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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Jan 08. 2024

어느 신경의학자 이야기

2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어린 시절의 올리버색스와 아버지 (자료 : 올리버색스 재단)

올리버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부모님이 모두 의사였다. 아버지는 일반의였고, 어머니는 산부인과의사였다. 영국 최초의 여성 외과의사 중 한 명이자, 왕립의학회에 초기에 입회한 여성 중 한명이었던, 이미 20대 후반에 명성을 얻은 저명한 인사가 어머니였다. 중산층이었던 이 가정에서 올리버는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래 막내아들이 얻는 사랑과 관심,  영특한 아들에 대한 특별함을 만끽하며 자랐다. 올리버의 첫째와 둘째형은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었는데, 조현병에 시달렸던 셋째 형을 제외하고서는 올리버에게도 의사의 길이, 특히 부모님이 원했던 신경의학자로서의 삶이 요구되었다. 후에 올리버는 이러한 부모님의 요구가 자신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하기도했다.


부모님이 의사라서 집에 의학 서적이 많았던 올리버는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인 12살에 ‘의과학’ 분야의 책들을 읽고 이해하기 시작했고, 화학, 생물학, 문학에 빠져지내곤 했다. 열일곱 살에는 노르웨이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긴 뒤, 배를 타고 돌아오는 상갑판에서, 술에 취한 채로(!) 난해하기 그지없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으며 몰입을 경험하기도 했다. 옥스퍼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15년 82세로 작고하기까지 신경학자이자 뇌과학자로 일하면서 의학분야의 전문지식과 예술을 결합하여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렸고, 인류학, 박물학, 음악 등의 분야와 신경학을 연계하여 다양한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올리버가 첫번째로 집필한 책은 그가 스무살이었던 때 어머니와 함께 폐경에 관해 대필했던 책이었는데 무려 2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는 놀라운 지성만큼이나 체구도 무시무시(?)했는데, 그의 미국판 자서전 표지에는 젊은날의 그가 우람한 체구와 선굵은 외모로 가죽재킷을 걸치고 오토바이에 올라타있는 사진이 인쇄돼있다. 180cm가 넘는 키와 때에 따라 130Kg에 육박하던 체중, 올리버가 뉴욕 시티아일랜드에서 살던 당시에는 뉴욕 인근 바닷가에 있는 스로그스넥 다리와 왕복으로 9.6킬로미터의 거리를 자유롭게 수영하곤 했다. 수영을 즐기던 올리버는 체력이 부족하거나, 빠져죽거나하는 문제가 아닌, 한밤에 수영하던 자신을 보고 놀랄 모터보트를 탄 사람들의 마음을 염려하곤 했다. 28살 때인 1961년도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개최한 역도대회 ‘풀스쿼트 부문’에서 600파운(약 270kg)의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는데, 당시 신문에는 ‘지난 토요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태평양연안선수권대회에서 샌프란시스코 마운트시온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영국인 의학 박사 올리버 색스가 풀스쿼트 종목에서 600파운드 역기를 어깨에 걸치고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사진 속 그는 머리카락보다 긴 구렛나루와 수염, 깊게 파인 팔자주름, 엄청난 무게의 바벨을 짊어진 어깨와 두꺼운 허벅지를 보이며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이 외에도 모터사이클, 등산, 여행 등 체력을 필요로하는 육체적 활동을 자유롭게 즐겼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올리버는 ‘즐기는 천재’의 적절한 사례였다. 직업에 따라 글쓰기 방식에 대한 다양한 요구와 훌륭한 방식이 있기 마련이고, 일반적으로 실제 업무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으로 글쓰기 실력이 능숙해진다. 의사인 올리버에게 필요한 것은 주로 과학적 글쓰기였지만 이런 통념은 올리버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올리버에게는 과학과 예술을 조화시키는 글쓰기가 삶의 화두이기도했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때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나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과학과 예술, 신체활동과 지적활동이 조화되는 것이 당연했다. 어찌보면 현대에서 다시 만나는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올리버 색스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늘 소탈하게 사람들을 대했고, 일반적으로 권위적이기 쉬운 의사로서의 모습을 이겨내고,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며, 아픈 사람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충족시켜주었다. 이러한 훌륭한 품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움과 시기보다는 사랑과 애정으로 올리버를 대할 수 있게 했다.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전, 뉴욕타임즈에 기고된 그의 글에는 ‘나는 사랑했고, 사랑을 받았다. 또한 많은 것을 받았고, 돌려주었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이처럼 아름다운 행성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도 엄청난 축복과 모험이었다.’라는 그의 심경이 담겨있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과 감사함으로 추앙하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또 다른 모습

1960년 톰건(왼쪽)과 머슬 비치에서 자신의 BMW 오토바이를 탄 올리버색스(오른쪽)(자료:https://www.everand.com/)

그런데 올리버가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의 인턴 생활을 위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던 직후인 1961년부터 올리버를 알았던 톰 건은 잘 알려진 올리버의 모습과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다. 톰 건은 올리버가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사람이며, 변화 전과 변화 후를 모두 목격했다고 한다. 젊을 때의 올리버가 지녔던 태도를 말한다. 올리버는 다른 인격체를 ‘비공감적으로 대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매우 혹독하고, 경멸적이고, 비꼬는 투로 심판했으며, 타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했고, 심지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를 지니고 누군가에 대하여 쓴 글을 당사자에게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공감 능력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나 1970년 초반에 톰 건이 뉴욕에서 다시 만난 올리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시 만난 올리버를 겪은 톰 건은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풍부한 공감적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재평가 한다. 사람의 변화가 어떻게 이리도 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일관되게 지켜 올 수 있었을까?


앞서 예고 했듯이 올리버가 삶에서 겪은 어려움은 정말 많다. 그가 내보인 놀라운 성과물에도 같은 의료계의 무관심과 따돌림에 시달리기도했고(이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시선이 있는데, 올리버가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졌다는 의견이다), 가진 역량에 비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동성애라는 성정체성에 대하여 가족으로부터 부정당한 경험과 외로움은 그를 마약에 빠트렸고, 바이크를 무모하게 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어오며 조금씩 성장했던 올리버는 자신이 스스로 계속 변화를 겪어왔다고 말한다. “그동안 저지른 온갖 실수(아마 그 중에는 자살로 이어질 뻔한 것도 있을거야)에도 불구하고 나는 30대, 40대, 50대를 거치며 단계적으로 성숙했다는 느낌이 들어. 성숙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올리버가 스스로 느낀 변화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그가 겪어온 삶의 과정 안에서, 만나게되는 역경들을 스스로 견디고 극복해오며 만들어낸 체험의 결과일 것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였던 조지 E. 베일런트(George Eman Vaillant)는 하버드대학교 건강센터 성인발달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1938년부터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진행한 성인 발달 연구를 43년 간 맡아왔다. 이 종단연구는 ‘하버드대학 법대 졸업생’, ‘중산층 출신의 아이큐 140 이상 여성 천재 집단’, ‘대도시 중심부 지역의 저소득층 고등학교 중퇴자 집단’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능력과 배경을 가진 세 종류의 집단을 전 생애에 걸쳐 관찰하며 그들 중 성공적인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의 가진 특성을 분석하였다. 베일런트는 사회적 성숙을 관찰하기위해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 발달의 단계를 분석틀로 적용하였고, 정서적 성숙을 관찰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자기방어 전략(방어기제)을 분석틀로 사용하였다.(여기서의 방어기제는 ‘적응’의 의미를 지닌다). 이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삶에서 변화를 겪고 그에 따른 발달 과업을 극복해야하고, 둘째, 변화에 대응하는 방어기제, 즉 심리적 대처 방식이 성숙하게 발달하여 현실에 잘 적응적으로 발휘되어야 성공적인 노년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들여다보며 검증하였다. 우리의 올리버는 이러한 과업을 잘 성취한 것이다.


나는 올리버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서, 내 삶에서 요구되는 변화과업과 대처 방식을 대리 경험하며 용기를 얻고 위안을 받곤 했다. 그의 삶에 궤적은 우리가 겪어왔거나 겪어갈 삶을 표상하는 상징이다. 올리버는 흔히 우리가 하는 실수처럼,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저버리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아웃사이더로 태어나지만 적절한 타협을 거쳐 인사이더로 살아간다. 올리버는 경계 바깥의 자신의 모습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구되는 변화요청에 자신을 진화하여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을 이뤄내기도 했다. 때론 교착상태에 빠져 혼돈을 겪기도 했고, 도망치거나 멈추거나 숨거나 맞서면서 계속 변화에 대응했고 삶 전체에서 성장과 조화를 이뤄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지금의 안정, 무사, 평탄함은 영원히 유지되지 않으며, 개인적 차원에서의 발달과업이나 노화, 실존적 위기 등이 찾아오고 환경적 차원에서도 관계변화, 시대과제, 사건사고 등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존의 내 삶의 방식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적응을 요구한다. 그러한 불현듯 혹은 서서히 찾아오는 이 과업들은 우리를 구덩이에 빠뜨리고 교착과 혼돈 등의 중간지대에 머무르게 한다. 새로운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멈추거나 도망치거나 숨거나 맞서는 등의 모든 행위로 중간지대를 벗어나려고 한다. 


1화에서 만난 러셀로 돌아가보자. 그 날 저녁, 비행기를 훔쳤지만, 넓은 하늘에서 멋진 풍경을 보며 자유롭게 유영하다 추락했던 러셀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던져진 삶에서, 그에게 요구되는 과업을 그만두는, 많은 가방을 옮기는 것을 포기했던 중간지대에서 결말을 이룬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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