으며 코치로서 마인드셋을 정비했다. 그래, 이보다 더 준비되어 있을 순 없었다. 내 모습, 내 마음. 그리고 옆자리에 놓인 내 가방 안 코칭자료들. 이제 현장에 가서 그저 코치로 존재하기 할 일만 남아 있었다. 나는 계속 나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코치로서 준비되었으니, 삶이 이런 장면을 내게 준거야.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넌 이미 충분한 실력이 있어. 그러니까 인사팀도 너를 선택한 거야. 가서 실력을 잘 펼치고 와.’
30여분 정도 일찍 본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들러 정신을 명료하게 해 줄 민트향 캔디 하나와 따뜻한 쌍화차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본사 1층에 들어가서 비서분께 전화 드렸다. 신분증을 로비에 맡기고, 출입증을 받았다. 비서분과 11층까지 올라가는 길 간결한 담소도 나눴다. 그렇게 도착한 1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마침내 오늘 코칭할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한 코칭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겠다 하는 찰나, 이미 임원분이 와 계셨다. 집무실 옆 회의실로 우리는 같이 이동했고, 자리에 앉았다. 비서분이 따뜻한 차 한 잔과 쿠키를 주셨다. 그렇게 나와 임원분 둘만 공간에 남게 되었다. 코칭 세션의 시작인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때 Zoom에서 뵈었던 ‘홍성향 코치’라 합니다.”
…(생략) …
“이건 제가 이 코칭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한 메뉴얼입니다.”
나는 가벼운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첫 말을 떼면서, 나는 내 안에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말은 어떨까 잡생각이 올라오며, 몸이 조금은 굳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나는 바로 ‘이완’했다. ‘툭’ 내 몸에 긴장으로 뭉쳐있는 부분들에게 이완을 지시했다. ‘툭’, ‘툭’, 긴장들이 털어져나갔다. 난 편안하게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가슴에 새겼다. ‘경청’. 그저 ‘경청’, ‘함께 존재한다’. 코칭철학을 내 가슴에 세웠다. 티가 나지 않게 눈을 잠시 자연스럽게 감으며, 이 모든 상황 속에 온전히 눈 앞에 있는 분만 담으리,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눈을 떴다. 눈 앞에 한 생애를 진실로 살아온 귀한 분이 한 분 계셨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코치로서 어깨에 힘을 뺐고, 흐르는대로 고객의 말을 함께 하다보니 대화는 편안해져갔다. 첫 세션에서 이건 반드시 해야지 하는 구조화 따위는 다 내려놓았다. 오늘 내가 딱 한 가지 가져간다면, 그것은 ‘관계구축(신뢰, 안전, 기대감 등)’이었다. 나는 코치로서의 틀들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했다. 그래, 그저 함께 했다. 함께함이 관계를 구축하는 다른 말이겠지. 내가 힘을 빼자, 대화의 흐름은 더 유연해졌고, 깊어져갔다. 코치로서 이런 반응을 보여야지 하는 시나리오를 버리고, 나는 그저 온전히 나로서 올라오는 말들을 건네고, 함께 했다. 아, 그 느낌이 참 좋았다. 힘을 다 빼니, 오히려 관계에 멋진 힘이 들어 오는 느낌.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하나의 장(aura)이 채워지는 느낌.
그 장 안에서 고객분이 나눠주시는 이야기들 자체도 놀라웠다. 비지니스 코칭이라면 이런 코칭 주제들이 나올까- 신임임원 이시라면 이런 고민을 갖고 계실까- 이런 카테고리의 주제가 나오면 나는 코치로서 이렇게 다뤄보면 어떨까 등 몇 일 동안 예측해봤던 모든 코칭 주제를 넘어서, 1도 예측하지 못한 대화의 주제이자 전개였다. 그래,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코칭’이지.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몇 십번이고 소름이 돋았다. 고객분이 나눠주시는 문장 하나하나에 나는 공명했고, 양팔에 털이 쭈뼛 섰다. 그리고 난 알았다. ‘아, 나 이 이야기 들으러 이 자리에, 이 분 앞에 왔구나.’ 고객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지금 내 삶을, 내 존재를 터치하고 갔다. 그것도 그냥 터치가 아니었다. 묵직하게 관통했다. 이 모든 삶의 디자인, 섭리에 그저 감탄이 흘러 나오자, 내 눈시울은 뭉클하게 적셔지기까지 했다. 내 온 몸을 경청의 통으로 쓰니, 이야기 나눠주시는 고객분의 이야기들도 더 깊어지고, 진실해졌다.
한참을 대화를 나누고 보니, 시간이 어느 덧 한 시간 반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 날의 대화를 정리하며, 끝으로 첫 세션에서 안내드려야 할 코칭에 대한 안내, 합의서, 코칭일지, 목표 관리 등을 안내해 드리며 마무리했다. 두 시간 넘게 몰입했던 대화를 마치고 나서야, 비서분이 타 주신 꽃차와 쿠키를 같이 먹을 수 있었다. 달콤했다. 회의실에서 일어서 집무실에서 나오며, 임원분, 비서분과 함께 다음 일정을 약속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웃으며 인사 나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나에게 들고 가며 먹으라며 주신 ‘마가레트 쿠키’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큰 경험의 문을 통과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봄으로써 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방법은 없다.
- 존 홀트 (아티스트 웨이)
나는 큰 착각 하나를 깼다. 나는 이 임원 코칭이란 경험이 내가 실력이 되서, 역량이 채워져서 온 것인 줄 알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라도 간신히 믿어야 나는 이 도전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철저히 아니었다. 코칭은 누가 실력을 갖추고, 누가 준비되어서 오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삶이 온전히 만나는 ‘교집합’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서 접점이 되어 서로의 삶에 상호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나는 이 두 시간의 대화 속에 내 삶에 너무나 유익한 지혜를 전해 받았고, 임원(고객)분은 자기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경험을 하셨다. 우리 두 사람의 삶의 디자인의 접점, 우리가 만나야 했던 인연이 되어야 했던 큰 흐름이었던 것이었다. 삶이란 더 큰 디자인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의도하지 않은, 준비된 만남이었다. 그리고 만나고 나서 오히려 깨닫는 ‘우리가 이 때 만나야 했던 이유, 인연의 힘’에 대한 감사, 감탄이었다.
이제, 2주 후 있을 2번째 세션이 설렌다. 나는 코칭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 존재를 만나러 가는 것이고, 내가 뭘 드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 장에서 일어날 귀한 지혜를 함께 탐색하러 가는 마음인 것이다. 그저, 호기심. 그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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