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커다란 숲 속으로 데려다줘!

After you, 오리건

by 북청로 로데



사실 듀크가 처음부터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난장이 광대 듀크에게 동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생겼습니다.



‘듀크, 나를 커다란 숲 속으로 데려다줘’

오리건의 소원을 듣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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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가 서커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오리건이 재주를 부렸어요. 듀크는 붉은 막 뒤에 숨어서 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박수를 이끌어 내는 오리건의 재주를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오리건의 그 한 마디가 <오리건의 여행>을 시작하는 발단이 되었습니다.



를 ‘듀크와 오리건의 여행’으로 안내한 책은 황유진 작가의 <어른의 그림책> 입니다.


황 작가의 글을 보슬비 같다고나 할까요? 땅 위로 고개를 내민 까까머리 풀밭 위로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비가 내릴 때면 웬일인지 풀밭은 하얀 어망을 펼쳐 놓은 듯 보입니다. 적어도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이슬처럼 풀잎에 매달린 물기가 사라질까 그의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되돌아보았습니다. 책 표지를, 책 제목을,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여러 번 책을 폈다 덮었다를 반복하는 동작 횟수만큼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이 보이며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읽은 동화책은 글과 그림이 아니라 소리였을까요? 그녀의 바람대로 제 마음의 온도가 조금 올라 37도가 된듯 했습니다.



동부 피츠버그에서 서부 오리건을 향해서 여행하다.


‘붉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나는 반 고흐의 그림 같은 들판을 헤치고 나아갔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지요.‘
-19~20쪽에서-


두 페이지에 이어진 그림


그림책 표지에 오리건과 듀크가 황금 들판을 헤치고 나가는 장면이 사실은 좌우가 바뀐 그림입니다. 19쪽에서 20쪽에 걸쳐 그려놓은 그림의 방향이 바뀌어져 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왼쪽 정면을 향해 있습니다. 잿빛 하늘의 피츠버그를 떠나 서부의 오리건을 향해 여행 중인 주인공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시간이 역행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피츠버그 어느 서커스단에서의 생활을 여행을 통해 성찰하고 지워가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를 설계하려는 어리석음에 멈춰있는 동안에도 나의 미래는 지나간다.’


과거는 수정해서 고쳐 쓰지 못하지만 내 안에 화석이 되어 흔적으로 남아있다가, 앞을 향해 움직이려는 나에게 ‘과거의 상처와 일’이 빚쟁이처럼 채무이행서를 들이밀면서 ‘뭐라도 해야 되지 않나?’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과거는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 가지 않는 한 과거와는 그만큼의 거리를 두면서 헤어지고 있거나 헤어진 거니까.



0세부터 3세 아기들을 키우고 있는 여섯 명의 엄마들과 함께...


<오리건의 여행>에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를 발견하면서 엄마가 모든 걸 다 챙겨줘야 자랄 것 같은 아기들의 성장에 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보이나요?”“언젠가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서 떠날 아기들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에서 자신에게 와 닿는 그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듀크의 빨강 코가 떨어진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갈 다음 이야기는 무슨 내용일까요?”

끝으로, “여행을 마친 오리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십시오.”라고 여섯 분의 엄마들에게 주문했습니다.


엄마는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그림책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써갑니다. 아이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네 발로 걷는 오리건과 빨강 코가 떨어진 듀크


오리건 가문비나무 숲에 도착하자

오리건(곰)은 네 발로 성큼성큼 산을 향해 뛰어올라갔습니다. 하룻밤 야영을 끝으로 듀크는 오리건과 작별을 고하는데.... 그의 뒤에 떨어져 있는 빨강 코!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속박과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분장하고 가공된 자아였습니다.


오리건으로 오기 전에는 사람에게 사육된 우리 속에 갇힌 한 마리 곰이었던 오리건의 참모습은 네 발로 뛰고 야생에서 먹이를 스스로 찾는 존재이듯.

피부에 침투되어 지워지지 않았던 듀크의 빨강 코가 어떻게 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지만...

땅에 떨어진 빨강 코를 뒤에 두고 눈길을 걸어가는 듀크는 이제 혼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리라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오리건을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는 듀크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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