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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22. 2018

발정기가 오다, 중성화를 고민하다

춘천 김집사 육묘일기 03

    보리는 발정기가 늦게 온 편이었다. 나는 사실 일종의 '발정기 공포증' 이 있었다. 보리를 데려오기 전부터 고양이에 대해 공부를 해오면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발정기에 대한 여러 사연들이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발정기가 오게 되면,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괴랄한 소리로 온 동네를 떠나가라 운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파트나 동네 골목 어딘가에 살게 되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울어대는 고양이들의 아기 울음소리를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사실 강아지보다 고양이에게 마음이 더 끌렸던 것은 고양이가 조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독립한 뒤, 홀로 싱글족으로 살아가며 친구가 필요했음에도 반려동물을 쉽게 들이지 못했던 것도, 바로 자칫 이웃 간의 분쟁이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발정기는 참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론 중성화 수술을 시키면 될 일이었지만, 내겐 중성화 수술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곳에 보리의 '의지'가 담겨 있느냐는 것이었다. 


    참 어려운 문제였다.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동물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보리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그랬다면 아마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단지 발정기가 오면 시끄럽다는 이유로 생식기를 걷어 낸다는 것이 인간과 동물 간에 지켜야 하는 윤리성에 적합한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쉽게 칼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서 일까, 보리는 태어난 지 1년 가까이 되도록 발정기가 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참 어리석은 상상을 하곤 했는데, 우리 보리는 참 특별해서 발정기가 안 오나 보다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 자식이 특별하듯이, 자기의 반려동물 또한 특별한 법이니까.


    하지만 발정기는 곧 오고야 말았다. '으앵, 으앵' 대던 생전 처음 듣는 보리의 소리. 발정기 때의 보리는 이미 내가 알던 보리가 아니었다. 어떨 땐 맹수의 소리 같다고도, 어떨 땐 괴물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보았던 '라이언 킹'의 심바가 새끼 사자일 때, 아빠인 무파사의 소리를 따라 하려 '앵앵' 거리던 딱 그 소리였다. 야생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애기 소리 같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보리의 문제였다. 보리로 인해 이웃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평소와는 다르게 보리의 상태가 매우 걱정됐다. 함께 있을 때야 그 본능의 소리를 내가 온전히 받아주면 될 일이었지만, 잠깐이라도 홀로 있을 땐 어떻게 지낼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있을 땐 그래도 덜했던 울음소리가 내가 외출하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보리는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당시 우리 집은 2층이었는데, 1층 현관에 내려와서도 보리의 소리가 들렸고, 원룸 건물 밖에서 오토바이나 트럭이 지나가지 않는 이상 보리의 소리가 온 콘크리트를 타고 내려왔다. 그러니까 이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발정기로서의 고양이가 아닌, 아파서 울고 있는 딸내미를 놔두고 나가야 하는 애통함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보리에게 화도 냈다. 그러면 안될 일이었지만 그랬다. 보리에겐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텐데도 보리를 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고 보리에게 가장 미안했던 일 중 하나다. 그럴 때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초점이 맞혀져 있었다. 내가 잠을 자기 힘들어서, 내가 이웃들에게 욕먹는 것이 싫어서... 모두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 대상을 나는 아주 잠깐, 순간적으로나마 보리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왜 이래, 그만 좀 울어, 나도 힘들어. 


    보리는 그냥 보리로서 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보리를 데리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보리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보리가 밟혀 내 선택으로 그 아이를 데려온 것이었음에도 나는 보리가 보리답게 사는 걸 지켜봐 주지 못했다. 


    그렇게 첫 번째의 발정기, 두 번째의 발정기가 지났다. 그런 식으로 짧게는 2주, 늦게는 3-4주마다 한 번씩 똑같은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중성화 수술에 대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겐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다. 과연 그 속에 보리가 단 1%라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쉽게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곧 나는 중성화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내가 중성화로 인해 보리에게 칼을 댄다는 '죄책감' 조차 보리에게 미루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보리를 데려왔다면 보리의 중성화를 시키면 될 일이었다. 나는 단순히 보리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이유로 그걸 안타깝게 여겼고, 그걸 죄책감과 연결시켰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죄책감마저 내가 떠안고 가야 할 것이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기 위해선 어느 한쪽이 필히 양보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늘 살던 대로 살아간다. 그건 동물들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욕심이 없어서다. 그 생활이 편하기 때문이 딱히 불편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굳이 양보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걸 동물에게 바라는 것은 정말 불공평한 처사다. 그들은 늘 살아가는 대로 살뿐이다. 그들이 말을 못 하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양보할꺼리를 늘 그들에게 전가한다. 


    중성화 수술도 그러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했음에도, 나는 모든 것을 보리에게 미루려 했다. 보리의 선택이 없었다는 이유로, 내가 느껴야 할 죄책감을 차일피일 미루려 했다. 가족이 된다는 건,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중성화 수술을 하더라도 늘 그랬던 듯이 잘 산다. 죄책감은 인간이 떠안고 가야 할 몫이다. 누군가는 이걸 합리화라고 단정 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중성화를 선택했다. 그것이 비록 보리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보리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이유가 내게 주는 감정의 빚은 평생 안고 갈 것 같다. 그래서 그 마음의 빚이 더 큰 사랑으로 조금이나마 덮일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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