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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Nov 27. 2018

누가 함부로 빵 부스러기를 흘리는가

권력의 감시자였던 위대한 빵이여

※ 이 글은 칸투칸 '먹고 합시다' 에 기고하였던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2016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가 있기 몇 달전이었다. 청와대는 여당 지도부를 초청하여 오찬을 하였는데, 오찬 메뉴의 식재료가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램 당 몇 만원을 훌쩍 넘기는 송로버섯과 캐비어, 샥스핀, 그것이 문제였다. 서민은 평생 살면서도 한번 구경하기 힘든 음식이 국가 지도층 오찬장에 나타나자 민심은 들끓기 시작했다.


    각 언론과 시민들은 앞다투어 청와대를 비난했다. 그건 단순히 오찬 바로 며칠 전 제정한 김영란법의 위법여부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국가경제위기 속에서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데다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집권 여당 권력에 대한 각종 의혹들에 대한 국민들의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보수층과 보수언론들은 감싸기 여론을 조성했고, 그렇게 유야무야 논란은 잠재워졌다. 하지만 민생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만의 잔치는 결국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결말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청와대 귀족오찬이 대통령 탄핵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세월호 사건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정부에 대한 불신에 부채질을 한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음식이다. 인류에게 원죄를 뒤집어 씌운 '사과'가 그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절대권력을 무너뜨린 음식 또한 존재한다. 바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과 케익' 이다. 


빵이 모자라면 케익을 먹으면 돼요.


    이 발언 하나로 앙투아네트는 희대의 무개념녀가 된다. 요즘처럼 인스타그램이라도 있었다면, 그야말로 계정을 닫아야 할 정도로 악플에 시달렸을 터. 하지만 앙투아네트가 이 발언을 실제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물론 글쓴이 또한 실제로 앙투아네트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지는 않지만, 당시 루이 16세 정부가 얼마나 민생과 대조되는 식생활을 했는지 단적으로 비유하는 말일 것임은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최고지도자 루이 16세에게 '걸어 다니는 위장' 이라는 별명을 붙였을가. 일설에 의하면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형 당하는 그날까지도 커틀렛 6인분과 치킨, 달걀, 프랑스산 와인, 스페인 산 와인을 실컷 먹고 죽었다 할 정도다.


   어쨌든 '빵'은 프랑스 식문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주식(食)이다. 그래서 앙투아네트의 발언은 당시 민중들이 정부에 가진 불만의 메타포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빵'이 유럽 역사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시대적 흐름을 놓쳐 국가 경제가 궁핍해 가고 있었는데, 귀족들조차 그들의 식탁에 예전처럼 육류를 쉽게 올리기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 파르망티에라는 의사가 감자를 보급하여 국민을 먹여 살리자고 루이 16세에게 건의한다. 이에 루이 16세는 제빵학교를 열고, 감자빵을 비롯한 잡곡빵들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보급하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빵의 색깔이 곧 사회계층을 상징한다. 요즘은 건강을 이유로 일부러 까끌까끌한 빵을 먹지만, 당시 프랑스에서는 부드러운 흰색빵을 선호했다. 물론 그 흰색빵은 온전히 귀족들의 것이었다. 조선백성들이 보리밥이나 잡곡으로 끼니를 연명할때, 사대부들은 흰쌀밥으로 곡기를 채웠던 것 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백성들은 이것을 점점 차별이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백성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사건이 기어이 터지고야 만다. 


    프랑스의 어느 빵가게 주인이 호밀빵을 흰빵값으로 속여 판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빵집 주인은 살해당하고 '빵 사기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온 국민의 분노가 파리 전체로 번져 나갔다. 시민들은 '우리에게도 흰빵을 달라' 며 재정부 장관 사무실 앞까지 쳐들어 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상류계층이 먹던 빵과 차별되지 않는 빵이었다. 바로 이 맘때쯤, 앙투아네트의 무개념 발언이 조작된 듯 하다. 


    하지만 이런 민중의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루이 16세는 결국 그의 아내 앙투아네트와 함께 단두대에서 비극의 막을 내린다. 프랑스 혁명이 '빵'에서 출발했다고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국민 여론에 부채질을 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빵을 훔치는 이야기도 이런 사태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우리나라의 쌀과 마찬가지로 빵은 유럽 식문화의 주식(食)이자 표준이다. 한 민족과 문명의 주식에는 나눠먹는 기쁨도 있지만,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거나 차별받을 때 그것은 분노로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함께 누리지 못할 때, 인간의 감정은 극도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일어났던 임오군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에 비해, 구식군대였던 무위영, 장어영 군인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었다. 쌀배급은 밀리기 일쑤인데다가, 그나마 배급받은 쌀에는 모래까지 섞여 이들의 분노는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격분한 군인들은 결국 정부에 항의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개화기 시기 가장 중요한 국제관계에 심각한 변수로 떠오르면서 조선의 외교주도권이 점차 힘을 잃어갔다.



    가장 가까운 먹거리의 차별에서 오는 분노, 그 분노의 지점까지 서민들을 이끌게한 슬픔과 애환의 주식(食)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주식을 잘 보살피지 못했을 때, 정치에 대한 음식의 간섭은 얼마나 참혹했는가. 


    음식은 단순히 혀의 세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때론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론 그 투쟁에 이르기까지 핍박받던 민중의 서러움과 슬픔이 함께 서려있다. 그래서 우리의 주식(食)이 차별받거나 온전치 않을 때, 인간사에 대한 음식의 간섭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빵 속에는 거대한 슬픔의 효소가 있다
빽빽한 살덩이에 펑펑 구멍을 내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의 이스트가 들어 있다
노릿한 공기 안온하게 들어앉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속에
구멍마다 사람들 꿈처럼 들어앉아
말랑하고 따스한 슬픔의 벽 뜯어먹는다
말할 수 없이 미세한 슬픔들도 노릿한 공기
흥건히 채우며 아메바 같은 아이들 키우는 힘
가지고 있다 슬픔은 자란다, 세포분열 한다
송송송 수없이 제 살 뚫으며 슬픔은 부풀어 오른다
캄캄한 빵의 밤, 슬픔들은 구멍마다 불을 밝힌다
갇힌 슬픔들, 반짝이며 자꾸 언저리 지운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들이
거대한 오븐 속에서 꿈틀꿈틀
부풀어 오른다
오오 저 거대한 빵

- 거대한 빵, 이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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