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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쌤 Oct 19. 2022

너 커서 뭐 될래? 말고 어떻게 살고 싶니?

아이들과 진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


전문과외교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선배 코치로부터 학생들의 기본정보를 작성할 수 있는 설문 양식을 받았다. 학생과 처음 만나 상담을 진행할 때 그 설문 양식을 기준으로 학생에 대한 정보를 적어두고 수업을 할 때 참고하곤 했다. 그 설문지에는 『장래희망』란이 있었다. 어떤 과목을 수업하더라도 아이의 장기 목표는 가장 중요한 방향이 된다. 그래서 목표는 뭐야? 꿈이 뭐야? 되고 싶은 게 있어?라는 식으로 질문을 하고 그 칸을 채웠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문득 이렇게 질문했다.


 "이런 직업 같은 목표 말고,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


그 질문을 처음 받았던 십몇 년 전의 내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사회봉사 같은 것도 좋고 어떤 방식이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답변을 들은 이후로 설문 양식을 고쳤다.









어른들은 자주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니? 


우리 삶에서 '무엇'이 되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하나의 역할을 맡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된다. 그래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목표 지점으로 설정하고 열심히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뚜렷한 목표 지점을 설정할 수 있다면 굉장히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던 초창기의 유퀴즈를 종종 다시 찾아본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갔을 법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찾아보고 듣는 유명인의 이야기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재밌고 유익하게 느껴진다. 그중에 특히 잊을 수 없는 인터뷰가 있다. 초등학생이지만 인생을 몇 회차는 산 것 같은 진한 여운을 남겼던 한 어린이의 인터뷰이다. 


특히 두 가지 질문과 답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솔직하고 착하고 용감한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이유가 더 인상 깊은데 '용감하면 누구한테든 다 말을 할 수가 있고, 착하면 상냥하게 말할 수 있고, 솔직하면 뭐든지 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꿈보다 해몽일 수 있겠지만 '용감하게 불의나 권력 앞에도 당당한 사람, 타인에게 상냥하게 말하는 사람, 감추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라니…. 그 아이가 자라서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구든지 이 아이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 작은 아이가 이렇게 빛나 보일 수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내면에 자기만의 이상향을 가지고 있음을 글의 서두에 적었던 물음의 답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니?'라는 질문을 꼭 하려고 한다. 아직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워한다면, 코칭을 통해 점차 그 이상향을 발견해 가도록 돕고 싶다.


더 인상 깊었던 답변이 하나 더 있었다. 그날의 공통 질문인 '신이 나라는 사람을 빚으며 많이 넣은 것과 적게 넣은 것은?'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놀랍게도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전부 다 주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질문에 '날 만드실 때는 무엇을 많이 넣고 무엇을 적게 넣으셨을까?'라면서 고민하면서 보고 있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이 어린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건강하고 단단한지, 내가 가진 것을 셈 해보고 있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울만한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우리 각자가 다 알맞게 만들어진 피조물일진대 무엇이 많고 무엇이 적겠는가?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강점과 약점이 있지만 우리 모두는 다 남김없이 쏟아부어져 만들어진 존재라는 의미가 마음을 탁 치고 들어왔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그렇게 하나님이 남김없이 전부 다 쏟아부어 만들어낸 존재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귀한 원석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빛나도록 다듬어질 때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코칭할 때 누구든 될 수 있는 '무엇'보다 나만의 색을 내는 '어떻게'가 더 그 아이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이 되기 위한 진로탐색 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위한 자기 발견을 더 강조한다. 성과를 내는 학습코칭보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조절하는 감정코칭에 더 힘을 준다. 그런데 자기 발견과 감정코칭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내고 학습에도 더 좋은 성과를 낸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니?'라는 질문을 깊이 생각한 아이들은 그렇게 살기 위한 '무엇'을 잘 찾아낸다. 어떤 직업이나 업적을 이루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정하기 전에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은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학창 시절에도 대학시절에도 어떤 직업을 가질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중학생 때 10년 후의 내 모습, 2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봤던 것만은 상세히 기억이 난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지만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상상하고 각 방마다 무엇으로 꾸밀지 구체적으로 떠올렸었다. 그때 상상한 당당하고 멋진 여성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가질지 뚜렷한 목표를 둔 적 없지만 어릴 적 상상 속의 내 모습만큼이나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항상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고 싶다. 그리고 코칭을 통해 그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면서 미래를 기대하게 하고 싶다. 여러 가지로 많이 지치고 힘든 아이들이 조금은 더 행복하게 미래를 기대하고 조금은 더 건강하게 현재를 살아내게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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