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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bok Jan 30. 2020

각하 옆을 제대로 지키는 법

<남산의 부장들>은 이렇게 일했어야 했다

(스포주의)

김부장도 한 명의 직장인이었다

김규평(이병헌)은 곽상천(이희준)과 의도치 않은 충성 경쟁에 휘말리고, 결국 박통(이성민)의 심기를 맞추기 위해 절친 박용각(곽도원)을 제거하는 결정까지 내리게 된다. 하지만 박통이 원하는 건 박용각의 죽음이 아닌, 그가 가져간 돈이었다. 경쟁에서 밀려 제거당할 것을 감지한 김규평은, 결국 최후의 선택을 내리게 된다.

남들과 달리, 나에게 김부장은 유신의 심장을 쏜 야수가 아닌, 한 명의 직장인으로 보였다. 잘해보려 애썼으나 회사에서 벼랑 끝까지 내몰려버린 직장인 말이다. 절친을 살해하면서까지 죽기 살기로 노력했음에도 그가 비극적 결말을 맞은 까닭은 무엇일까? 김부장의 사례를 통해, 직장인으로서 일하는 방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한다.



김부장은 이렇게 일했어야 했다

1. 착수 보고

박부장 제거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1)일의 진행 목적과 2)진행 방식, 3)예상 아웃풋에 대해 박통과 명확하게 합의했어야 한다. 물론 단순하거나 급한 일까지 모두 보고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일이라면 무조건 先소통이 필요하다. 박용각 제거와 같이 국제사회의 압력, 민주화 세력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면, 좀 더 디테일한 내용까지 상급자와 상의됐어야 한다. 김규평은 착수보고 자체를 빼먹진 않았으나, 그 방식에서 다음과 같은 패착을 저지른다.

김부장의 패착: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경영자는 내려야 할 의사결정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기에, 위 질문과 같이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는 열린 논의는 적절치 못하다. 또한 김규평 정도의 측근이라면, 박통이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를 남발하는 자유방임형 리더(임자무새)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을 터다. 그렇다면,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와 같이 열린 질문(What?형)보다는, 본인이 먼저 고민해서 옵션을 정해 놓은 후 선택을 유도하는 질문(Yes or No?형)을 준비해 던지는 편이 더 현명했을 것이다. 

극 중 박통은 '임자무새형 리더'로 묘사된다.

예를 들면, ‘내부고발자의 속출을 막기 위해(진행 목적), 박부장을 몰래 제거해서(진행 방식) 배신자의 최후 선례를 만들고자 합니다(예상 아웃풋). 제거 작업 진행해도 되겠습니까(Yes or No)?’와 같이 묻는 거다. 물론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박통이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면 김규평으로선 최선을 다한 거다. 이렇게 물었다면, 제거가 중요한 게 아니고 ‘박용각이 가져간 돈을 되찾아야 한다'는 숨겨진 목적에 대해 박통이 언질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았을까? 일의 목적부터 제대로 합의하지 못했기에, 김부장의 충성 어린 ‘작업’은 실패로 귀결돼버린다.


2. 중간 보고

착수보고 때 소통한 대로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중간중간 보고해야 한다. 혹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면 더욱 더 필요하다. 상급자 입장에선, 착수보고 내용만 믿고 일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예상 못한 결과를 손에 쥔다면 난감할 따름이다. 따로 시간/장소를 잡기 버겁다면, 밥 먹는 동안에라도 ‘저번에 시키신 그 일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다’하고 가볍게 언질을 줘야 한다. 여기서 김규평은 다시 한 번 패착을 저지른다.

김부장의 패착: 중간보고를 생략했다

물론 곽상천과 암살 경쟁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보고까지 어떻게 신경쓰냐는 반론이 있을 순 있다. 하지만 박통 입장에서 한번쯤은 궁금하지 않았을까? 박부장 건을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긴 했는데, 과연 김부장이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행했을지, 일은 잘 돼가고 있는지 말이다. ‘박부장 건은, 알제리 애들 써서 순조롭게 조용히 추진 중에 있고, 아마 내일 내로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라고 슬쩍 한 마디만 던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박통이 의도한 방향대로 일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김부장의 일 처리 방식에 조금이라도 더 만족하지 않았을까. 중간보고는 일의 방향이 잘못됐을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생략됐기에, 사건은 김부장과 박통 모두에게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워커홀릭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공연을 보면서 중간보고를 했어야 했다.


3. 결과 보고

아웃풋이 나왔다면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결과를 보고하며 피드백을 요청한다. 마지막 단계인 결과 보고는, 사실 앞의 2단계에 비해 중요성은 떨어진다. 일의 처리 방식과 목적 달성 여부를 리뷰하면서, 여기서의 배움을 통해 다음에 좀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결과 보고의 목적이다.

김부장의 패착: 딱히 없다

김부장의 경우, 1,2단계에서 물을 엎질러 버렸기에, 결과 보고는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박부장 제거 임무 이후, 또 다른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면 적어도 이 사건에서의 교훈을 해당 임무에 적용해서 개인적인 발전이나마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부장 제거가 김부장의 마지막 미션이 되어버린 이상, 이후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없게 되어버렸다. 아쉬운 것은 박통의 역할이다. 본인이 원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왜 이런 결과가 생겼는지 함께 논의하고 개선하는 자리를 가졌어야 한다. 더불어 하급자의 퍼포먼스까지 리뷰함으로써 업무 능력의 성장까지 신경써준다면 좋았겠지만, 극 중 박통에게 이런 것까지 기대하긴 어려워보인다.

이 멋진 자태가 낙오된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박통이 좀 더 좋은 상사였더라면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극 중 3번씩이나 반복되는 이 대사를 들으며, 처음엔 ‘박통은 부하를 믿고 맡기는 자유방임형 리더였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어떻게 보면 장기집권 독재자 입장에선 이런 업무 지시 방식이 고도로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혹여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담당자의 개인적 일탈일 뿐 내가 시킨 적은 없다’라고 발 뺄 수 있으니 말이다.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강제 진압했다가 생각치 못하게 미국의 외압이 역풍으로 닥쳐온다면, ‘내가 의도한 게 아니고 부하가 멋대로 저지른 일이니 그를 처벌하겠다’고 희생양을 만들어 일을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보면 부하 입장에선 최악의 상사의 모습일 수 있다.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도 없이, 그렇게 해도 되니 하고 싶은 대로 하란 얘기를 듣고 실행했다가, 실패 시 책임은 모두 본인이 뒤집어써야 하니 말이다.


내일 출근이 예정된 수많은 김부장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김부장을 변호하고 싶다. 몇몇 업무적인 패착을 저질렀다지만, 그는 적어도 최선을 다했다. 박통이 좀 더 좋은 상사였더라면 10.26 사태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뇌피셜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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