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는 '남자들만의 장난감 가게'에서 찾아보는 '생각의 틈'
지난 2024년 대한민국의 이커머스 업계에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7월에 발생한 일명 ‘티메프 사태’ 입니다. 큐텐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의 대금 미정산으로 인해 48,000곳의 업체에서 1조 3천억 원 규모의 금융 피해를 입으며 성장만 바라보던 이커머스 생태계에 일대 충격을 준 사건이었죠.
또 하나를 언급하자면 2025년 새해를 5일 앞두고 발표된 ‘신세계-알리바바 합작 법인’ 설립 소식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신세계 그룹과 알리바바 그룹의 협력이라고 보이지만 실상은 ‘대기업 주도 이커머스의 항복 선언’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신세계-알리바바 합작,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brunch story, 기묘한, 2025.01.02)
그리고 이제 새해가 밝고 벌써 1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뉴스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1월 23일 홈페이지에 게재된 서비스 종료 예정 안내문>
이커머스가 저변을 넓히기 시작하던 2002년 오픈한 펀샵(www.funshop.co.kr)은 2010년을 전후하여 ‘어른들의 장난감 가게’라는 컨셉으로 온라인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소득이 높아지며 소비 여력이 좋아진 덕후 성향의 남성 소비자들에게 필요 없지만 사고 싶은 장난감 같은 아이디어 제품들을 소개하며 인지도를 쌓았죠.
2017년 CJ오쇼핑에 인수되면서 이전보다 확장된 제품군과 인터페이스로 버티컬 커머스 영역 강화를 노렸지만, 브랜드웍스코리아는 결국 2025년 3월에 펀샵의 23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커머스의 흥망성쇠야 정말 많은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 고객층이 30~40대 남성이었던 특이한 성향의 전문 쇼핑몰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의 틈’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펀샵’의 가장 큰 경쟁력은 아이디어 넘치는 제품도, 사용자 친화적인 UI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리뷰와 유사한 실제 경험이 반영된 제품 소개였습니다.
상품 에디터들이 직접 제품을 사용하고 사용 경험을 기반으로 설명서를 직접 작성하는 펀샵 내의 상품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에디터들은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제품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어 상품 설명서가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성장으로 인해 이커머스 시장에서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글로벌 마케팅 조사에 따르면 2025년에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 규모는 작년 대비 35% 이상 증가한 325억 5천만 달러(한화 약 43조 3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습니다. 또한 소비자의 69%가 자신이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의 제품 추천을 신뢰하며 Z세대 소비자 중 87%는 인플루언서와 협력하는 브랜드로부터 구매 의향을 보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젠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급성장과 함께 제품에 대한 리뷰의 질이 유명 인플루언서의 수준을 뛰어넘기 어렵게 된 마케팅 시장의 환경 변화가 ‘펀샵’의 장점을 점점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첫 번째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는 바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본격적인 이커머스 침투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 소비자에게 인플루언서의 존재는 좋아하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의미를 넘어 구매에까지 영향을 주는 마케팅의 압도적인 롤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물론 바이럴이라는 요소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인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한 경험을 기반으로 구독자와 소비자들에게 알려주는 제품의 장단점은 기존 제조사와 홍보 에이전시 중심의 마케팅 프로세스보다 훨씬 높은 신뢰성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마케팅의 중심이 마케터에서 인플루언서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펀샵’과 같은 전문 쇼핑몰들의 몰락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는 ‘가격의 정상화’ 입니다.
위의 제품은 펀샵의 주요 카테고리인 아웃도어에서 꽤 많이 팔린 충전식 LED 랜턴 입니다. 배송료 제외 16,000원의 제품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는 1/3 가격에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구 제품의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은 지난 2010년 후반 아마존 닷컴의 ‘블랙 프라이데이’ 열풍에서 시작되어서 대한민국의 다양한 이커머스에 사전 경고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잡화와 디지털 기기에 국한될 줄 알았던 직구 제품의 침공은 이제 대부분의 분야에서 국내와 해외 시장이라는 구분이 무색해질 만큼 전방위적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알리 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의 직구 시장이 커져버리는 바람에 펀샵과 같은 전문 쇼핑몰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방법은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정식 수입과 사후관리라는 차별성으로 경쟁하기에는 기업의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요.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는 비단 ‘펀샵’과 같은 전문 분야 쇼핑몰의 몰락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 옥션이나 G마켓, 쿠팡 등과 같은 대형 이커머스에서 이름만 바꾼 채 인기제품을 수입만 해서 가격만 올려 팔던 유통행위들이 이젠 먹히지 않게 되었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과 근접한 비용을 지불해서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습니다. 엔드 유저의 편익이 증가한다는 것에서 ‘펀샵’의 서비스 종료에 필자와 같은 단골 고객들은 이미 미래를 예견하고 서서히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있죠.
채널 안 거치고 콘텐츠로 판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뜬다 (조선비즈 최효정 기자, 2025.01.13.)
펀샵의 서비스 종료 소식을 시작으로 2025년의 이커머스도 파란만장한 사건, 사고들이 휘몰아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해가 아마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이커머스 업계의 첫 해가 될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2025년의 국내 이커머스 순위를 질문해보고 싶네요. 위의 그래프 같이 누구라도 올 한 해 국내 이커머스의 1, 2위는 쿠팡 아니면 네이버라는 것에 이견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두 공룡을 바짝 추격할 수 있는 3위의 이커머스는 어디일지 궁금하네요. 알리바바 그룹과 손잡은 신세계일지? 절치부심하는 롯데일지?
필자는 예측할 정도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바램 하나는 있어요. 누가 이커머스 업계의 승자가 될지 모르지만 ‘펀샵’과 같은 서비스 종료보단 소비자들의 편익이 높아질 수 있는 커머스 콘텐츠의 레벨업을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