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치’를 발견하는 순간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만 5년 전까지 저는 회사원이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초년생 때부터 15년차 팀장이 되기까지 조직에서의 제 역할은PM(Project Manager) 이었는데요. 열 명이 넘는 이해관계자와 매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고, 매일매일이 문제 해결과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모든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높은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주어진 모든 태스크를 ‘중요도 100’으로 놓고 처리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죠. 그 습관은 프리랜서로 독립한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즈니스 코치로, 1인 사업가로,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다 보니, 모든 것을 똑같이 중요도 100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에너지도 늘 부족했고, 무엇보다 의사결정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어느 책에서 ‘중요도의 감소’라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특정 상황이나 목표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담백하게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의사결정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었죠. 처음에는 “정말 그게 유용할까? 그저 정신 승리나 생각의 전환에 불과한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중요도를 낮췄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하는 걱정마저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묘하게 끌리는 개념이라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투자 유치를 앞둔 한 스타트업 대표님을 코칭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끝’이라는 태도로 투자 유치에 매달리고 있는 대표의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에 집착하느라 시야를 좁히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저는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의 중요도를 의식적으로 반 이상 낮춰보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순간 중요도의 감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질문을 들은 대표님은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저를 보았습니다. 10초쯤 흘렀을까요.
“음…반 이상 낮추는 것이 과연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코치님 질문을 들으니 제가 지금 투자만 생각하느라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것도 같네요.”
한 달 후 들려온 소식은, 투자가 아닌 다른 방법 – 꽤 지근거리에 있었던 해결책 – 으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실패하면 내 인생이 무너질 거야’라고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면, 주변에 깔린 기회나 단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조금 덜 중요하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여유가 생기면, 의외로 해결책이 바로 발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놓고, 내가 가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상태가 해소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중요도를 낮춰보는 시도는 단순한 생각 전환 같지만, 때때로 강력한 퍼포먼스를 끌어내기도 합니다. 내가 어디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관찰하고,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조금 덜 중요하게 여겨볼까?”라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지고 있던 심리적 장벽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많은 가능성과 아이디어가 눈앞에 펼쳐지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제안드려 봅니다. 가볍게 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자신 관찰하기
- 지금 내가 어떤 목표나 상황에 지나치게 불안하거나 집착하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2.“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유지
- 중요한 것과 과도한 집착을 구분해야 합니다. 자신감을 갖되, ‘이게 실패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3.긴장 완화
- 과도하게 긴장했다고 느껴지면 호흡이나 스트레칭, 가벼운 산책 등을 통해 마음을 이완합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시야를 넓히면, 의외의 해법이 눈에 들어올 수 있거든요.
4.균형 유지
- 모든 상황에 아예 무심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목표는 유지하되, 담담하게 접근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너무 중요한 것이 없다’가 아니라 ‘과도한 의미 부여를 줄이자’가 핵심이니까요.
작년, <2인치 북클럽>이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 3개월 동안 책을 함께 나눈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읽을 책이 무엇인가, 보다 멤버들이 궁금해했던 것은 '왜 이름이 하필 2인치 북클럽이냐'는 것이었고, 저는 아래의 글을 공유했습니다.
영국 하트퍼드셔대학교의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실험실에서 피험자들에게 신문을 주고, 거기에 실린 사진들을 전부 세라고 했다. ‘운이 엄청나게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들과 ‘불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피험자로 뽑았는데,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불운한 사람들은 모든 사진을 세는 데 몇 분이 걸렸고 대개 부정확했다. 반면 운 좋은 사람들은 단 몇 초 만에 정확한 답변을 했다.
그 이유는 신문 앞면 2인치 높이에 큼지막하게 “세기를 멈추시오. 이 신문에는 총 43개의 사진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기 때문. 운이 좋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주어진 과제를 넘어 주변 정보까지 놓치지 않았지만, ‘나는 불운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사진 세기에만 몰두하느라 이 문구를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이다.
심지어 신문 중간엔 “세는 걸 중단하시오. 이걸 봤다고 말하면 250파운드를 얻을 것이오.”라는 문구도 있었지만,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출처: 인지니어스, 티나실리그>
이 간단하고 명쾌한 실험은, 목표나 과업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더 중요한 단서를 놓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세상은 2인치 높이의 메시지들로 가득하고, 그걸 발견하느냐 마느냐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는 점도요.
모든 것이 중요한 세상. 의외로 지금의 고민을 해결해 줄 단서는 ‘중요도 100’ 너머, 조금 더 여유로운 시선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2인치 높이에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순간, 이전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오늘의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생각의 틈을 여는 질문>
1.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의 중요도를 의도적으로 절반으로 줄인다면, 나는 무엇을 새롭게 보게 될까요?
2. 내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2인치 높이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3. ‘조금 덜 중요하게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가벼운 물음은 내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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