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bok Nov 23. 2020

한국 대기업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

뭣이 중헌지 모르는 사람들

[3줄 요약]


1. 디지털 역량의 핵심은 '양질의 개발 인력'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은 직접 고용 대신 그룹사 내 SI업체의 외주 개발자들에게 하청을 맡기기 때문에 디지털 역량 자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2. IT 서비스는 출시 후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하며 진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은 전통 제조업처럼 제품 출시 이전의 '설계'와 설계안에 충실한 '제조'과정에만 집중한다.


3. 한국 대기업들은 고객 경험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Transformation' 대신, 기존 오프라인 사업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놓는 'Transportation'에 집중한다.



1. DT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외주업체 손에 맡긴다


IT업계 관계자들에게 IT 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째도 개발자, 둘째도 개발자, 셋째도 개발자의 확보라 답할 것이다. 그만큼 좋은 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솔루션의 품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기에 네이버, 카카오, 그리고 쿠팡과 같은 테크 기업들은 좋은 개발자 구하기에 혈안이 돼있다. 일례로 쿠팡은 우수한 테크 인재들을 채용하기 위해 TRE(Tech Recruiting Engine)이란 전담 조직을 구성했으며, 경력 개발자에 사이닝 보너스로 5,000만원에 달하는 금액까지 제시한다. 


하지만 전통 대기업들은 개발자 채용에 별 관심이 없다. DT를 추진하면서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그룹 내 SI(System Integration) 계열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삼성SDS, LG그룹의 LG CNS, SK그룹의 SK C&C와 같이 그룹사별로 IT 서비스를 전담하는 외주업체들이 존재한다. 전통 대기업들은 이들에게 프로젝트를 발주해 외주용역료를 지급하고 DT 프로세스의 많은 과정을 일임한다. 때문에 대기업이 아닌 SI업체들이 채용한 개발자들에 의해 솔루션이 구축되고, 대기업 내 자체 IT 조직은 DT를 외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한 사이즈를 유지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SI업체들에 최고의 개발 인력들이 모여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하청 업무를 수행하는 SI업체들은 ‘하청의 재하청’을 통해 다시 외부 업체에서 개발자들을 소싱해온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대기업들의 눈에 개발자란, 쉽게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일 뿐이며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끊어낼 ‘비용’일 뿐이다. SI업체들이 사라진다면, 대기업들의 IT 시스템은 당장 정지되거나 운영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빈약한 자생력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의 핵심 역량을 당연하듯 외주화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DT 역시 외주 프로젝트 몇 번 한다고 끝날 수 있는 쉬운 숙제가 아니며, 일부 대기업들에겐 몇 년에 걸쳐 근본 체질을 바꿔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기업들의 IT 외주화 구조는 수십 년 동안 큰 변화없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기업들이 원한다고 해서 이러한 하청 구조를 끊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계열사 물량으로 먹고 사는 SI업체들의 존속 여부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 주요 그룹사의 SI업체들의 매출에서 계열사 Captive 물량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19년 기준 계열사 매출 비중이 현대오토에버는 94%, 롯데정보통신은 86%에 달한다. 당장 계열사 물량이 줄어든다면 생존이 불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SI 업체들이 생판 남이 아닌 형제 자매이기에, 그들이 굶어 죽는 것을 전통 대기업들 역시 바라지 않는다. 

SI업체들의 압도적인 계열사 매출 비중. 계열사 매출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할 수준이다 (출처: Datanews)


2.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려 한다


IT 서비스업의 가장 큰 특징은, 제품을 생산해 유통한 뒤에도 끊임없이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랜 고민을 거쳐 단번에 훌륭한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오히려 출시 이후 얼마만큼 제대로 수정해내느냐가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때문에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설사 고객이 원하지 않는 방향의 기능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테스트를 거쳐 고객 니즈를 짚어 내고, 이를 빨리 반영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은 제품 뿐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에까지 적용된다. (물론 실리콘밸리에 한정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 실수를 했다면 당사자를 비난하지 않고 실수가 발생한 구조를 다같이 분석해 예방 조치하는 ‘실패 부검(Post-mortem)’ 문화를 장려한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실패는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수직적인 문화라든지, IT 서비스업에 대한 이해 부족의 영향도 있겠으나, 나는 앞서 언급된 ‘하청 구조’에서 원인을 찾고 싶다. SI업체에 프로젝트를 발주하려면 가장 먼저 과업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정의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인력을 써서 얼마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식의 보고 및 결재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단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해진 기간 안에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기간을 초과하게 되면 ‘불필요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담당자의 무능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시간 내 일을 마치기 위해선 처음 정해진 설계서에 충실해야 하며,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서 추가적인 기능을 만들고 수정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시간 내에 설계안대로 만들어 시스템을 런칭하기만 하면 프로젝트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출시 이후, 사용자 피드백을 받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핵심 프로세스에는 오래된 기계 설비에나 쓰이는 단어인 ‘유지/보수’라는 단어가 붙는다. 


결론적으로, 많은 한국 대기업들은 IT 시스템을 IT가 아닌 전통 제조업의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고치기보다는 처음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출시 후 수정은 어렵고 비싸기 때문에 최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문화와 구조에서 애자일(Agile), 린(Lean)과 같은 단어는 무의미하며, 실패는 결코 용인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18년 SNS 상에서 화제가 됐던 국민은행의 DT 선포식. 누구든 이 사진을 보면 DT가 왜 안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출처: KB국민은행) 


3. Transformation이 아닌, Transportation에 집중한다


성공한 IT 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1가지에서 시작해 단계적인 다각화를 거쳐 덩치를 키워나간다. 2010년대 들어 스타트업 업계에서 바이블처럼 자리잡은 개념 중 하나로 ‘린(Lean) 스타트업’을 꼽을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보다, 먼저 최소한의 프로토타입,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들어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에 맞게 방향을 수정해나가라는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단 한 가지의 단순하고도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증권부터 대출까지 종합 금융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토스 역시 ‘송금’이란 1가지 기능에서 출발했다. 쇼핑부터 컨텐츠까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성장한 카카오는 ‘문자 메시지 대화’라는 1가지 기능에서 시작했다. IT 스타트업들은 그들이 혁신하고자 하는 단 1가지를 누구보다 잘하는 데 사활을 건다.


하지만 DT를 추진하고 있는 전통 대기업들은 이미 가진 것이 많기에 몸이 무겁다. 1가지를 잘 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그들에게 DT란, 오프라인에서 잘하고 있는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도 동일하게 재현해내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DT는 단순히 오프라인 서비스를 온라인에 옮겨놓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종종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내 고객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무려 ‘3조원’이 투자된 것으로 유명한 롯데ON이다. 롯데ON은 쿠팡에 대항하기 위해 롯데그룹이 내놓은 2020년 최대의 야심작 어플리케이션이다. 기존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하이마트 등의 계열사들이 각자 별도의 앱을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롯데ON이란 하나의 앱에 접속하면 계열사별 제품을 한 곳에서 주문할 수 있또록 통합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통합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앱에선 롯데마트 식료품도 주문할 수 있고요, 토이져러스 장난감도 살 수 있고, 하이마트 전자제품도 구경할 수 있어요!’ 이상의 개선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통합 과정 자체도 매끄럽지 못해, 기존 우수 고객들의 회원 등급이 강등되고 장바구니 물건들이 사라지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끔찍한 혼종, 롯데ON

결론적으로 한국 대기업들의 DT는 우선 그들이 오프라인에서 하던 것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기고 합치는 ‘Transportation’ 작업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디지털은 아날로그와는 다른 새로운 고객 경험을 필요로 한다. 디지털은 단순히 오프라인->온라인으로의 장소 이동이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고객 Pain Point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고객 경험을 디자인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근본적인 체질 개선, ‘Transformation’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 해결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에, 스타트업들은 딱 1가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데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뭣이 중헌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다. 돈 주고 앱 만들면 DT가 저절로 되는 것으로 믿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는 어떻게 35살에 CEO가 됐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