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부둣가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다.
엄마의 귀향 길 준비는 중앙시장에 들러 할머니, 할아버지 옷가지를 사는데부터 시작했다. 지금도 울산에 구 중앙시장 한켠에는 시대에 밀려난 어르신들을 위한 옷가게가 몇 곳 남아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중앙시장은 울산 역전시장과 이어져서 수 백미터 골목이 옷가게들과 신발가게, 잡화점들과 먹거리가 넘쳐나는 장소였다.
매년 한 두번 제주도를 가려면 엄마는 그 옛날 중앙시장 골목을 누비며 조부모님 선물을 준비하셨다. 어린 내 눈에는 옷 색깔이 워낙 화려해서 어느 가게나 같은 모양이라 뭐가 더 예쁘고 덜 예쁜지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국민학교 4, 5학년 때 쯤인지 정확하게 시기가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는 한 손에는 선물 가방, 다른 한 손엔 동생, 등에는 막내 동생을 엎고 부산항 건물 옥상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안보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 미리 제주도에 가셨을 수 있었다. 주로 제주도를 갔었던 계절은 설 명절을 앞둔 한 겨울이었다.
부산항 선착장에 입항한 배들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 "뿡~뿡~~" 긴 소리를 냈다. 바깥 공기가 너무 차가운데도 딱히 바람을 피해서 기다릴만한 휴게소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30분 전부터 제주행 배에 승선을 했고, 갑판에서 가까운 널찌막한 매트를 깔아놓은 홀에 짐을 풀고 밤을 맞이했다. 지금 생각하니 울엄나 나이 30대 중반이었으니 아이들 데리고 먼 길 가던 아낙이 얼마나 신경쓸게 많았을까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배는 파도가 넘실대는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기도 했고, 옆으로 기웃뚱 하며 곡예운항을 했다. 나는 버스든 배든 장거리 여행을 할 때마다 멀미를 해서 그 때 그 바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모든게 나쁠수는 없듯이 이른 아침 동틀 무렵 뱃머리에서 보았던 제주섬의 산봉오리와 구름들, 온통 초록으로 칠해진 풍경을 보는 순간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기가 '제주도로구나' '내 고향 제주'
할머니들의 식사 준비외할머니 댁은 구좌읍 행원리에서 서동이라고 불렀는데 도로편에서 마을로 내려가다가 서쪽에 있다해서 붙인 이름 같기도 했다. 친할머니 댁은 알동인데 걸어서 5분 거리 정도에 있다. 그 때 당시 제주도 집들은 대부분 초가집에 호롱불을 사용했다. 외할머니 댁 부엌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집에서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제주도 전통 가옥 구조가 그러했다.
우리가 도착하면 온 가족이 원형 테이블에 밥을 차려놓고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정겹게 식사를 했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턱은 어린 내가 발레동작처럼 발을 높이 쳐들어야 들어갈 수 있었고 어두컴컴한 부엌을 밝혔던건 호롱불 뿐이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흙바닥에 나무 의자 깔고 앉아 온 식구가 한데 모여 먹던 그 시절 할머니의 부엌과 밥상이 가끔은 그립다. 식사 도중에도 할아버지는 땅 속에 묻어둔 고구마를 꺼내서 꺼져가던 아궁이 속에 던져넣고 아궁이 불씨에다 신경을 집중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을 꿩엿의 달달한 맛을 떠올리면 할머니가 부엌 솥단지 옆을 떠나지 않고 반나절을 고으셨던 정성에 정말 고마운 마음이든다. 이후에 꿩 대신 닭엿을 끓이시기도 하셨는데... 제주 산마다 야생 꿩이 얼마나 많았는지 도민들의 전통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할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셔서 늘 코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어서 이상하게 보였다. 나를 무척 애지중지 아끼셨는데... 자라면서 부모님께 그 사연을 들으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허약하게 태어난 나는 늘 병을 앓았고 생명줄이 간당간당 겨우 붙어 있는 손녀를 노심초사 지켜보시던 할아버지는 미동도 않는 아기가 죽은줄 아시고 산으로 묻으러 가기도 하셨단다.
그러고보니 조부모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내 딸~"이라 부르셨다. 제주도 사람들의 표현이긴하지만 그렇게 불러주셔서 애뜻한 마음이 더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조부모님의 눈물과 보호, 부모님의 재정적 손실과 돌봄을 통해 살게 된거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외할머니댁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친할머니 집 역시 초가집으로 지붕을 엮은 촌 집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방마다 친척들 얘기 소리, 아낙들 웃음소리와 애들 떠드는 소리가 늦은 밤까지 집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는 자영업으로 시계와 보석상을 하고 계셔서 직장인처럼 따로 휴가 기간이 있는게 아니었다. 일 주일 정도 제주에서 마음도 몸도 쉼을 얻고 떠나야 하는 아침에 나는 친할머니댁 방에서 자다 눈을 떴다. 주위에 가족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나를 혼자 두고 떠난건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다급하게 외할머니 집으로 걸어갔다.
아직 새벽 동트기 전 마을은 눈에 뒤덮혀 온통 흰 보자기를 덮어쓴 푸르스름한 색을 띤 유령처럼 공포스런 새벽이었다. 파도가 돌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도, 가끔 맹꽁이 울음소리도 들리고 주변에 온통 나를 혼자 고립시킬듯한 소리들만 가득한 새벽이었다.
울면서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시던 엄마의 어이없는 표정... 왜 그런 표정을 지으셨을까?