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미국 서부, 캐나다 밴쿠버 아래에 위치한 시애틀에서 다시 70km쯤 아래로 이동하면 케트론(Ketron) 이란 이름의 섬(Island)이 있다. 아주 작은 이 섬에는 푸르고 오래된 숲이 두른 인간의 흔적이 있는 작은 선착장과 집이 있다. 늘 고요함이 머무르는 조용한 섬인, 애써 찾아가기도 힘든 이 곳에 2018년 8월 10일, 저녁 9시쯤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한다. 다행히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피해는 없었으나, 섬에 있던 오래된 나무들이 쓰러지고 불에 탔으며, 고요함이 깨지고 소란스러움이 온 섬을 뒤덮었다. 호라이즌 항공 소유의 이 비행기는 저녁 8시쯤, 관제사의 응답에도 아무런 답이 없던 신원불명의 남성에 의해 이륙했고, 공항 인근 하늘에서 1시간동안 곡예비행을 하다 추락 했다.
며칠 뒤, 신원불명 남성의 신원이 밝혀졌다. 만 29세의 리처드 러셀(Richard Russell)은 소셜 미디어에서 ‘비보’란 이름으로 불렸다. 알래스카주 와실라가 고향이며 워싱턴주에 거주했던 그는 2012년에 결혼도 했다. 러셀은 이륙 후에 관제사와 나눴던 대화에서 “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 이 소식을 들으면 실망 할거야. 그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어”라며 자신의 행동에 실망할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드러냈다. 관제사는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설득했으나, 애초에 죽음을 각오했고 비행조종 기술이 없던 그는 착륙과정에서 사람들을 다치게할 것을 걱정하며,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비행 후 사람들이 없는 섬으로 고의 추락하여 사망한다.
호라이즌 항공사에서 지상근무요원 중 수하물 담당자로 일했던 러셀을 두고, 동료들은 ‘조용하며 주변과 사이가 좋았다.’고 말했으며, 그의 가족은 ‘믿을 수 있는 남편’이며,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두고, ‘망가진 인간’이며, ‘나사가 몇 개 풀렸었던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지역주민에 의해 곡예 비행이 촬영되었는데, 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물들어가는 시간, 하늘에는 아직 청명한 파랑이 남아있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행했던 러셀은, 근처에 있는, 한 때 '성녀 로살리아의 눈덮인 봉우리'라고도 불렸던 해발 2,432m의 ‘올림퍼스, 웨스트 피크 산’을 보며 “올림픽 산 가봤어? 굉장히 아름답네. 우와!”라며 경이로움의 한가운데에 머무는 자의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미국은 2001년 발생했던 9.11 테러로 비행기 납치 등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가 있어, 관련한 범죄자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또 항공사에 큰 피해를 입히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셀이 관제사와 나누었던 대화, 동료들과 가족에게 받았던 평가, 이륙과 추락의 상세한 과정을 알고서는 항공사 사장도 애도를 표했고, 일부 사람들은 스카이킹(SkyKing)이라 칭하며 러셀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2018년 8월 중순 어느날의 저녁, 이 기사를 봤던 순간이 기억난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찐빵으로 보낸 1시간 20분의 퇴근 후, 하루의 피로와 열대야에 지쳐 선풍기 바람을 쐬던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이미 러셀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사히 착륙한 그가 하늘에서 바라본 지평선과 석양과 올림픽 산의 봉우리를 바라본 힘으로, 또 하늘을 거침없이 비행하며 자유를 누렸던 마음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기를 간절히 바랬다.
러셀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우리는 왜 러셀의 죽음에 공감하는걸까?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를 두고 너무도 쉽게 ‘우울증이어서’라고 대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결과 이면에 숨겨진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사건 일년 전 러셀이 SNS에 올렸던 글에 “나는 엄청난 양의 가방들을 싣는다. 정말 많은 가방들이다. 가방이 너무 많다”라고 썼다. 사람들은 러셀에게서 자신도 느끼고 있는 실존의 고단함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하늘이라는 이상과 땅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붙잡혀 있던 러셀이 그 간극을 좁히고자 비행했으나 비극으로 끝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땅과 하늘 어디에선가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던 것 아니었을까?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별성이란 날실과 환경이라는 씨실 간 상호작용을 겪으며 삶을 직조해간다. 사고 당시 러셀은 나와 나이가 비슷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거리적 구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슷한 삶의 씨실을 경험해왔다. 나는 밀레니얼세대다. 밀레니얼세대는 1989년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데, 1986년생은 전기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한다. 2024년 기준으로 39살인, 30대 막바지이자 40대를 앞두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30~40대 초반에 속하는 남성과 여성을 두고 장년(壯年)이라고 분류하기도 하는데, ‘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이라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이자 장년으로 구분되는 우리에게는 아직은 젊음의 흔적이 남아있고, 조금씩 나이듦의 신호가 나타나는 시기로 장년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경험을 해온 것은 아니나, 대체로 우리 세대는 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초등학교로 졸업하며 역사 안에서 일제의 잔재가 계속 청산 중이라는 것을 배웠다. 초중고 학창시절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차례로 보고 자라며 전 시대에 비해 민주적인 가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느끼곤 했다. 오락실에서 던전앤드래곤과 킹오브파이터즈를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겼고 온라인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며 직접 만나지 않고도 연결되는 디지털 경험을 누린 초기 세대다. 앞선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인마다 휴대폰을 이른 나이에 가질 수 있었던, 카세트 테이프와 CD/DVD 플레이어 등의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향유한 세대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익숙했던 문화기도 하다. 결혼은 당연히하고 아이를 낳는것이 평범한 삶이라고 배우기도했다. 대전 엑스포, 최초의 민주정권으로 전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IMF라는 국가부도, 국찐이빵과 포켓몬빵 열풍, 911테러, 2002년 월드컵 등과 같은 사회적 경험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1990년만해도 30% 초반 수준이었던 대학진학률은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2005년에는 80% 초반을 넘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친구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사회로 나와 신자유주의의 승자독식 기조 아래 펼쳐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 시절은 스펙 쌓는 것에 몰두하였다. 당시에는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은 비정규직으로 살거나 살게 될 예정인 청년세대를 일컫는 ‘88만원 세대’라는 표현도 한창 유행했다. 그 때 나는 정작 스펙 쌓는 것과는 먼 일상을 보냈지만 군복무 후 여러 알바와 진로고민의 시간을 거쳐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보다 더 빠르게, 혹은 비슷하거나 좀 느리게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왔던 우리 세대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에서, 안정적인 돈벌이를 위한 불안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이상과 현실을 좁히고자 노력했지만, 그간의 경험은 커다란 세상의 힘 앞에서는 개인의 힘은 자기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도생이란 무의식적 메시지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지만 현재의 현실이 그렇다.
게다가 이제 나는 개인 삶에서 양적이자 질적인 변화를 한창 겪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2030대의 시기, 지금까지 쉼 없이 달리고,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하는 그 끈기를 주었던 희망이라는 에너지원이 사라지고 있다. ‘젊음’의 상징인 ‘시간, 기회, 가능성’이 만들어준 희망은 우리에게 늘 머물러 있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냈더라도 늘 내일이 있었고, 다시 채워지는 힘이 있었으며,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근본적인 기대감은 특별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엇이 기다릴까? 어떻게하면 변화의 한 가운데 있는 이 시기를 잘 견뎌내고 잘 전환할 수 있을까?
흔히 어른이 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의 시기를 두고 사춘기라 하는데, 요즘의 나는 여전히 사춘기가 진행 중인것 같다. 점차 쌓이는 시간, 나이가 든다고 당연히 어른이 되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키에르키고르는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봐야 한다.’고 했다.앞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뒤를 돌아보거나 나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만큼 도움되는 것은 없다. 나는 수시로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얼굴들은 실존한 인물이기도하고, 영화나 드라마, 소설, 미술 등에서 존재하는 허구의 얼굴들이기도 하다.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의미를 주는 얼굴은 ‘올리버 울프 색스(Oliver Wolf Sacks)’라는 이름의 유대계 영국인이다. 흔히 올리버 색스라고 부르는데, 그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더라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도서는 ‘책읽어드립니다’라는 TV프로에서도 소개됐었다. 올리버 색스의 직업은 신경의학, 뇌과학 분야의 의사이자 교수이며, 여러 책을 쓴 작가이다. 1990년에는 로버트 드 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사랑의 기적(원제 Awakenings)’이란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던 실제 모델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를 만나기 위해 검색해본 그의 모습에는 편안한 얼굴에 담겨진 호기심 가득한 아이와 지혜로운 어른의 성숙함이 느껴진다. 한 번도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 번도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그런, 고통 받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요즘 세상에서 고통의 가치를 얘기하는 것은 우습다. 이 사회에는 큰 결격사유없이 자란 사람의 대부분은 경제적 안락과 정신적 평안함이 늘 함께하는 경우라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의 고통은 피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더 선익이 될까? 올리버는 그렇게 살았기에 성숙한 어른이 되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리버의 82년 인생은 많은 경우가 고난이었고, 그 고통에 무너지지 않았기에 우리가 아는 올리버의 노년의 모습이 있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