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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장주 Aug 04. 2024

내 꿈은 농장주

1. 한국을 떠나다

2021년, 이학석사의 학위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반년 간 취업준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교수님의 소개로 보다 편하게 취업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무조건 네임벨류 있는 곳, 중견 이상 급의 회사를 다니고 싶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취직을 해보고 싶었다.

자소설을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이런 게 입사 서류에 왜 필요한지 의문점을 주는 질문들을 마주하니 내가 한국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게 맞긴 맞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공은 성적 맞춰서, 대학원은 취업 도피성으로 들어갔다.

물론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면서 재미를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막상 졸업 후 정말 취업할 때가 되니 또다시 도피를 하고 싶어졌다.


도피 이유를 만들어 내는 건 쉬웠다.

나는 더 좋은 자연과 더 적은 인구가 있는 곳에서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고 싶었고

훗날 내 자식들은 학업에 대한 경쟁심 없이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이것들이 도피의 이유라기보다는, 살면서 난 늘 이런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기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빽빽한 인구밀도, 고층 아파트, 미세먼지, 수도권의 교통체증.

이 좁은 땅 덩어리가 급속히 발전하기 위해서 이뤄졌던 것들이다.

물론 한국의 장점들 때문에 한국에서의 삶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의 한국을 만들기까지의 사람들의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삶이 미래가 있을까 싶었다.


우연히 그 당시, 여행 유튜브를 보다가 해외 생활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마침 뉴질랜드가 Covid-19 이후로 국경을 다시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처음 들어본 용어였는데 뉴질랜드에서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라고 한다. 뉴질랜드에 대한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내가 한국에서 취업준비를 했던 식품연구직과 동일한 Food Technologist 직업이 뉴질랜드에서 그린리스트 즉, 뉴질랜드에 지속적으로 필요하지만 만 일 할 사람이 부족한 직업군으로써 조건들을 잘 맞춘다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Republic of Korea special work에 포함되어 있으며 관련 학위와 3년 이상의 경력만 있으면 비자를 얻기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막연하게 뉴질랜드에서 경력을 쌓고 영주권을 취득해 보자 라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운이 좋게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전 한 곳의 회사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했고, 뉴질랜드 도착 후 인터뷰 일정도 잡혀 있었다. 비록 화상 인터뷰 결과는 unfortunatley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받았지만 아직 나아갈 곳이 많기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한평생 영어라곤 관심도 없었고, 학창 시절 제일 싫어했던 교과목 중에 하나였는데 대학원 다니면서 읽고, 써낸 논문 덕분인지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뉴질랜드로 출발했다.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겠지, 나에겐 아직 기회가 많아 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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