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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22. 2018

보리를 처음 만나다.

춘천 김집사 육묘일기 01

 고양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내가 고양이를 만나게 된 건, 아내와 연애한 지 1년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1년 동안 만난 아내는 참 고양이 같았다. 그러니까, 책에서 글에서나 배운 고양이 같았다. 도도하고, 새침하고, 손길을 주면 달아나 버리는 까칠함. 그렇다고 내가 딴데로 눈길을 돌리면 어느 새 다가와 그르렁 거리는 물음표 가득한 다정함. 강아지처럼 생긴 외모와는 달리 아내는 천상 고양이 같은 여자였다. 아내는 나와 만나기 1년 전 잠시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었는데, 나는 그때 고양이 영혼이 아내에게 빙의된 건 아니었나 의심할 정도였다. 


 아내의 비위를 맞추고 성격을 이해해보고자 나는 실제로 고양이를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란색과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 치즈태비를 원했지만, 아내는 하얀색 털이 긴 터키시 앙고라를 원했다. 당시는 아내가 아니라 각자 따로 애인사이라, 여자친구가 원한다고 터키시 앙고라를 들이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말을 듣기로 했다. 아내가 원하는 고양이야말로, 아내와 가장 가까운 성격의 녀석이었을테니까. 


 인터넷을 통해 입양처를 알아보던 중 온통 하얗고 유난히 긴 털을 가진 한 녀석을 만났다. 그리고 그 녀석의 주인인 남자대학생과 연락이 닿았다.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까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새 생명을 들인다는 것이 이토록 아무런 준비없이, 단순히 이런 말도 안되는 감정과 호기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스스로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약속된 그 순간이 다가오도록 확신이 들지 않던 터였다. '그래, 일단 한번 보기만 하고 결정하자'. 이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반반, 50:50이었다. 여차하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습니다' 하고 인사할 각오도 되어있었다. 


 약속장소는 원룸빌라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화를 하자, 남자대학생이 나왔다. 방으로 올라가는 중 그 대학생은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원래는 여자친구에게 주려고 서울에서 가정분양 받아온 아이였지만, 여자친구가 알레르기가 있어 급하게 입양처를 알아본 것이라 했다.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자문투성이었다. 나는 사실 키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별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게 있어 한 생을 인생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어쩌면 그와 동시에 이별을 준비해야한다는 두려움을 의미했다. 서른이 넘도록 나는 '이별' 이 무서웠다. 평생의 그 숙제가 뚝딱 해결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별을 겪을 때마다 켜지는 내 삶의 빨간불이 내겐 너무나 길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안내해주는 원룸의 현관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야옹'하고 얼굴을 부비는 그 녀석을 보았다. 그리고 원룸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작은 책상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하지 않은 공간, 고양이 화장실로 쓰는 큰 플라스틱 세숫대야와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 하나씩. 그게 다였다.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됐어요."


 대학생이 말했다. 목소리가 벽을 타고 잔잔히 남을 정도로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발라당하고 누워있던 이 녀석이 놀아달라는지 작디 작은 책상 아래 기어들어가 사냥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은 흡사 휑한 사막의 선인장 그늘 아래 놀고 있는 것 처럼 위태로워보였다. 대학생은 곧이어 자기는 지금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고, 일주일에 두세번씩 밥만 주러 온다고 했다. 대학생을 탓하고 싶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혼내고 싶었다. 갓 3개월 된 새끼 고양이가 살아내기엔 이 곳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별의 두려움과 이 녀석으로 인해 먼 훗날 켜질 내 인생의 빨간불 따위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보리와 나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다. 


내 방 입주 첫날부터 드러누운 보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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