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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Nov 06. 2018

건강한 고양이를 위한 집사의 고민

터키시 잡종고양이 보리의 건강적신호

    보리의 본관(?)은 터키 김씨 앙카라공파 206세손(?)이다. 터키시 앙고라. 하지만 등록된 순혈종은 아니다. 터키시 앙고라에 가까운 잡종일뿐. 우리나라에는 터키시 앙고라는 99.9...%의 확률로 순혈종이 아니다. 실제 종으로서 인증된 터키의 앙고라종은 반출금지종이다. 공산당의 허가없이는 외국반출을 할 수 없는 팬더와 비슷한 위치라고나 할까. 그래서 보리는 터키시 앙고라라기 보단, 엄밀히 말하면 "터키시 잡종" 이다.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터키시 앙고라에 가깝기 때문에 편의상 터키시 앙고라라고 부른다.


    이는 터키시 앙고라와 비슷하게 생긴 페르시안 친칠라도 마찬가지다. 터키시 앙고라나 페르시안 친칠라나 얘네는 사실 혈통자체가 중앙아시아계 혈통이다. 순혈을 따지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어쨌든 유전적으로는 이웃사촌지간이긴 하다. 털이 긴 것이 원래 혈통에 더 가깝다. 그런데 날이 덥고, 모래폭풍 날리는 건조하기로 소문난 중앙아사이아서 털이 긴 고양이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털이 어마무시하다. 게으른 집사 덕에 털관리 안되는 중.


    터키를 비롯한 그 이웃나라들은 덥고 건조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고산지대가 많다. 그러니 일교차가 큰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우리가 고양이라도 저녁무렵의 쌀쌀한 기운을 피하는데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게다가 장모는 모래먼지에 강하다. 털이 길기 때문에 먼지가 피부에 직접 닿기보다 털 끝에서 맴돌 확률이 더 높다. 물론, 옛날 당시에도 터키와 페르시아 부근에도 털 짧은 고양이들이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종들은 환경에 맞춰 스스로 그들이 선택한 삶을 살기도 했다.


    원래 모든 자연상태의 고양이들은 잡종상태다. 그건 개도 마찬가지. 하지만 개의 경우는 늑대과 습성으로 인해 무리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순종의 대물림이 훨씬 수월하다. 반대로 고양잇과 동물들은 독립된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길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과 교미를 했을 것이다. 거기엔 물론 다른 종이 섞일 확률이 집단생활을 하는 늑댓과 동물들에 비해선 훨씬 높았을 것.


내 욕 하지 마라 집사놈아 !!!


    그래서 보리의 원래 고향, 터키에도 이런 고양이들이 늘 잡종상태로 있었다. 길고양이의 상태로 혹은 산고양이 상태로 널부러져 있다가,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유럽인들에게 발견이 됐고, 그 중에 하얗고 털이 긴 고양이 개체가 눈에 띄였다. 유럽인들은 그 고양이를 터키의 대표적인 고양이라 인식하게 되었고, 개들과 마찬가지로 '브리딩(breeding, 혈통관리)' 를 시작했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혈통서라는 것도 생겨났다.


    문제는 이 브리딩이 특정한 유전형질의 대물림으로 그 특징을 더 강화시키는데는 분명 공로가 있지만, 사실은 따지고 보면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위기도 하다. 단순히 생명윤리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브리딩을 통해 나타나는 실질적인 반작용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보리는 이른바 순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인 특성으로 인해 최근 병원에 가는 횟수가 부쩍 많아졌다. 이제 4살인 보리는 1-2년 전만해도 병원과 거리가 먼 아이였다. 병원이라고 해봐야 중성화 수술을 하거나 예방접종을 할때가 다였지, 특별한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보리는 최근에 들어서 배뇨장애와 눈물샘에 문제가 있어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의사선생님의 말로는 기본적으로 고양이들이 달고 사는 질병이긴 하지만, 이런 증상에는 유전적인 영향을 특히 잘 받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병원가기 싫다옹. 배째라옹.


    평소에 보리는 소변을 볼때, 모래 위에 올라가 일을 보고 30초 이내로 나왔다. 어떨땐, 졸졸 흐르는 소변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보리의 배변생활은 건강했다. 쥐죽은 듯이 고요한 새벽녘, 보리가 싸재끼는 오줌소리에 아내와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너무 귀엽다고 박수까지 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보리가 모래 위에 올라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소변이 아니라 대변인가 싶어 기다려보았지만, 대변 볼때의 그 특유의 꿀렁거리는 웨이브가 없어 미심쩍었다. 그런데 역시나, 모래 위에 남겨진 건 똥이 아니라 감자 덩어리였다. 그런데 평소보다 감자의 양이 적다. 그리고선 미친듯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핥아대기 시작했다.


    소변을 보는 시간이 길어짐과 동시에 엉덩이쪽을 확인하니, 핑크빛(?)의 산뜻함을 자랑하던 보리의 똥꼬가 심하게 누래진 걸 발견했다. 똥이 묻었나 싶었지만, 위치는 똥꼬의 위치가 아니라 보리의 생식기 주변이었다. 아내와 나는 심각성을 깨닫고 다음날 바로 보리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보리에게 내려진 진단은 방광염. 물을 잘 안먹는 평범한 고양이들도 잘 걸리는 질병이지만, 보리의 경우는 그 유전적 형질로 인해 조금 더 주의를 했었어야 했다. 이유는 바로 긴 털 때문. 의사선생님 말에 의하면, 방광염은 이렇게 긴 털이 브리딩된 아이들이 전형적으로 잘 걸리는 질병이라 한다. 털이 길기 때문에 생식기 안으로 털이 말려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늦춰도 아주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인 셈이다. 실제로 보리의 생식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온갖 털뭉치들이 난리였다. 평소에 그루밍을 스스로 잘 해주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이는 분명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기도 했다.



    두번째 병원 방문은, 눈물샘이 막혀 결막염 증상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어느 한날, 보리의 오른쪽 눈가가 심하게 부어 오른게 포착됐다. 빨갛게 달아오른듯, 눈 주변을 마치 누구에게 얻어맞은 듯 핏기가 올라와 있었다. 방광염으로 병원을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우리는 또 다시 한번 크게 긴장을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선생님의 첫마디는 '최근에 사료 바꾸셨어요?' 라는 말이었다. 단박에 알아맞힌거다. 이틀 사이에 사료를 바꾸었었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코가 살짝 찌부러진 애들은 기본적으로 눈물샘이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환경변화나 식습관의 변화는 이런 증상을 잘 낳는다고. 사실 보리는 터키시 앙고라쪽에 가까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콧대가 조금 낮은 편이다. 원래 알려진 터키시 앙고라는 콧대가 오뚝 서있는 게 특징인데, 보리는 그렇지 않다. 브리딩의 잘못된 부작용이 콧대가 낮아지는 것이다. 이는 개와 고양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증상인데, 보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뭐래는 거야. 멍충이"


    터키시 앙고라에 가까운 보리뿐만 아니라 이 모든 증상은 보통의 고양이들이라도 쉽게 가질 수 있는 증상이긴 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브리딩, 순혈주의에 문제가 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집고양이는 어쩔 수 없이 브리딩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택의 권리가 박탈 당하고, 특정 유전형질만 일방적으로 대물림 된다. 자연상태의 고양이들이라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 스스로 그 환경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유전적인 적응들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사람손을 타는 고양이들이 계속 특정 유전자들만 대물림된다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적응권리는 사라진다. 그러면 결국 보리처럼 사람 손을 거쳐야만 증상이 호전되는 인간의존적 동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가축화와 야생화의 논란은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야생성을 어느 정도 존중해주는 것이 동물의 권리를 위한 길인지, 아니면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축화를 시도하는 것이 좀 더 나은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는 길인지 나조차도 헷갈린다. 하지만, 내가 보리를 터키시 앙고라라는 이름으로 데려왔음에도, 이런 식의 브리딩은 반려동물들의 건강에 확실히 치명적인 부분을 남길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데려왔기에 그 건강까지도 책임져야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 없어도 그들 스스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보호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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