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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bok Jan 30. 2020

왜 제조업계엔 주커버그가 없는가?

정보 권력의 관점에서 본, 전통 제조업과 IT 서비스업의 차이

제조업에선 환상 같은 억만장자들의 이야기


우리는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흔한 무용담처럼 듣곤 한다. 26살에 최연소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34세의 나이에 코스닥에 회사를 상장시킨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이를 듣고 누구나 한번쯤은, 본인 역시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고 기업의 리더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꿈을 꾸기 마련이다. 설사 C-Level까진 아니더라도, 화려한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최연소' 대리, '최연소' 과장과 같은 타이틀을 다는 상상을 한번씩 해보곤 한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통 제조업에선, 젊은 나이의 주니어가 시니어 레벨로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왜 제조업엔 주커버그가 없는걸까? 혹자는 한국의 다양성이 결여된 조직 문화와 창의성이 부족한 인재풀을 원인으로 꼽는다. 또 누군가는 젊은이들의 헝그리정신 부족을 꼽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제쳐두고 오늘 같이 고민해보고 싶은 원인은, 업의 본질적 성격에서 비롯된 조직 내 '정보의 불평등' 문제다. 대부분의 전통 제조업 기업들에는, 주니어-시니어 레벨 사이에 개인 역량으로 극복하기 힘든 정보 권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전통 제조업은 불평등하다


필자의 주관에 의하면, 정보 권력과 관련해 전통 제조업은 크게 2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이를 IT 서비스업과 간단히 비교해 논해보고자 한다.


(1) 기울어진 절벽: 시니어가 압도적 우위를 갖는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한국경제를 상상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제조산업들은 보통 역사가 길고, 그 기간동안 과거에 발생했던 문제가 형태와 위치를 변주해가며 반복된다. 예를 들면, 과거 국내 공장에서 A제조라인을 가동하면서 터진 품질 이슈가, 해외 공장의 C라인을 증설하면서 재발생하는 식이다. 따라서, 자연히 해당 업계에 오래 머문 사람일 수록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주니어들을 향한 시니어들의 "니가 뭘 알겠어?"하는 말과 눈초리는 근거 없는 무시가 아니다. 이런 '탄탄한' 배경의 자신감에서 나온다. 주니어들이 공부하지 못한 분야의 시험지를 처음 받고 수학문제를 푸는 입장이라고 하면, 시니어들은 이미 그 시험 문제들의 숫자만 바뀐 버전의 문제집을 여러 권 풀고 들어온 입장인 셈이다. 따라서 주니어와 시니어가 같은 문제를 푸는 경쟁자라면, 둘은 '기울어진 운동장' 수준이 아니라 '기울어진 절벽'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그건 전통제조업 뿐 아니라 어디에나 해당되는 말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주커버그와 같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IT 서비스업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194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통계를 내보면, 프로그래밍 언어는 매년 1개 이상 탄생해왔다. 현재까지 공개된 프로그래밍 언어는 300개가 넘는다. 개발 언어가 다양하고 유행이 빠르게 변하기에, 해당 언어의 전문가 반열에 오르기 위한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혹자는 2,3년만 쌔빠지게 공부하면 운좋게 특정 분야에선 전문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일례로, 최근 수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이 ICO를 시작했을 때, 이들이 제시한 백서 상의 핵심 개발진은 상당수가 20, 30대 젊은이들이었다. 이는 개발을 20, 30년했다고해서 블록체인을 더 잘 개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내포한다. 이렇게 주니어 연령의 인력을 전문가로 내세워 투자를 받는 것이 업계에서 상식적인 일일 정도로, ‘프로그래밍’이란 운동장의 기울기는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한다.


(2) 1차선 도로: 주니어의 추월이 힘들다

1차선 도로에선 앞차가 의도적으로 비켜주지 않는 이상, 뒷차의 추월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번에 대한 반론으로, "시니어가 많은 노하우와 지식을 갖고 있는건 당연한거고, 주니어가 밤새가며 노력해서 빨리 그걸 공부하면 되는거 아니냐?"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 제조 기업 내 업무에 필요한 지식은, 밀레니얼 세대인 주니어들의 정보 습득 방식으로는 습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니어가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사용해온 지식 습득 방법은 회사에서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찾 수 있는 ‘수요자 중심’ 공급 구조와 달리, 제조기업의 지식은 ‘공급자 중심’ 공급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회사에서 내가 궁금한 게 있다고 해서 각종 서적, 위키피디아나 논문 검색, 유튜브 시청 등을 통 검색,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업무에 대한 지식과 인사이트는 대다수가 문서화/교육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엔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다가, 업무 인수인계나 아이디어 회의와 같이 공급자가 공급을 원하는 경우에만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는 이상 굳이 공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조기업들은 직급에 따라 계급화되고 기계의 부품처럼 역할이 분업화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조직에선 자기 맡은 일만 잘하면 조직이 잘 굴러가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을  굳이 시간 내서 정리해 타인과 널리 공유할 이유가 없다. 물리적 여유가 있든 없든 간에, 공유로 얻는 보상이 없기에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자신만이 가진 지식은 오히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하는 '생존의 무기'가 된다. 때문에 주니어의 성장은 가시밭길이다. 해당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선 문제를 하나하나 맞닥뜨려가며 배우거나, 하루종일 사수를 붙잡고 과외받듯이 도제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반면, IT 업계는 1차선이 아닌 100차선과도 같다. 차선이 많을 뿐 아니라, 내가 원하면 언제든 더 좋은 엔진을 바꿔 달 수도 있고, 네비게이션을 통해 경쟁자를 추월할 지름길을 안내받을 수도 있다. 기존의 누적된 지식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든 개인의 역량에 따라 더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방식으로 코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스마트한 방식을 비밀로 하기는 커녕, 모두가 앞다투어 공개한다. 개발자들은 깃허브 계정을 통해 자신의 코딩 노하우와 방식을 공유한다. 구글은 텐서플로우 같은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테슬라는 자율주행 특허를 인터넷에 공개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게 해두었다.



결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실컷 욕 해놓고 왜 이제와 중립적인 척을 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정보권력이 불평등하다고 해서 전통제조업들이 나쁜 조직인 것은 아니다. 주니어 레벨에서 빠르게 성장하기 힘들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조금씩 쌓은 노하우와 지식이 수 십 년 뒤엔 강력한 경쟁우위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렇게 느린 성장을 조직이 오랫동안 기다려주기까지 한다. 반면 빠르게 변화하는 IT 서비스업에선 매순간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해야 한다. 수 년 동안 공부한 개발언어가 한 순간에 시장에선 '떡락'해버려 자신의 시장가치를 평가절하 당할 수도 있다.


결국, 개인의 취향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만약 둘 중 본인의 성격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 곳에 몸 담고 있다면, 적응하거나 옮기거나 둘 중의 하나를 취하는 것이 간단한 해결책일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 혼자 힘으로 절을 힙하게 바꾸기에, 아직까지 한국의 절은 너무나 크고 단단하다. 그렇게 크고 단단하기에 지금까지 남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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