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안과 틈 사이의 창의성
몇 해 전, 우연히 “틀 밖에서 생각하기(Think outside the box)가 아닌, 오히려 Inside the Box, 즉 '틀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진짜 창의성을 끌어낸다”는 독특하고 다소 오랜 주장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Thinking Inside the Box』(드루 보이드 & 제이콥 골든버그 공저)입니다. 안타깝게도 시중에서는 절판되어, 중고로 어렵게 구해 읽을 수 있었죠.
저는 대학원에서 디자인씽킹을 전공했고, 지금은 비즈니스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마치 디자인씽킹과 코칭이 결합한 형태의 가이드북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틀 밖의 완전 새로운 영역”에서 창의성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진 자원과 제약(틀 안)을 잘 활용했을 때 진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통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철학이 제게 딱 맞아떨어졌고, 밝히자면 그래서 제가 운영하는 회사 이름도 ‘Inside the Bx(Bx에는 Box, Business, Brand가 모두 들어갑니다)’라 지었습니다.
“나와 당신 안에 뭔가 보석 같은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믿음이 제 코칭과 비즈니스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으니까요.
이 책은 흔히 들려오는 ‘상자 밖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상상하기’와 달리,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여건 안에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초점을 둡니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 SIT(Systematic Inventive Thinking)라는 기법을 소개하죠. SIT는 크게 다섯 가지 아이디어 변형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Subtraction(빼기)
핵심: 제품이나 서비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요소를 하나 제거해 보는 것입니다.
예시: 스마트폰에서 SNS·앱 스토어 등 대부분의 기능을 빼고, 오직 전화·문자만 남긴 ‘Light Phone’은 디지털 디톡스 수요를 공략해 성공했습니다. 오히려 “없음”이 차별화가 된 셈입니다.
Multiplication(곱하기)
핵심: 특정 요소를 두 번, 세 번 복제해 극단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
예시: 요즘 스마트폰들이 카메라 모듈을 여러 개(2~3개 이상)로 늘려 서로 다른 화각·심도·광각·망원 등을 동시에 제공하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렌즈 1개만 있으면 된다고 여겼지만, 곱하기로 렌즈를 늘리면서 사진 품질과 활용도를 대폭 확대해, 다양한 고객층(사진 애호가·셀카 유저 등)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Division(나누기)
핵심: 한 덩어리로 굴러가는 프로세스나 구조를 쪼개고, 재배열해 보는 것
예시: 이벤트 과정을 세부 단계로 나누어 한 단계씩 온라인·오프라인 따로 진행해 본다든지, 제품 구성요소를 따로 판매함으로써 새로운 수익이 생기는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Task Unification(기능 통합)
핵심: 여러 기능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
예시: 스마트워치가 시계+건강검진+메시지 확인 등 여러 기능을 한 기기에 통합하듯, 별개 기능을 하나로 합쳐 시너지를 내는 방식이 하나의 예입니다.
Attribute Dependency(속성 의존)
핵심: 어떤 속성이 바뀌면, 다른 속성도 자동으로 달라지도록 설계
예시: 온도가 높아지면 제품 색이 바뀐다든지, 할인 쿠폰 사용횟수가 늘어날수록 등급이 올라가 혜택이 달라진다든지 하는 것이 속성 의존의 예입니다.
이 모든 기법의 공통점은 새로운 자원을 찾아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제품·프로세스·기술·사람 등)을 ‘의도적으로 변형’해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틀 바깥”이 아닌 “틀 안”에서 발견하는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최근 10주 동안, 저는 “생각의 틈”이라는 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썼습니다. 당연히 믿고 있던 전제에 균열을 내거나, 익숙한 상황을 일부러 낯설게 보면서 ‘틈’을 찾는 방식들을 다룬 글들이었죠.
글들을 돌아보니, 이것이 곧 ‘Inside the Box’적 사고와도 일맥상통하더군요.
예컨대, 첫번째 글이었던 「중요도를 낮추면 보이는 틈」에서, 모든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태도를 일부러 낮춰 봤을 때, 의외의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이 의 Subtraction(빼기)사고와 비슷합니다.
https://brunch.co.kr/@june7hyun/52
그리고 가장 최근의 아홉 번째 글 「정량 쇼크」에서 “예산이 0원이면?” “시간이 3일이면?” 등 극단적 수치를 가정하면, 그에 맞춰 아이디어도 달라진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Attribute Dependency, 곧 속성 간 종속관계를 과감히 조정하는 발상과 이어지고요.
https://brunch.co.kr/@june7hyun/61
결국, 제가 “생각의 틈”이라고 불러온 여러 아이디어들도 SIT가 말하는 ‘틀 안에서의 변형’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지난 10주 동안 “생각의 틈”을 탐색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 과정은 ‘틀 안에서 생각하기’를 넘어, 의도적으로 ‘틈’을 만드는 멋진 여정이었습니다. 빼고, 쪼개고, 때로는 속성을 뒤집는 과정을 통해, 낯선 해답을 얻어보자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내가 이미 가진 자원 안에서,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고, 역할을 통합 혹은 쪼개 보는 방식도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 작은 실험이, 모쪼록 여러분의 커리어와 비즈니스에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 내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균열이 ‘생각의 틈’을 열어 줄지도 모르니까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970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