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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쌤 Oct 18. 2022

진로탐색 전에 자기 발견

진짜 진로코칭이란?


"진로 역량을 평가받는다는데 우리 아이는 하고 싶은 게 없대요. 코칭 시간에 진로 좀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만나는 학생들 대다수가 꿈이 없다고 한다. 되고 싶은 게 있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어떻게 그 꿈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묻고 나면 이게 정말 이 아이의 꿈인가 싶다. 누군가는 진로 검사를 하니 추천 직업에 있어서, 누군가는 그 직업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아빠나 엄마가 추천해서, 드라마를 보니 멋있어 보여서 등 되고 싶은 걸 찾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이 빛나진 않는다.


그런데 지금 번듯하게 자기 일을 잘하고 있는 성인들 중 10대에 그 꿈을 정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입시 컨설팅을 하고 진로 코칭을 하면서도 이른 나이부터 진로를 정해야 하고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생각할 때가 많다.


당장 코칭쌤이라고 불리는 나 자신조차도 10대에 이 꿈을 갖지 않았다. 나의 10대를 돌아보면 막연히 이과 학생이 가장 잘 되는 건 의사라고 하니 그땐 장래희망에 당당히 의사를 적어 넣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로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알아본 적도 의사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수능을 조금만 더 잘 봤어도 그런 식으로 의대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학과 전공과목들이 재밌었기 때문에 즐겁게 다녔지만 막상 취업에 대한 대비는 거의 되어있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했던 과외를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하게 되고 거기서 코칭을 접하게 되면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일하게 될 줄 몰랐다. 청소년 코칭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꿈꿔보지 못했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들을 따라오다 보니 나도 예상치 못한 곳에 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수능을 조금만 더 잘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실제로 수능날 아파서 시험을 망치고 울고 불고 했었건만 그게 되짚어 볼수록 다행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 성적이 잘 나왔다면 그 성적에 맞춰서 인생을 설계하지 않았겠는가? 그랬다면 코칭쌤으로 불리는 지금의 나도, 그 과정에서 만난 배우자와 아이도 내 인생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수능을 망친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막막한 진로탐색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나에게 맞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10대에 하고 싶은 직업과 미래를 계획해서 대학에 지원하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인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한 성찰인지 학생부 종합전형 평가요소가 이전엔 전공적합성이었는데 최근엔 진로역량으로 바뀌었다. 학교에서의 활동으로 전공적합성을 평가하니 학생들이 좁은 의미의 전공 관련으로만 생기부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은 더 폭넓게 진로 분야에 대한 탐구 역량을 평가한다는 의미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전공학과를 정확히 정해놓고 활동을 하라고 했다면 최근엔 전공계열을 어느 정도 결정하고 폭넓게 관련 기록을 채워가라고 한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활동을 보고 엄밀히 말하면 크게 차이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당장 대학에 가려고 할 때도 나의 진로를 명확히 하라고 요구받는다. 그리고 그 분야에 맞게 생기부 활동을 계획하려면 적어도 중학생 때는 진로 계열을 확실히 정하고 그 부분에 유리한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자유학기제라는 명목으로 진로탐색을 돕는다고 하는데 만난 아이들이 그 시기에 진로탐색에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들과 진로탐색을 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커리어넷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자주 사용하고 있고 다양한 진로심리검사가 중.고등학생용으로 제공되어 있다. 그 안에서 영역별 능력을 자가 진단해서 나오는 진로적성에 관한 검사도 하고 내가 사회형인지 관습형인지 등 나의 진로 흥미에 따른 직업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 중 하나인 직업가치관 검사는 내가 가진 가치관과 생각하고 있는 직업의 가치관이 얼마나 유사한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도구가 제공되어 있는데 왜 진로탐색은 할수록 더 막막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까?


사실 그 답은 간단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어느 영역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기에 경험이 너무 적다. 어떤 가치관을 추구한다고 결정하기에 사회 경험이 너무 없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과 실제 그 가치를 피부로 느껴보는 것은 너무 다르다. 직업 가치관 중에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있다. 학교 생활을 기준으로 그 부분을 살펴보면 어디까지가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룬 것일까? 직장인의 생활을 예측해 본다고 해도 실제로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룬다는 게 뭔지 제대로 느껴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성인도 자신의 경험에 따라 그 가치관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텐데 아이들의 그 답변이 얼마나 자신을 대변해 줄 수 있을지, 아니 미래의 자신을 대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전공 분야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보도 찾아보고 길을 찾아 놓았는데 실제로 그 학과에 가서 배우는 전공과목이 나와 잘 맞을지도 경험해 보기 전에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진로탐색은 할수록 더 막막하다. 아이를 더 깊이 알아갈수록 어느 한 분야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진짜 모습도, 어떤 방향으로 자신이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도 전혀 모르고 있고 예측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진로탐색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어떤 직업군이 나와 잘 맞는지 아닌지 우리는 정말 알 수 있을까? 같은 회사에 입사해서도 각자 하는 일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전공 분야 하나를 정해도 그 전공 졸업자들이 나아가는 갈래는 너무 다양하다. 물리학과를 진학했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는 물리 선생님이 되고, 누군가는 반도체 업체 연구원이 되고, 누군가는 기기설비 전문가가 되고, 누군가는 공기업에 가고, 누군가는 대기업에 가고, 누군가는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그저 물리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같은 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사실 진로탐색에서 전공분야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전공분야를 선택하더라도 직업 선택에 있어서 나와 맞는 직업의 방향성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대학의 전공학과가 특정 직업과 1:1로 매칭 되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공분야가 졸업 후 다양한 삶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진로탐색은 전공 결정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미래의 내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고 싶을지는 아직 답이 정해지지 않은 열린 문인 것이다.


같은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도 일하는 방식과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집단에 속하더라도 각각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기준의 틀을 가지고 내가 어느 틀에 맞는 사람인지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에 맞는 학과를 고르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래서 입시 코칭을 할 때 학과는 되도록이면 흥미로 선택하도록 한다. 조금 더 공부하기에 재미있는, 좀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많은 분야가 어느 쪽인지 찾는 것이다. 한 대학의 모든 학과를 한 번에 보면서 전혀 관심이 가지 않고 깊이 생각하면 싫은 것들을 제거하게 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학과들에 대해서 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배우는 과목들과 교수님들의 전공을 살펴보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게 재미있을지 아닐지 묻곤 한다. 물론 학과 관련 직업군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너무 제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이야기한다.


즉, 진로탐색으로 어떤 직업이 나와 잘 맞을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대체 진로탐색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진로 탐색은 그 탐색 결과로 내 직업과 전공을 결정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저 '탐색'하는 것이다. 그 탐색을 통해 섣부르게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모든 진로진단검사는 어느 분야를 더 자세히 탐색해 볼지 알려주는 가이드와 같다. 그게 나에 대한 판단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진로검사에서 추천 직업이 떴다고 나와 맞는 직업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 분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면 좋겠다 정도의 참고자료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로탐색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그 넓은 정보들 중 좀 더 깊이 탐색할 것들을 간추린 후에 그 속에서 나를 파악하는 것이다. 정보들을 통해 직업이나 학과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에 대한 나의 생각, 그 전공에 대한 나의 흥미를 파악해 보는 것이다. 




진짜 진로탐색은 나를 탐색하는 것


사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탐색하는 데 제법 적극적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최근 누군가를 소개할 때 MBTI 성향이 무엇인지 같이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MBTI가 혈액형별 성격과 비교될 건 아니지만 혈액형, 별자리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심리테스트까지 사람들은 나의 내면, 더 정확히는 내가 정의하지 못하던 나를 설명받기를 원한다. 내가 나를 설명받기를 원한다는 말이 이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외에 더 정확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도구를 통해서라도 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다. 이 도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판단하는 말들에 예민하게 귀 기울인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번 들었다면 여러 번 곱씹는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을 탐색하는 것에 큰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진로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자신을 탐색하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탐색 방법은 경험이다. 어떤 상황 속에 들어가 봐야 그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 사람이고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결혼하기 전에 꼭 단 둘이 해외 배낭여행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낯선 곳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위기 속에서 그 사람의 본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처럼 실제로 내가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지, 여러 사람들 속에서 어떤 역할 성격을 맡아야 스스로 편안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과 시스템이 그 경험의 폭을 점점 더 좁혀 놓는다. 고학년이 될수록 경험하는 공간과 상황이 제한적이고 반복된다.


그렇게 제한적인 환경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탐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룹 활동이 더 좋다 vs 나는 개인 과제가 더 좋다

나는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vs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다

나는 그룹에서 리더의 역할이 좋다 vs 나는 그룹에서 서포터의 역할이 좋다


이 선택지들처럼 서로 대비되는 상황에 대해 스스로가 더 선호하는 상황이 뭔지 파악해 보아야 한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면 그 상황마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내가 좋아하는 환경이 무엇이고 나는 스스로 어떤 역할을 맡기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학교 과목들 중에 어떤 과목에서 다루는 내용이 더 흥미 있게 느껴지는지?

나는 세상의 많은 가치들 중에서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는 세상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세상이 앞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한 가지 역할을 한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이런 식으로 나의 습관과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서도 자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혼자 살아가지 않고 현재 속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 사회를 보는 나의 시선도 아주 중요한 자기 탐색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은지는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아주 중요한 자기 발견의 과정이다. 그런 가치관을 통해 자기 자신이 만들어진다.


자기 발견을 해나가다 보면 어떤 분야의 전공을 하더라도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진로 방향을 설정하게 되고 그 길을 걷는 스스로를 가치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진로탐색을 하기 전에 자기 발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발견이 없는 진로탐색은 삶과 연관 지어질 수 없다.





진짜 진로역량은 자기 자신을 자세히 아는 능력이다.

진로탐색은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야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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