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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Feb 10. 2021

누구는 감옥에서도 모닥불을 피웠다고 하는데

주변과 나에 관해 생각해보기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께서 빨간색 프라이드를 뽑으셨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거머쥔 내가 드라이버가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면허증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접촉사고들이 한두건 누적되면서 멀쩡했던 프라이드의 자존심이 구겨지는걸 봐야했다. 급기야 뒷문이 잘 안 열리는 것이었다. (끈을 매달아 운전석 뒤에 꽁꽁 묶는 방법도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 친구분 가운데 평생 회사 트럭을 운전하신 아저씨를 모시고 운전하다가, 집 근처 논두렁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다리를 멈추지도 않고 달리던 대로 그냥 들어가자... 아저씨는 조수석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힘껏 붙잡으시면서 화들짝 놀라셨다.


'어이쿠야@@

"니 대단하네. 나도 이런 길은 이래 안 모는데 말이다. 운전 잘하네~~^^"

"집에 퇴근할 때마다 들어오는 길이라 그냥 달리던 대로 운전하는 게 낫더라고요 ㅋㅋ"


테랑 운전기사도 조심하는데 말이다. 나의 그 조심성 없는 기질 때문에 우리 집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출고된 프라이드가 갈수록 고물차가 되는 걸 눈뜨고 지켜보게 된 거니까. 승용차 한 대가 기억자로 조심스레 꺾으면서 들어갈 길을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용감하고 무식하게 운전을 해왔는지 정말이지 아찔하다.


그때 우리 집은 울산 삼산평야였던 곳 중간에 넓은 마당이 있는 평야지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마을 차들이 주차된 공터를 지나 논두렁 길로 접어들어야 했는데, 어느 날 시력이 안 좋은 나의 판단 착오로 주차된 차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는데. 예상대로 우리 차 옆구리에 스크레치가 생기고 그 차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다.


'그래. 이왕 버린 몸. 프라이드야! 니 운명은 어쩔 수 없다.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퍼지지 말고 달려~'


이후로도 몇 번 더 프라이드는 논두렁 앞으로, 옆으로 꼬꾸라지는 재주를 부리며 우리 가족, 특히 나와 한 몸이 되어가다가 중고차 매장에서 다른 주인에게 팔려갔다.


(여기까지 인트로.)




구치소는 아니지만... 법정이란 곳을 그 프라이드 녀석 덕분에? 딱 한번 서봤다. 벌금 딱지가 날아왔는데 청구기간이 넘자 법원에서 출두하라는 명령서가 날아왔다. (아마도 다시 언젠가 청구서가 날아오겠지 무사안일하게 멍 때리다가 법정에 가야 했던 거지만) 접촉사고를 낸 프라이드를 몰로 법원으로 갔고, 잡범들과 한 줄로 서서 선고받는 내 모양이 너무 어이없고 우습기까지 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구치소에 대한 추억(?)이라면, 학생 운동하다가 수배 인물이 되어 지방 이곳저곳을 유랑자처럼 돌아다니다가 붙잡혀 구치소에 들어갔던 막내 동생의 면회를 갔다가 책 한 권 건네주고 왔던 게 전부였다.


'사람에 치인다.'는 말을 할 때가 가끔 있다. 동굴로 숨고 싶은데 사람들은 만나야 할 때, 내가 부르면 달려와 줄 것 같은 즐거움이 종적을 감추고 없는데 자꾸 그 기분 달래주려고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 사무실에서 없던 일을 만들어내는 워크 제조기 상사가 화수분처럼 끝없이 일거리를 던지며 염치없이 다른 심부름까지 덤으로 얹을 때, 절친이라는 친구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 그 맘을 수습해야 할 때는 정말 사람 없는 세상이 그립다.  


6년 전 여름. 정말 그랬다. 내 안에 활활 타오르던 불길 위로 폭우가 쏟아져 장작이 꺼지자 한동안 숨쉬기가 힘들었다. 십 수년간 같은 길을 가자던 친구가 전갈의 독이 잔뜩 묻은 문자 폭탄을 던졌왔을 때는 삭제하는 것 말고 피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 일을 계기로 한두 해를 공황장애를 앓았다. 그 초기 증세에도 나는 누워서 잠자기가 힘들어 매시간 깨어 앉아서 잠을 청했다. 심장이 지맘대로 움직이기로 작심한 것처럼 내 생각대로 통제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했는데... 누구는 감옥에서도 모닥불을 피웠다니.



五味口 爽 (오미 구상)               

오색영인맹(五色令人目盲)    

오음영인이롱(五音令人耳聾)    

오미영인구상(五味令人口爽)    

난득지화영인행방(難得之貨令人行方)  

  -도덕경-


'좋은 것만 보다 보면 눈을 멀게 하고, 좋은 소리만 들으면 그 소리가 더 아름답게 들리지 않고 귀를 버리고, 맛난 음식이라도 계속 먹다 보면 그 맛이 사라지고, 값진 물건을 갖고 싶고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것이 사람을 방자하게 한다는 '오미구상'에서 오감을 탐하는 것을 절제하라는 가르침은 행복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이 '모든 일에 자족하기를 배웠다'라고 했던 자기 고백 역시 '오미구상'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나로부터 뺏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 어디인가? 그것은 정신이자 마음이라고 한다면, 상황에 따라 물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는 가라지(벼의 껍질)처럼 정처 없이 떠다니는 탐욕을 버릴 것인가, 탐욕에 따라 좋은 것 화려한 것 값진 것만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을 것인가.



다시 육 년 전 친구와의 인연을 끊냈던 때로 되돌아가 생각하면, 나 역시 나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은 데서 오는 불만족과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기에 더 이상은 함께 일하는 게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던 거다. 욕심 병이 되긴 했지만 더 깊이 내 안을 들여다보며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육년 전 그때보다 지금 더 만족하고 사느냐? 고 묻는다면 '오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정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의 만족도는 기준에 미달되고 또 어떤 일은 흡족한 정도로 가끔은 후회할 정도로 지나칠 때가 있는 욕심의 추가 여전히 왔다갔다 하고 있다.


 가령, 나의 우물파기식 기질은 매번 내 몸을 힘들게 하는걸 알면서도 집중하고 매달린다. 새해 들어 삼국유사를 붙들고 신라에 대한 앎이 성에 차기까지 계속 읽어댔다. 한 우물 옆에 또 다른 우물파기도 가능하다. 그래서 서너권의 조선시대 관련 도서들을 들여다보면 관련 책들을 이곳저곳 나비처럼 넘나들면서 읽는다. 퀼트에 빠졌을 때는 누워서 핸드폰 보는 자세로 바느질을 했다. 어느 작가의 책이 맘에 들면 그 사람이 쓴 책들을 검색해서 지루해질 때까지 읽는다. 어디 책 뿐인가. 최근엔 뜨개실로 가방뜨기를 위해 필요한 아이템들을 모두 구비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생길 때마다 시간 배분이 조밀해지면서 잠자는 시간은 줄어들고 할 일은 늘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잠깐씩 멈춰야만 오래 할 수 있을거다. 그것이 취미와 즐거움일지언정 무언가에 붙잡히는 속박이 된다, 게다가 즐거움보다 짜증과 불안으로 맘을 추스리지 못한다면 내 마음속 모닥불은 광풍에 요동치며 나를 먼저 태울수 있다.


 " 안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나?" 평화로이 그 불이 타오르도록 욕심을 점검하자. 그러면서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욕심으로부터 그 불을 자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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