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김집사 육묘일기 02
보리를 내 방에 들여놓은 뒤, 나는 한 공간에도 두 가지의 배경이 생기는 기적을 경험했다. 내 삶의 공간은 보리로 인해 크게 확장됐다. 내 방 안에 새로운 삶의 한 층이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내가 뿌려놓은 삶의 물감 위에는 항상 보리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무리 가리고 덧칠을 해놓아도, 보리는 같은 공간, 보이지 않는 한 층 위에 사는 이웃 같았다.
물리적인 공간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고양이 화장실은 방 한켠을 크게 차지했고, 몇 주간은 보리 밥그릇을 신나게 밟아댔다. 설거지는 항상 해놔야했다.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였어서, 싱크대에 올라가는 일이 자주 있었고, 한번은 고춧가루 그득한 접시에 담긴 물을 먹고 켁켁거리는 걸 본 이후로 싱크대에 절대 빈그릇을 놔두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쓰레기 봉투는 제때제때 치워야 했고, 감기기 쉬운 위험한 비닐도 절대 땅바닥에 두어선 안됐다.
'우다다'는 내 꿈나라에 쉴 새 없이 노크해댔다. 배를 밟는 것은 기본이고, 발가락을 깨문 건 옵션이었다. 오죽했으면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온 몸에 감고 물릴 곳 하나 없도록 철벽방어까지 해댔을까. 하지만 얼굴도 곧이어 공격의 대상이 됐다. 그래서 난 결국 차라리 발가락을 내어주고 얼굴을 보호하기로 했다.
이제 고작 4개월 고양이의 호기심과 에너지는 너무나 왕성한 나머지, 그래선 안됐지만 중간중간 소리를 지르거나 꾸짖은 적도 참 많았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기억이지만, 놀아 달라는 몸짓을 나는 너무 많이 외면했다. 온 집안을 스파이더맨처럼 뛰어 다니는 통에 내 방은 스파이더맨이 뿌려댄 거미줄 마냥 보리의 하얀 털들로 넘쳐났다. 이른바 '털국'은 기본반찬이었고, 하마터면 나까지 헤어볼을 토할 정도로 많은 털을 먹었던 듯 싶다. 그리 부지런하지는 못한 아빠여서, 나는 결국 털을 빗어주는 일과 집안 곳곳과 내 옷 곳곳에 묻은 보리의 털을 떼내는 일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알레르기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우리집에 오는 손님은 항상 각오하고 방문을 해야했다. 만만하게 본 손님 중 일부는 자신이 이제야 털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우리집에서 깨닫기도 했다.
보리의 스파이더맨 기질이 나를 가장 놀래켰던 건, 아마 무더운 여름 창문을 열어놨을 때였다. 집사들이면 아마 한번씩은 경험하는 방충망 클라이밍이다. 나는 우리집에 김자인 주니어가 있는 줄 알았다. 잘 오르더라. 창문이 꽤 높은 편이었는데 보리는 끝까지 올랐다.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건, 내려달라고 '야옹'거리는 거였다. 너무 놀랬지만, 어이도 없었기에 나는 이 녀석의 한계를 보고 싶어 가만히 있었더랬다. 그랬더니 이 녀석은 방충망을 뜯으며 미끄러지듯 내려오더라. 방충망의 뜯긴 자국은 흡사 영화 엑스맨의 울버린이 클로우를 타고 내려온 듯 다 뜯겨 있었다. 다이소 덕분에 방충망은 대충 떼울 수 있었지만, 이사 나올 무렵 집주인의 매의 눈은 피하지 못했다.
서로 바뀐 밤과 낮, 생활리듬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다. 아마 보리도 많이 괴로웠을 것 같다. 서로의 타이밍이 너무나도 달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함께 산지 3개월이 접어들 무렵 보리는 기특하게도 점점 내 생활리듬에 자신을 맞춰갔다. 내가 잘 때는 내 배 위에 올라온다던지, 내가 잠이 푹 들면 내 다리 쪽으로 가 나를 거슬리지 않게 했다. '우다다' 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놀아주고 다시 잠이 들면 보리는 아침에 나와 함께 깨는 일이 잦았다. 내가 일할 때는 먼발치에서 나를 봐주기도 했고, 일을 끝낸 후 잠깐 자리에 일어났을 때야 눈치껏 밥 달라며 '야옹'거렸다. 하지만 나와 패턴이 비슷해져 기특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도 했다. 나를 기다려주는 그 '배려', 인간도 쉽사리 할 수 없는 '배려' 와 '양보'를 고양이가 해내고 있었던 것이니까. 고양이는 본능의 동물일텐데, 함께 산다는 이유로 우리의 규칙을 학습해 내가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애잔했다.
그러나, 이런 오만가지 감정은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 깨지고 전쟁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보리에게 발정기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