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에 앞서는 의도의 필요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승부'는 조훈현과 이창호, 한국 바둑의 두 전설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죠. 바둑에 문외한인 저도 그들의 여정과 대국 장면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19×19 선이 만드는 361개의 교차점. 같은 바둑판을 보면서도, 초보자인 제게는 그저 돌이 놓인 위치로만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수십 분을 고민하며 한 수를 두기도 하고, 때로는 순식간에 판을 읽어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똑같이 주어진 제한된 저 작은 바둑판 위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각자 그 판을 다르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각자 전혀 다른 것을 봅니다. 같은 상황, 같은 사건, 같은 관계를 두고도 완전히 다른 해석과 반응이 나오지요. 왜 그럴까요?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저는 종종 생각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고의 자동 운전 모드'로 보냅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익숙한 패턴을 따라 흘러갑니다. 특히 압박감을 느낄 때, 시간이 부족할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더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더 효율적인 선택을 하고, 익숙한 대응 방식으로 되돌아갑니다.
이것은 게으름도, 무지함도 아닙니다. 인간의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진화해온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니엘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말하는 '시스템 1'이 작동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반복, 방어, 고정된 관점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안전하고, 에너지를 덜 소모하고, 예측 가능하니까요. 위험과 불안은 더 빠르게 감지되고, 익숙한 패턴은 더 쉽게 따라갑니다. 이런 성향은 생존에 유리했기에 우리 DNA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자동적인 흐름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사고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특히 이런 순간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연이어 패배한 후, 혼자 바둑판 앞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다음 경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바둑을 두어온 방식, 생각해온 방식 자체를 의식적으로 돌아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두어왔는가?" "왜 그렇게 두었는가?" "이제는 어떻게 둘 것인가?"
이 장면은 단순한 패배의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흐름을 멈추고 사유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그렇지만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렵고 피곤한 일입니다. 하나의 빛이 한 색깔이 아닌 여러 색으로 해석되도록 애써야 하고, 숨겨진 모서리를 발견하고 재해석해야 합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벗어나 불확실성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지요. 하지만 조훈현은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신의 사고 패턴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코칭 세션을 진행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순간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처음에 피코치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패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때 이미 익숙한 내러티브로 돌아갑니다.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전에도 시도해 봤는데 실패했어요." "흥미롭지만 결과는 결국 이렇게 될꺼예요"이 문장들은 자기 인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생각의 '흐름'이 멈춘 지점입니다. 마치 강물이 항상 같은 길을 따라 흐르듯, 생각도 파인 홈을 따라 익숙한 결론으로 흘러갑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본능적 회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불확실하고 도전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익숙한 이야기로 돌아가 안전함을 찾으려 합니다.
코치로서 저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내터리브를 만들어 낼 낼수 있게 돕고 있지요. 과거의 패턴으로의 회기, 자동적 사고로의 회기가 아니라 피코치가 의도를 가지고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다른 시각으로 상황을 재구성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가끔은 침묵 속에서, 가끔은 말로 표현된 통찰을 통해,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생각 흐름을 의식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 지금 제가 또 그 생각을 하고 있네요." "이런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바로 그 순간이 중요합니다. 생각의 '흐름'이 멈추고, '틈'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비록 그것이 불편하고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 해도, 그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지난 몇편의 글들에서 생각의 틈을 넓히는 다양한 도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직관의 가치와 그 이후의 책임, 프리즘적 사고로 논리의 모서리를 발견하는 법, 그 모서리를 포용하는 방식, 그리고 패턴을 인식하고 넘어서는 방법까지. 이 도구와 방법들은 모두 가치가 있고 유용합니다. 하지만 몇 개의 도구와 방법을 정리하고 보니 글이 모든 도구들보다 먼저 와야 하는 것이 바로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명확한 목표나 계획이라기보다, 생각의 자동적 흐름을 멈추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의 의식적 선택입니다.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살피고, 익숙함과 편안함이 아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행위입니다.
영화 속에서 고수들이 한 수를 두기 전 깊이 생각에 잠기는 모습은, 단순히 다음 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 흐름을 의식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는 내가 항상 두어온 익숙한 방식인가? 아니면 이 바둑판에 지금 정말 필요한 수인가?"
이렇게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분명 피곤하고 때로는 불편합니다. 세상세 바둑 한판을 두는 것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영화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회를 바라보기 위해 불안과 싸워야 하고, 하나의 관점이 아닌 여러 관점을 고려해야 하고, 숨겨진 모서리를 찾기 위해 익숙한 패턴을 의심해야 합니다. 조훈현이 제자와의 대국에서 코피를 흘리며 대국을 참여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본능을 거스르는 의도적 사고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저의 피코치들도 성찰을 하고, 다짐을 해도 곧 이전의 생각으로 쉽게 회기하곤 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식적인 멈춤과 의도가 있을 때에만 진정한 사고가 시작됩니다.
의도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동화된 생각의 흐름에 '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틈에서 우리는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패턴을 따를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지.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패배한 후, 자신의 바둑을 돌아보고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중요한 순간에 '흐름'을 멈추고 '의도'를 가지고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반복과 방어라는 본능적 충동과 싸워야 하는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
우리는 자주 생각 속에 있지만, 정작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동화된 흐름, 익숙한 해석, 본능적인 반응 속에서 마음은 흘러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유는, 그 흐름에 잠시 멈추고 의도를 품을 때 시작됩니다.
영화 '승부'의 여러 장면에서 조훈현과 이창호는 대국을 마치고 함께 복기를 합니다. 승패를 떠나 두 고수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탐색하고, 배웁니다. 그들에게 바둑판은 결코 그저 이기고 지는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각자의 생각 흐름을 의식적으로 살피고,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틈' 시리즈를 작성하며, 이 모든 여정이 결국 생각의 자동적인 흐름을 멈추고 의식적인 의도를 품는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비록 그것이 반복, 방어, 고정된 관점으로 회귀하려는 본능과 싸워야 하는 불편한 일이라 해도, 그 작은 멈춤이 익숙한 흐름에 틈을 만들고, 그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바둑판 위의 무수한 가능성처럼, 우리의 생각 속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 모릅니다.
흐름을 멈추고 의도를 품는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