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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bok Feb 13. 2020

그는 어떻게 35살에 CEO가 됐을까?

직장인 레전드 이명박을 재조명한다

정치인이 아닌, 직장인 이명박을 돌아본다


작년 겨울, 연말인사에서 35살의 젊은 나이로 임원 자리에 오른 여성이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입사 12년 만에 LG생활건강 퍼스널케어사업총괄 상무 자리에 오른 85년생 심미진씨다. 젊은 여성의 임원 승진이 한국 사회에선 아직까지 낯선 일이어서인지, 인터넷상에선 총수 일가의 며느리일 거라느니, 비리가 있는게 아니냐는 '뇌피셜'들이 난무했다. 또 그녀와 함께 일했다고 자칭하는 몇몇은, 심미진씨가 유능하지만, 아랫사람을 격무에 갈아 넣어 상무가 됐다는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35살의 젊은 나이에 상무로 승진한 심미진씨

그러나 이런 초고속 승진을 비웃듯, 빛의 속도로 승진해 35살의 나이에 사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 있다.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70년대에 말이다. 다름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25살의 나이에 현대건설에 입사해, 20대에 이사, 30대에 사장, 40대에 회장 자리에 오르며 직장인 신화를 써내려갔다. 나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쌓아올린 공과 과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쌓은 레전설급 커리어의 비결이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 보수적인 시대에, 그는 어떻게 35살에 CEO가 됐을까?

이 호기심이, 25년 전 쓰여져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MB의 자서전으로 내 손길을 이끌었다. 오늘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리로 얼룩진 전직 정치인으로만 기억하는 20, 30대와 함께, 그가 직장인 레전드 반열에 오른 비결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 이제부터의 내용은 도서 '신화는 없다(1995)'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글입니다.

중고로 200원에 구매한 MB 자서전


직장인 이명박은 3가지가 달랐다


승진이란, ‘직위의 등급이나 계급이 오름’을 의미한다. 현재 직급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직급에서 요구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췄음을 인정받을 때, 직장인들은 승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현재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주변엔 본인 업무보다 더 많은 일을 맡아 잘해낼 수 있는 에이스들이 얼마나 많은가? 직장 내 흔한 에이스와 이명박의 차이는 무엇이기에, 직장인 이명박은 유일무이한 레전드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1. [문제 발견] 오너십을 갖고 문제를 재정의했다

“내가 정회장 앞에서 내놓는 사업 방향이나 방법, 목표, 문제 해결의 범위 등은 늘 정 회장의 기대치를 한 두 걸음 앞선다. ‘더 이상의 적자가 나지 않도록 관리해달라’고 정 회장이 주문하면, 나는 적자가 아니라 흑자가 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한다.”(p253)

평사원 이명박은,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경영자의 입장에서 재정의했다. 말단 사원은 통상 자기 밥값만 곧잘 해도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지만, 그는 본인 역할만 잘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타이 고속도로 현장에서 말단 경리사원으로 일하던 이명박의 주 임무는, 현장 인부들의 임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어떤 이유에선지 문득 프로젝트 자체가 적자 사업이란 생각을 품게 된 그는, 직접 공사 원가 추정에 나선다. 물론 말단 사원으로서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됐기에, 전체 지출을 계산해 정확한 원가 도출까지 해내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공사의 주요 지출원인 자재 소요량을 나름대로 수소문해 조사했고, 자재 소요량만으로도 공사가 적자란 결론을 낸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는 정주영 사장 책상에까지 올랐고, 현장에 감사팀이 파견되는 전사적 이슈로 발전된다. 이 사건을 통해 정주영은 이명박을 신뢰하게 됐고, 결국 고속도로 현장 전체 총괄직을 말단 사원인 그에게 맡긴다.


말단 평사원이었지만, 이명박은 자신의 주 업무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자신이 집중할 문제를 ‘어떻게 하면 인부들의 임금을 효과적으로 관리할까?’가 아니라, ‘우리 회사는 이 공사로 이익을 보고 있을까?’로 확대 해석했다. 평사원이 아닌 경영자 입장에서,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재정의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 재정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뛰어난 업무스킬이 아닌 오너십 덕분이었다. 비록 임금 노동자였지만 기업주의 마인드로 업무에 임했기에, 사원임에도 이런 ‘주제 넘은’ 시도가 가능했다고 본다.

“정 회장이 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나를 찾은 까닭은 ‘이명박은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회사를 자기 것으로 안다’는 인식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p253)
신입사원 이명박. 외모로도 초고속 승진을 한 듯하다


2. [해결책 탐색] 오타쿠처럼 업무를 파고 들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나는 일을 장악해야만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일에 질질 끌려 다니는 것, 일이 나를 구속하고 짓누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117p)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재정의했다면, 다음 단계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흔히들 조직의 리더 위치에 오른 이들이 보여주는 리더십의 유형은 2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본인이 모든 해결책을 찾고 직접 해결하려는 '부지런한 리더' 유형과, 큰 틀의 방향성만 제시하고 하급자들에게 해결을 위임하는 '게으른 리더' 유형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가치 판단을 하긴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은 후자인 '게으른 리더'형을 택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본인이 모든 디테일을 파악해 마이크로매니지먼트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야근과 주말 출근을 불사하고서라도 모든걸 파악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야 가능하겠으나, 점점 ROI와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트렌드에는 맞지 않다. 하지만 ‘부지런한 리더’ 타입의 이명박은, 결코 자신이 모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관리과장 이명박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오타쿠처럼 파고 들어 장악했다. 건설 장비를 관리하는 중기사업소의 관리과장으로 승진한 그는,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일을 겪는다. 중기사업소에서 쓰이는 장비의 이름/성능/부품까지 모두 꿰고 있던 정주영 회장과 달리, 막 승진한 (문과 출신) 이명박 과장은 장비의 디테일한 내용까진 파악하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어디가 고장인데 그렇게 오래 걸리나? 병신 같은 놈 말이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니 일이 늦어지는 거 아니야.”(116p)

이렇게 호통을 맞은 과장 이명박은, 불도저를 해체한다. 당장 현장에 투입해야 할 장비를 완전히 해체해, 부품 하나 하나를 매뉴얼과 비교하며 머릿속에 넣은 것이다. 정주영에게 혼나지 않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그는 이를 통해 정비공들을 장악하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젊은 관리과장으로서 20년 이상 경력의 기술자들을 휘어잡기 위해선, 먼저 그들과 동등한 레벨의 지식을 가져야 했던 것이다.


불도저까지 해체하는 집념이 이명박 워커홀릭의 대명사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는 하루 4시간을 자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오타쿠 수준의 세세한 업무 파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이다. 당연히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다섯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일어나는 시간도 늘 5시로 고정돼 있다.”(256p)


3. [실행 장애물 제거] 시스템을 만들어 조직을 장악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지원하던 중기사업소는 전쟁 때 무기를 만드는 병기창 이상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야만 했다. 보다 강한 규율과 긴장감이 필요했다.”(114p)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여차저차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까지 찾았다 하더라도, 이를 실행하는 건 또다른 문제다.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기업들은 나이 어린 리더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배가 먼저 임원을 달면 선배는 사표를 쓰는게 현대 한국사회에선 여전히 자연스러운 조직 문화다. 하물며 지금보다 더 낡고 고루한 조직 문화를 가졌을 70년대에, 이명박은 어떻게 조직을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일까?


관리과장 이명박은, 본인 중심의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 조직을 장악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해결해야할 문제의 규모는 커지고, 얼개는 복잡해진다. 당연히 이런 문제는 혼자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혼자 힘으로 척척 일을 처리하면 됐던 사원/대리 시절과 달리, 관리자 직급부턴 부하 직원들을 부리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70년대 그 때 그 시절 한국 기업에서라면 결코 젊은 관리자를 용납하지 않는 법. 20대 새파란 나이의 젊은 관리과장 이명박은 어떻게 조직을 장악했을까?


이명박이 관리과장으로 일하던 중기사업소엔 경력 20년이 넘는 ‘짬 좀 먹었다'하는 정비사들이 수두룩했다. 그 때 그 시절 짬 좀 찬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왕당파’란 이름의 세력까지 형성하며 사업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부품을 가리킬 때는 본인들만의 일본식 명칭까지 사용하고 있어, 영어식 명칭을 쓰는 관리직 사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했다. 관리직 사원들이 이런 일본식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그들은 비웃기까지 했다고 이명박은 회고한다.


이런 문제에 칼을 빼들기 위해, 이명박은 관리직인 본인 중심으로 업무 시스템을 재정립한다. 부품별로 각각의 영어식 명칭과 그에 해당하는 고유 번호를 알아야만 정비사들이 부품 공급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어 공표했다. 그가 편 논리는, ‘부품 구매처가 점차 미국 회사로 바뀌고 있어 일본식 명칭만 알아서는 부품 구매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붓이 없으면 선비가 아쉬운 법. 정비사들은 영어식 명칭을 묻기 위해 관리직들에 고분고분해졌고, 관리과장 이명박은 조직 내 권력의 추를 본인 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신화는 기억되어야 한다


성공한 한국 직장인들의 이야기로 위인전을 만든다면, 단연코 이명박은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이야깃거리를 가진 인물이다. 마치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설화처럼, 하루 4시간씩 자면서 35살에 사장 자리에 오른 이명박의 커리어는 가히 신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의 이명박은 (전)서울시장 및 대통령, 부패 정치인, 기업인 출신 대통령, 혹은 성공한 사기꾼 등으로만 대중에 기억되는 듯하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 쌓아올린 공과 과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이로 인해 그가 남긴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 신화'와 노력들이 평가절하되어 잊히지는 않았으면 한다.




쿠키: 이 모든 건, 좋은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사실 사람은 그렇다. 기용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으면 재능이란 것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 분을 기용했기 때문에 많이 클 수 있었다. 내가 서울대 출신의 많은 선배들을 물리치고 그 분을 기용했기 때문에 많이 클 수 있었다.” - 정주영(시사저널)

사실 이 모든 건 정주영이라는 좋은 리더가 그를 알아봐주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위 본문의 덕목들을 갖춘 사람이 어디 이명박 한 사람 뿐이었겠는가. 무수히 많았겠지만, 오직 이명박만이 직장인으로서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일찍부터 그를 알아보고 능력에 맞는 역할과 직급을 부여한 정주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혹 이 글을 읽고 나서 영감을 받았다 해도, 위의 3가지를 그대로 따라 이명박처럼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에 4시간씩 잔다고 해서, 누구나 35살에 사장이 될 수 있을까? 1)오너십은 강요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2)본인의 업무에 대한 오타쿠적인 집념도 하루 아침에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3)이미 어느 정도 체계화된 조직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주니어라면, 나를 알아주고 키워주는 리더가 있는 곳에 몸담는 것만으로도, 직장 생활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건 아닐까한다.


정주영 회장

출처: 신화는 없다(1995,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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