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집사 육묘일기 04
수컷 중성화 수술보다 암컷 중성화 수술이 더 비싸다. 비용의 기준을 들이대면 안 될 '한 생명'에 관한 일이지만, 수술비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발정기와 중성화를 해결하지 못한 집사들 중 일부는 이런 부분 때문에 아직도 고양이를 유기하기도 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현실에선 일어나고 있다.
중성화 수술 자체에 대한 비용도 비용이지만, 수술을 위해 행하는 각종 검사비용도 만만치 않다. 혈액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받게 되는데, 여러 가지 번잡스러운 과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제발 고양이를 키우려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키우길 바란다. 한 생명을 받아들인다는 건, 번거로움과 귀찮음, 비용에 대한 부분까지도 다 생각해야 할 문제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아무리 뛰어난 수의사 선생님이 있더라도 집사들은 선뜻 신뢰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이는 수의사 개인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집사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생식기를 떼어내는 수술이다 보니 이만저만 염려스러운 게 아니다. 더구나, 아주 가끔이지만, 수술 중 개나 고양이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뉴스들이 수술 준비기간에는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의사를 못 믿는다기보다, 한 생명에 대한 자연스러운 근심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보집사에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수의사들이 다 사기꾼 같고 돌팔이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보리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겠다고 다짐한 뒤, 여러 병원들을 알아보던 그 시기에, 하필 딱 중학교 동기모임이 생겼다.
몇십 년 만에 만난 동기모임이었다. 다들 사느라 바빠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술 몇 잔에 자연스럽게도 우리는 서로의 직업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곳에 '수의사' 친구가 있지 않은가. 그 친구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내 바로 뒤에 앉았던 친구다. 제법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가 달라 인연이 이어지지 못하다가 모임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나는 친구를 만난 반가움과 함께 '수의사'라는 말에 더 반가웠다. 당연히 그와의 대화는 보리의 중성화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고, 여러 가지 고양이에 대한 의학적 얘기도 나눴다. 그리고서 수술을 할 거면 자기 병원에 오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고선 일주일 뒤, 나는 보리를 데리고 친구의 병원에 갔다. 대구 칠곡 3지구에 위치한 친구의 병원에 '키다리 동물병원'이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보였다. 그 친구가 마른 체형이 키만 멀대같이 커서 지은 이름인 듯했다. 걱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한결 안심이 됐다. 수술을 위한 여러 가지 검사들을 마치고, 일주일 뒤 수술일정을 잡았다. 나는 그제야 한 집안에 '의사'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다는 말을 실감했다. 어떻게든 아는 사람을 물어물어 소개받아가며 굳이 먼 병원을 가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했다. 결코 유별난 게 아니었다.
일주일 뒤, 보리를 데리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친구는 진행하게 될 수술과정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지인에게 들은 설명은 걱정을 가라앉혔다. 보리는 수술실에 들어갔고,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자 보리는 아직 회복실에 있다며 친구가 안내했다. 회복실 안에서 반쯤 정신이 반쯤 나간 보리는 너무 작고 가여웠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그건 정말 진심이었다. 진료실에 돌아오자 친구는 떼어낸 난소와 난관을 내게 보여주었다.
울컥했다. 저 조그마한 놈이 마취를 견디고, 몸에 있던 또 하나의 생명의 상징을 떼어낸 것이 너무나 기특했다.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죄책감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가져가기로 한 것이니 더 이상 그 마음에 머무르지 않았다. 친구가 말했다. 동물들도 생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이런 걸 다 견뎌내는 걸 보면 자기도 가끔 울컥할 때가 많다고 했다. 며칠 전엔 응급으로 수술한 강아지가 있었는데, 결국 그 아이를 못 살렸다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후 보리가 첫 수술, 자신도 보리로 인해 많은 힘을 얻었다며 고마워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극복'의 광경은 참 많은 걸 깨우치게 한다. 집에 왔을 때, 마취가 덜 풀린 녀석이 비틀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려는 모습, 내 침대 위로 뛰어오르려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몸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항상성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내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그 후 며칠간 약도 잘 먹었고, 회복도 잘 됐다. 수술한 자리는 잘 아물었고, 별 일 없이 실밥도 풀었다.
친구는 보리에게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제 겨우 1살짜리, 사람 팔뚝 정도의 작은 고양이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큰 의미를 배운다. 집에 돌아왔을 때, 보리는 전보다 더 탄력 있게 내 침대로 뛰어올랐다. 나도 침대에 눕자, 언제 그랬냐는 듯 보리는 내 배 위에 올라와 골골송을 부른다. 보리를 쓰다듬는 내 손에는 미안함과 안쓰러움과 고마움이 묻어 있었다. 보리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창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그 날따라 참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