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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28. 2018

고양이가 실패를 기억하는 법

알아두면 좋은 캣마인드

    보리를 키우면서 고양이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감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점점 더 확실해졌다. 인간은 감정과 기억이 연동되어 발생하는 한편, 고양이는 감정과 기억이 썩 그다지 연계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기억과 감정이 함께 움직인다. '부정적인 기억'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가 그렇다. 늘 기억과 감정의 부정성을 함께 연동시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인상이 일그러지거나 마치 그때의 상황에 당도한 듯 한 신체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보리에게서는 그런 경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아주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준다면 그것이 학습효과로서 기억과 감정이 함께 인지되지만, 한 두 번의 부정적인 감정이 기억으로 곧바로 저장되지는 않는 듯했다. 이 부분이 바로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보리는 저 서랍장에서 수도 없이 떨어졌다.


    물론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성격의 사람이 있다. 특히 '허허거리며' 사람 좋아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과 자신의 기억에 대한 연상작용이 작동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안 좋은 기억임을 인지하면서도, 어떤 다른 이유에서 '괜찮은 척'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경우는 자신이 겪었던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정말로 연동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학대 수준의 반복된 부정성이나 트라우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치면 아주 작은 일상적인 부분의 부정적인 기억조차도 이들은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듯하다.


보리 사냥놀이 중, 오늘 사냥감은 빵 묶는 고리, 비싼 장난감이 소용 없다.


    고양이가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에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 있다. 바로 '실패 보상설'이다. 이는 고양잇과 동물들의 습성에서 연관된 것인데, 고양잇과 동물들이 개과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사냥 메커니즘을 취하는데서 기인했다는 가설이다.


    개과의 동물들의 사냥 메커니즘은 '지구력’에 있다. 그들은 사냥감을 끈질길 정도로 추격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구력'이다. 그래서 개과 동물들의 사냥감은 스스로를 포기했을 때 비로소 희생된다. 인디언의 기우제가 항상 성공하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 했던가. 개과 동물들의 사냥 메커니즘이 바로 인디언의 방식이다. 그들은 사냥감이 지쳐서 더 이상 도망갈 힘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의 목을 노린다.


    하지만 고양잇과 동물들의 사냥 메커니즘은 '지구력' 이 아니라 '경쟁력'에 있다. 누가 더 빠르냐의 문제다. 톰슨가젤이 요리조리 잘 도망 다니거나 속도가 빠르다면 사자 열 마리를 붙여놔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치타는 속도 경쟁력을 높이는데 대부분의 진화를 할애했고, 덩치 큰 사자들은 속도 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무리 생활을 하는데 진화를 할애했다. 하지만 사자든 치타든, 호랑이든 재규어든 어쨌든 이들의 사냥은 1분 안에 결판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힘껏 내달린 고양잇과 동물들의 사냥 실패율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동물의 왕국'에서 고양잇과 동물들의 사냥 성공담에 익숙할 뿐이다. 사바나 초원에서 치타는 맹수라기보다 동네 호구에 가깝고, 사자는 무겁고 게을러 사냥에 한번 실패하면 에너지 소비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이들은 '실패나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빨리 망각하는 쪽으로 진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고, 다시 재도전할 수 있는 스스로의 보상을 주는 것이다.


사냥놀이 후 떡실신


    실패를 경험으로 배우는 개과의 동물들과, 실패의 감정을 빨리 없애버리는 쪽을 선택한 고양잇과 동물들의 인지과정은 이런 식으로 달라졌다. 그래서 고양이는 머리가 나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이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어쩌면 현명한 일이다.


    인간은 얼마나 실패에 얽매여 살던가. 실패, 좌절, 패배감이라는 족쇄에 묶여 한발 내딛기도 힘들고 버거워한다. 과거가 발목을 잡고, 망각하기보단 끝없이 되새기는 쪽으로 발전한다. 그것이 '경험'의 과정으로 요약되면 좋겠지만, 경험으로 숙성 되기 이전에는 '기억'으로 끝없이 남겨지고 그 기억은 지속적으로 '감정'을 불러일으켜 마음을 괴롭힌다.


    하지만 고양이는 다르다. 생존을 위해 즉각적으로 잊기로 한 것이다. 좌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떠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고양이는 과거를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한다. 기억을 끊어내고 바로 앞에 있는 먹잇감에 다시 눈이 이글거린다. '기억'과 '감정'의 연동을 끊어내고 자신이 해야 할 것에 다시 자세를 취한다.


    나는 요즘 종종 고양이처럼 살기, 보리처럼 살기로 마음을 먹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잘 안 되는 걸 보니, 아직 보리의 눈을 자세히 보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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