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요즘 게임은 참 어렵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이 매거진의 서문에서 밝혔듯, 추억이나 파먹자고 온 것 아닌가. 요즘 게임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학창시절 게임이 있지 않은가.
스타크래프트는 가히 대한민국의 게임역사를 바꾼 최고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우리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학창시절의 5할은 아마 스타크래프트와 피시방이 차지 했을 듯 싶다.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위해 땡땡이는 물론이고, 책걸상을 화장실 구석칸에다가 쳐박아두는 치밀함까지 갖추었었다. 물론 다 들통나 몽둥이 찜질을 당했지만, 맞고 있으면서도 미처 스팀팩을 누르지 못하고 죽어 나갔던 마린 1부대의 명복을 빌었다.
동네마다 작든 크든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있을 정도였고, 학교에서도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를 놓고 비공식 랭킹전을 하기도 했다. 전산과목이 교내과목에 정식으로 들어 오면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우리는 전산실을 피시방으로 만들어버리는 기행도 불사했다.
가끔은 젊은 남자 선생님들과 합이 맞아 게임방을 가기도 했다. 그럴 땐 재수좋게 피시방 요금은 공짜나 다름 없었다. 선생님을 이겨도 기분 좋고, 져도 선생님이니까 크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이기려 애썼다. 우린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영어를 모르는 남학생들에게 반강제 영어학습을 시켰다. 게임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원어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만 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마린을 외치다가도 어느 순간엔 그것이 해병대임을 스스로 알아갔다. 메딕이 의무병이란 것도 알게 되고, 치트키에 쓰이던 많은 단어들도 저절로 학습이 됐다. 요즘 세대들이야 'show me the money'를 래퍼들의 전쟁터로만 알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쇼미더머니'는 래퍼들 이전에 이미 테란, 저그, 프로토스의 전쟁터였다.
특히 영어선생님들은 수시로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영어단어를 가르쳤다. 필수단어도 많았다. 나는 '배틀쿠르저 오퍼레이셔널' 라는 대사를 통해 'operation'이 '운영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라는 걸 알았다. 그 외에도 각 유닛들의 등장대사는 단골 영어교재였다. 우리에게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그 이상이었다.
임요환에 열광했고, 홍진호에 박수를 보냈다. 지금은 은퇴해버린, 그래서 어린 세대들은 그저 방송인 정도로만 알고 있는 그들이 우리에겐 영웅이었다. 나는 그들이 은퇴할 때, 마치 내 어린시절을 잃어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후로 게임방송을 거의 보지 않은 듯 하다.
얼마전, 한 네티즌이 게임리그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 바로 연령별 리그제를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프로게이머들은 30대가 넘어가면서 반응속도와 순간판단능력이 20대 선수들에 비해 느려진다. 그래서 임요환도 은퇴했고, 홍진호도 은퇴했다. 하지만, e-Sports 라는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에 걸맞게 리그제도 새롭게 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연령별 리그제를 도입하게 되면, 30대가 되어도 은퇴하지 않아도 된다. 40대가 되어도 은퇴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은퇴하고 싶을 때 얼마든지 하면 된다. 물론 이제는 스타크래프트가 정식종목이 될 확률은 적어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정식종목이 된 게임들은 연령별로 리그를 만들고 디비전을 운영하고, 그 디비전 우승자들끼리 연령상관 없이 플레이오프 개념을 운영하면 뭔가 그림이 나온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한때 게임에 열광했던 세대로서 30대 선수를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수가 실력이 된다면 20대를 누르고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 사회에서 충분히 어른이 된 우리 세대에게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옛 추억에 흐뭇해 할 것이다.
현실가능성은 없지만, 이런 상상을 했을 때 나는 굉장히 설렜다. 내가 게임방을 다니던 시절의 선수들이 다시 복귀를 해, 30대 리그 디비전 우승을 다투고, 그들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20대 쟁쟁한 게이머들과 승부를 겨룬다. 우승한다면 엄청난 희열을 줄 것이고, 지더라도 그들의 노력에 우리는 박수를 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나왔지만 다시 예전의 인기를 끌긴 힘들듯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피시방에 가 스타크래프트를 하곤 한다. 우리 세대에겐 스타가 일종의 윷놀이 같은 거다. 스타크래프트는 우리의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민속놀이 같은 거였다.
당신에게 '스타크래프트'는 어떤 기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