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픽업트럭을 만든 이유
“솔직히 말하면 사이버트럭이 실패할 가능성도 있겠죠.
다른 트럭과 너무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 일론 머스크 -
2019년 11월, 일론 머스크는 또 하나의 신제품 ‘사이버트럭’의 출시 계획을 발표합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는 사이버트럭은, 마치 2050년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겼는데요. 사람들이 으레 상상하는 자동차의 우아한 곡선은 찾아볼 수 없고, 철판으로 종이접기를 한 것 마냥 날카로운 각이 져 있습니다. 자동차라면 반드시 거치는 도색도 제대로 돼있지 않아, 회색빛 강철 소재가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있고요. 생김새만 강인한 게 아닙니다. 차체는 망치로 두드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고, 유리는 방탄 성능을 자랑합니다.
이제껏 테슬라의 신제품은 공개될 때마다 항상 화제를 모아왔지만, 이번엔 부정적인 쪽으로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출시 발표회에서 수석 디자이너 프란츠 본 홀츠하우젠이 시범삼아 던진 쇠공에 방탄 유리가 어이없이 깨지면서, 순식간에 테슬라 주가가 6% 넘게 폭락했습니다. 이제는 해프닝으로 추억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언론과 대중의 비웃음이 쏟아졌는데요. 이런 일시적 화젯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이버트럭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Piplsay라는 업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소비자의 무려 44%가 사이버트럭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습니다. 오직 29%만이 사이버트럭에 긍정적인 평을 내렸고, 나머지는 무관심했습니다. 과연 일론 머스크는 사이버트럭의 독특한 디자인에 이렇게 호불호가 갈릴 것을 예상치 못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언제나처럼, 계획과 이유가 있었습니다.
테슬라는 왜 픽업트럭을 출시하려 하고, 왜 이렇게 독특한 형태의 차를 내놓는 걸까요?
사실 한국 사람들에겐 ‘픽업트럭’이란 이름부터가 생소합니다.
트럭이면 트럭이지 ‘픽업’트럭은 무슨 말일까요? 쉽게 설명하면, ‘SUV에 트럭의 화물 적재칸을 접목한 것’이 픽업트럭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도로를 달리는 픽업트럭을 보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 영화/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집 앞에 주차된 픽업트럭을 몰고 나가는 장면을 누구나 한 번 쯤은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름은 낯설어도 영상으로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차종이죠..
픽업트럭이 뭔지 알았다면, 한국인들의 다음 궁금증은, ‘저런 걸 대체 왜 사는 걸까?’일 겁니다.
외양은 지나치게 마초적이고, 과도하게 커서 주차도 불편해 보입니다.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딱히 저 커다란 화물칸에 짐을 실을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저렇게 무겁고 크면 기름값은 얼마나 많이 나올지 걱정부터 들죠. 특히 여성 소비자들이라면, 본인의 첫 차로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긴 마초스러운 픽업트럭을 선택할 사람은 극히 드물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미국인들은 픽업트럭에 열광하는 걸까요? 저런 무식해보이는 디자인을 멋지다고 생각하다니,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것일까요? 기름값은 어떻게 감당하는 걸까요? 미국에서 픽업트럭이 잘 팔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첫째로, 비싼 인건비로 인해 DIY(Do It Yourself) 생활 방식이 보편화돼 있습니다. 뭐든지 무료로 배송해주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식료품은 물론이고 가전제품, 가구를 사더라도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배송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직접 차를 몰고 구입한 물건을 운반해가는 쪽을 택합니다. 또, 인테리어나 집 수리를 하더라도 직접 페인트나 벽지를 비롯한 자재를 Home Depot같은 몰에서 구입해 직접 운반하고 시공하는 DIY 문화가 보편화 돼 있습니다. 시트가 찢어지고 더럽혀질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세단 뒷좌석에 페인트통이나 냉장고를 우겨 넣고 싶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일상생활에 픽업트럭이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둘째로, 기름값이 저렴합니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원유 생산국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석유’하면 떠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보다도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기름도 훨씬 저렴합니다. 한국 휘발유 가격이 평소 1,500원 내외를 맴도는 반면, 미국은 그 절반을 왔다갔다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유가가 폭락한 2020년 4월 한 때, 산유지인 텍사스의 휘발유 소매가는 100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죠. 세단/SUV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비가 떨어지는 트럭을 구매하더라도, 기름값 걱정은 접어둘 수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도로환경이 완벽히 정비돼 있지 않습니다. 지방 소도시를 가더라도 도로가 모두 깔끔하게 포장돼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비포장도로가 즐비합니다. 진흙탕이나 구덩이는 물론이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마주치는 일도 많다고 하죠. 이런 환경에서 달리기엔 세단보단 트럭이 훨씬 나은 선택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아래 그림과 같이, 험지나 미개발구역이 많은 중/북부 주(붉은색/주황색 표시)에선 동/서부에 비해 픽업트럭 구매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강력한 현실적 니즈 덕에, 실제로 미국 픽업트럭 시장 규모는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Statista의 통계에 의하면 2019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총 1,711만대인데, 이 중 무려 18%인 약 311만 대가 바로 픽업트럭입니다. 또 미국 자동차 시장이 2015-19년 새 연평균 -1%의 역성장을 기록한 데 반해, 같은 기간 픽업트럭은 연평균 5%씩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19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종을 줄 세우면, 1,2,3위가 모두 픽업트럭이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결국, 테슬라에게 픽업트럭은 미국에서 세단/SUV만큼이나 크고 중요한 시장입니다. 이런 시장을 빼놓고서, 테슬라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세계적 전환을 가속화한다(Accelerate the world’s transition to sustainable energy)’는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픽업트럭 시장 공략은, 일론 머스크의 장대한 비전 달성을 위해 반드시 맞춰야 할 퍼즐조각 중 하나인 겁니다. 이것이 테슬라가 픽업트럭을 출시한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퍼즐조각을 완성키 위해, 테슬라는 사이버트럭이라는 굉장히 도발적인 선택을 했는데요. 2019년 11월 공개된 사이버트럭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마치 에어팟이 처음 출시됐을 때와 같이 극단적 호불호로 나뉘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추종자들은 2050년을 상상케 하는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힙하다며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언론과 일반 대중들은 마치 게임 Minecraft에 나오는 장난감 같다며 강한 불호를 표현했죠. 인터넷 상에선 사이버트럭을 소재로 한 수많은 Meme이 만들어져 조롱받기까지 했는데요. 마치 에어팟이 콩나물로, 아이폰 11프로의 카메라가 인덕션으로 놀림받던 때를 연상케 합니다. 모델 S, X, 3처럼 일반적인 자동차들의 디자인을 따를 수 있었을 텐데도, 테슬라가 이렇게 독특한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이유1)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사이버트럭은, 다른 보통의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일반적인 제조 공정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사이버트럭의 외골격을 구성하는 철판 소재는, 슬레지해머로 가격해도 긁히거나 찌그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고 하는데요. 스페이스X에서 만드는 로켓의 소재인 초고경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스테인리스 스틸 덕분에 사이버트럭은 9mm 구경의 총탄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차체를 자랑하는데요. 이 독특한 소재가 바로 사이버트럭이 투박하고 직선적인 외양을 가지게 된 원인입니다.
일반적인 자동차의 외부 패널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철판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야 합니다. 잘라낸 철판은 ‘스탬핑(Stamping)’이라는 공정을 통해 압력을 가해 원하는 형상으로 성형합니다. 평평한 철판을 뜨겁게 달궈 아름다운 곡선형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냉각해 단단하게 만드는 것인데요.
하지만 사이버트럭은 일반적인 스탬핑 공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아니 정상적인 스탬핑을 할 수 없습니다. 금속 경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성형하는 과정에서 철판이 부서지거나 스탬핑 기계가 고장나 버리기 때문인데요. 때문에 애초에 철판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지 않고 접어서 평평한 모습 그대로 사용합니다. 철판의 굴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만 구부려서 차량의 형태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구부린 철판을 그대로 차체의 프레임으로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자동차 공정에서는 외골격인 프레임에 잘게 자른 패널을 붙이지만, 사이버트럭은 두꺼운 철판을 구부려 프레임 겸 패널로 사용하는 일체형 구조입니다.
스탬핑 공정은 테슬라의 오랜 골칫거리였는데요.
스탬핑은 자동차 공장에서 가장 거대하고 비싼 장비를 요구하면서, 자동차의 품질을 좌우합니다. 테슬라는 전통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이 스탬핑 기술이 부족해, 원하는 모양의 차체를 만들어내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모델3의 생산이 오래도록 지연됐고, 어렵게 만들어낸 차에도 패널 간에 간극이 생기는 ‘단차’ 문제가 끊임없이 터졌습니다. 실제로 단차는 국내외 테슬라 소비자들의 주요 컴플레인 항목이면서, 가장 최근 생산하는 모델Y에서까지 잡지 못했던 오랜 골칫거리였습니다. 사이버트럭에서 일론 머스크는 이런 골칫거리와 싸우기보다 과감히 생략해 해결해버린 겁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제조 공정을 따르지 않기에 사이버트럭은 모델 S, X, 3보다 훨씬 빠르게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본인이 직접 구속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코로나 시국에 공장 가동을 강행할 정도로, 테슬라는 일분일초가 급합니다. 하루 빨리 자동차를 제작하고 고객들에게 인도해, 판매 대금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통 내연기관 업체들과의 전기차 보급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고,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해 잔뜩 선반영된 주가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버트럭의 직선적인 디자인은 빠른 생산과 판매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던 겁니다.
이유2) 더 저렴하다
사이버트럭은 저렴합니다.
가장 낮은 스펙인 싱글모터 버전을 구매하려면 $39,900만 지불하면 됩니다. 앞서 언급한 스탬핑이나 도색 같은 제조공정을 과감히 생략하면서 생산 원가를 이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추려는 겁니다. 전기차 전문 매체 Electrek의 보도에 의하면, 북미 픽업트럭 시장의 전통 챔피언인 포드 F-150 제조를 위한 생산 설비를 갖추기 위해선 2억 1천만 달러 가량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테슬라 사이버트럭 제조에는 3천만 달러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또 포드 F150 모델의 가장 저렴한 버전은 대략 $29,000 정도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가격의 모델은 2,3명 정도의 탑승만 가능하고, 사이버트럭과 동일한 6인승 스펙 모델의 가격은 $36,000까지 올라갑니다. 사이버트럭에는 F-150에는 없는 오토파일럿, 에어서스펜션, 금고식 저장장치같은 추가 스펙이 장착됩니다. 또 전기차는 기름값/수리비 등의 유지비용이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저렴한 점을 고려하면, 얼추 내연기관 트럭들과 가격 경쟁이 가능해진 겁니다.
아직까지 전기차는 보조금 없인 내연기관과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렇기에 테슬라도 소비자들이 가격에 덜 민감한 세그먼트인 스포츠카와 고급 세단부터 만들기 시작하며 배터리 원가가 하락하길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21년 말부터 생산 예정인 사이버트럭은 이 정설을 깨고 본격적으로 내연기관차와 제대로 맞붙고자 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이버트럭이 단순히 전기차라는 이유만으로 저렴한 것은 아닙니다.
전기트럭 시장의 후발주자인 리비안(Rivian Automotive)이 출시를 준비 중인 전기 트럭은 최소 $70,000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경쟁자인 사이버트럭을 의식해 이 가격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림잡아 3천만원 가까이 나는 가격 차이는, 어지간한 원가 절감 노력으로는 쉽게 따라잡기 힘들어 보입니다.
사이버트럭의 양산이 몇 달 남지 않은 2021년 현재, 사실 일론 머스크조차도 ‘사이버트럭이 디자인 때문에 실패할지 모른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그 정도로 사이버트럭의 외양은 혁신적이면서 기괴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위의 2가지 이유로 사이버트럭의 디자인은 테슬라의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단, 이는 '테슬라만 내릴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전통 픽업트럭의 강자인 GM이나 포드가 정확히 동일한 디자인의 차를 혁신적인 신제품이라면서 내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테슬라 이상으로 대중의 비웃음거리가 되며, '이제 완전히 감을 잃었다'는 식의 조롱을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포드라면 '바보같은 실수'로 남았겠지만, 테슬라였기에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테슬라의 도전에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주문’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사이버트럭은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업계 추정에 따르면 100만 대가 넘는 예약 잔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론 머스크조차도 그 수가 너무 많아 세길 포기했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인데요.
물론 포드, GM 같은 전통 내연기관 업체와 리비안 등의 EV 스타트업들이 사이버트럭의 도전을 좌시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들 역시 사이버트럭 출시에 발맞춰 자신만의 EV 픽업트럭 라인업 출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과연 테슬라는 이들과의 경쟁에 맞서 픽업트럭이란 새로운 상품군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결과가 기대됩니다.
※ 이 글은 전기차 전문 매체 EV POST 에 동시 게재됩니다.
Reference
- 테슬라 공식 홈페이지
- Bad News, Elon Musk: Survey Finds Most People Don’t Like How The Tesla Cybertruck Looks (Forbes, 2019)
- Poll: Consumers prefer EV trucks from GM, Ford over Rivian, Tesla Cybertruck, but not by much (Autolist, 2019)
- Tesla Cybertruck is ‘incredibly cheap’ to bring to production, says manufacturing expert (Electrek, 2020)
- Tesla Cybertruck vs. Rivian R1T electric pickup comparison — shocking lead from Tesla (Electrek, 2019)
- 테슬라 사이버트럭의 엔딩은 진화일까 해프닝일까 (IMBOLDN, 2019)
- King of the Road: Breaking Down the Popularity of Pickup Trucks (Experian, 2019)
- Tesla Cybertruck’s ‘simple’ design goes way deeper than you think (Teslarati,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